임신을 결심한 이유
결혼 5년 반 만에 우리 부부에게 아기가 찾아왔다. 남편은 워낙 아이를 좋아했고 신혼 초부터 아이를 갖고 싶어 했지만 스물일곱이란 어린 나이에 결혼이란 화끈한 선택을 한 나로서는 임신이라는 더 화끈한 이벤트는 될 수 있으면 미루고 싶었다.
무엇보다 아이가 없어도 충분히 둘이 즐거웠고 마음껏 여행도 할 수 있었고 커리어도 쭉 이어갈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작년 한 해 일에 너무 파묻혀 야근이 일상인 삶을 살다 보니 어느 순간 이게 맞나 싶더라. 새벽에 퇴근하는 택시에서, 지방 출장 갔다가 길거리를 헤매면서 진부하지만 가족이 그리웠다. 집이 그리웠고. 뭘 위해 이렇게까지 하나 싶었다.
일 욕심이 많아서 일만 하다 보니 이제 그만 노동 시간을 좀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동 시간을 줄이면서 일은 효율적으로 잘 해내고 가족과 시간도 보내야겠다는 뭐 그런.. 이상적인 생각 말이다. '그러면 이제 아이를 가져도 될 것 같아'라는 신기한 생각도 함께. 솔직히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의 주머니 사정도 신혼 초보다는 나아져서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고.
어쨌든 이런 이유로...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나와 아이를 낳자는 남편의 팽팽한 창과 방패의 싸움이 무색할 만큼 나의 태세 전환은 그렇게 물 흐르듯 이뤄졌다. 물론 이 한입두말, 태세 전환에 남편은 환호했다.
다행히 계획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가 우리에게 찾아와 주었다. 엄청난 메스꺼움과 함께.
남들은 남편에게 서프라이즈로 임신 사실을 알리기도 한다는데 우리 집은 어찌 된 게 남편이 이른바 '매직 아이'로 임신테스트기 두 줄을 먼저 확인한 기이한(?) 일도 있었다.
주로 임신, 출산 커뮤니티에서 주로 사용되는 '매직 아이'라 함은, 임신 초기 임신을 알려주는 임테기 선이 아주 희미하게 보일 때 그야말로 매의 눈으로 희미한 줄을 발견해 내는 것을 말한다.
갑자기 속이 안 좋아서 거실 바닥을 뒹구는 나를 보던 남편이 혹시 모르니 임신테스트기를 해보라고 했다. 내가 봤을 땐 결과가 한 줄이었는데... 초초초초 매직아이 능력을 발휘한 남편이 아주 희미한 선이 있다고
날뛰었고(?) 정말 임신이 맞았다는 것. 배를 부여잡고 누워있던 나는 어리둥절했지. 내가 해줬어야 할 서프라이즈를 남편이 해준 격이 됐다.
아무튼 그날로 우리는 부모의 길로 접어들었고 나는 입덧의 길로 접어들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