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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문 Jun 12. 2023

도서관에 가는 이유


한 달 전쯤부터 도서관에 간다. 도서관에 가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단순했다. 책 살 돈을 아끼려고. 


고금리, 고물가 시대에 여러모로 나름의 긴축재정을 펴고 있는데, 소비를 가장 빨리 줄일 수 있는 부분은 슬프게도 책 구매 비용이었다. 그렇다고 매일 왕복 두 시간 되는 출퇴근길에 책 없이 다니자니 여간 허전한 게 아니었다. 특히 출근시간 지하철에서 휴대폰을 보지 않고 책에 아주 잠깐 몰두하는 건 회사에 가기 전 잠깐 다른 세계로 도피하는 기분이 들어서 꽤나 중독적이다. 그 몰입과 일탈의 시간을 포기하면 하루 시작이 너무 찜찜했다. 자고 일어나서 일만 하다 하루가 끝나는 소모적인 느낌이랄까. 


다행히 집 주변에 괜찮은 도서관이 있었다. 걸으면 40분, 버스 타면 15분 걸리는 곳이었다. 이곳에 다니기로 마음먹고 주말에 벌써 몇 번을 찾았다. 일회용 잔 반입이 안 돼서 가는 길에 텀블러에 디카페인 아메리카노를 테이크아웃해서 가면 몇 시간이고 이 책 저 책 살펴보기에 딱이었다. 


돌아보면 나는 도서관을 좋아했다. 사실 도서관을 좋아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오랜만에 도서관에서 오래된 책의 쿰쿰한 냄새를 맡고 있자니 너무 익숙해서 웃음이 피식 났다. 


초등학교 땐 동네 아이들과 함께 집 앞에 있던 도서관을 놀이터처럼 갔다. 중학교 땐 고등학교 입시 공부를 위해 주말 내내 아침부터 저녁까지 도서관에 살았다. (내가 살던 지역은 인문대 고등학교 입시가 수능만큼이나 경쟁이 치열했다.) 주말 아침저녁으로 아빠가 태워다 주고 태우러 왔었다. 물론 이때 책을 빌려 읽을 여유는 없었고 예민한 사춘기 딸을 데리러 가려고 주말 밤늦게까지도 잠자지 않았던 아빠에게 보답이라도 하겠다는 듯 내내 열람실에 틀어박혀 공부만 했다. 열람실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겠다며 아침엔 일찍 가려고 호들갑이었다. 밥도 도서관에 있는 구내식당에서 해결했다. 덕분에 원하는 학교에 가긴 했지만 중학생 치고 도서관에 대한 집착이 꽤 유난스러웠던 듯하다. 


그다음 도서관에 대한 기억은 대학교 때다. (고등학교 땐 시간 절약을 위해 집 근처 독서실에 뿌리내렸다.) 틈만 나면 학교에 있는 각종 도서관에 틀어박혀 과제를 하고 시험공부를 하고 취업준비를 했다. 대학교 때 도서관에서 쓴 자소서만 100장이 넘을 거다. 학교가 끝나면 도망가듯 집에 가는 친구를 부러워하기도 했지만 나는 도서관에 남아야 안심이라도 되는 아이처럼 굴었다. 도서관을 좋아해서라기보단 할 일이 쌓인 나로선 도서관에 있어야 마음이 편해지는 것만 같았다. 


도서관을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그 오랜 시간을 그곳에서 보내진 않았을 거다. 도서관에 가면 집에서 늘어져 있을 때보다는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졸려도 도서관에 엎드려 자고 밥도 도서관 매점에서 먹는 게 마음이 편했다. 일종의 강박일 수 있었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도서관에 있는 동안은 내가 하고 싶고 해야만 하는 공부를 억지로라도 하게 된다. 공부를 하기 싫다가도 어느 순간 집중력이 최대로 올라가고 빠져든다. 가끔은 딴생각을 하느라 인생 계획을 머릿속으로 그려나가기도 하고 글을 쓰기도 하며 사유했다. 생각이 자유로워지는 걸 느꼈다. 도서관에서 하루를 꽉 채우고 자취방으로 가는 길은 종일 도서관에 박혀있었단 사실에 왠지 쓸쓸하기도 뿌듯하기도 했다. 


취업하고 나서 6~7년은 도서관을 잊고 살았다. 더 이상 도서관에 틀어박히면서까지 해야 할 공부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회사와 집의 거리가 멀어지면서(집값 상승으로 서울에서 벗어나게 되면서..) 작년부터는 지하철에서 책 읽는 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주로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주문해 읽었는데 매주 1~2권씩 읽게 될 만큼 독서에 속도가 붙으면서 한 권에 기본 만 오천 원하는 책값을 감당하기가 조금 어려워졌다. 


다시 도서관에 가보니 인터넷 서점에서는 절대 발견하지 못했을 책, 발견했어도 돈 주고는 사지 않았을 책, 그래서 결국엔 절대 읽지 않았을 것 같은 책들을 자꾸 들춰보게 된다. 읽다 보면 꽤 재미있어서 나도 모르게 빌려 오기도 하고, 제목과 작가만 보고 재밌겠다 싶어 대출한 책 중에 '읭?' 하며 실망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돈 주고 산 게 아니니 아깝지 않아서 괜찮다. 책 앞에서 너그러워지는 순간이다. 


그렇게 한 달에 4~5권을 빌려온다. 여기에 꼭 읽고 싶었는데 도서관에 안 들어온 신간 1권 정도만 사면 한 달에 읽을 책이 충분해진다. 아니 책이 넘쳐난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사실 대출 기한 내에 책을 다 읽으려고 집중하다 보니 독서량이 더 늘었다. 새해에 세운 계획 중 '한 달에 책 1~2권 읽기'라는 목표는 우습게 달성해 버린 셈이다. 


그렇다. 나는 도서관을 좋아한다. 도서관에서 집중하는 사람들의 공기도 좋고, 마음껏 책 사이를 누빌 수 있는 것도 재미있다. 책을 뒤적거리면서 무언가 새롭게 배우게 되는 것도 즐겁고 그 마음을 이렇게 글로 써 내려가는 것도 좋다. 그러니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다 모여있는 곳이 도서관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잊을만하면 그곳으로 돌아가는 건 아닐까. 


나의 놀이터이자 공부방. 앞으로는 도서관에 더 자주 갈 것 같다. 나중에 배 속에 있는 아가가 태어나서 '엄마는 태교를 어떻게 했어?' 물어보면 '도서관에 가서 책 읽었고 글 썼어'라고 해줘야지. 사실 다른 건 한 게 없기도 하지만. 도서관이 주는 즐거움을 내 아가에게도 가르쳐주고 싶다. 


나는 초등학교 때 처음 가봤지만 너는 배 속에서부터 도서관에 다녔단다. 도서관에선 네가 가보고 싶은 세계에 잠깐 다녀올 수도 있고 몰랐던 걸 배울 수도 있고 마음껏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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