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을 날려 버릴 유일한 열쇠

[ 아빠의 유산 ] 52

by 정원에

아이야,


맞이하는 공간도 상황도 달라졌지만, 또 새 새벽이 선물처럼 아빠에게 주어졌어. 오늘은 더욱 감사한 마음으로 쪼그려 앉아 헤르만 헤세의《데미안》한 구절을 꾹꾹 눌러 적었단다.


5 나는 누구인가.png



펜 끝으로 전해지는 종이의 질감과 사각거리는 소리 사이로, 문득 이 문장이 내 가슴을 치더구나. 그리고 자연스레 네 얼굴이 떠올랐다.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많은 불안을 마주한다. 시험을 앞두고,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서, 혹은 아무 이유 없는 고요한 밤에도 불안은 불쑥 찾아오지.

그럴 때마다 세상은 네가 가진 것이 부족해서, 혹은 네가 남들보다 뒤처져서 불안한 것이라고 속삭일지 모른다. 하지만 헤세는 단호하게 말하는구나. 우리가 불안한 진짜 이유는 ‘나 자신과 하나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이야.

아빠가 너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은 통장에 찍힌 숫자나 부동산이 아니다. 나는 네가 평생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뿌리를 가진 사람, 즉 ‘너를 제일 잘 아는 너’로 자라길 바라는 마음을 이 편지에 담아 보낸다.


네가 진정으로 너 자신과 하나가 되기 위해, 삶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 기억했으면 하는 세 가지 이야기를 전한다.



첫째, 타인의 시선이라는 거울을 깨고 ‘고독’을 환대해라

우리는 너무나 자주 타인의 눈을 통해 나를 바라본다. 세상이 정해놓은 성공의 기준, 친구들의 평판, 유행하는 삶의 방식... 그런 것들에 나를 맞추려다 보면 필연적으로 ‘나’는 분열된다.


그렇게 되면 남에게 보여지는 나와 진짜 나 사이의 거리는 갈수록 멀어질수록 궁극에는 내가 나를 제일 잘 모르게 될지도 몰라. 그런 상태에서는 어김없이 마음의 빈틈으로 불안이라는 바람이 들어오는 법이지.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철저히 ‘혼자라는 즐거움’에 빠질 줄 알아야 하더라. 그 시간이 제일 소중하더라.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세상의 소음을 끄고, 오직 나의 숨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시간이.

아빠가 너에게 정말 물려주고 싶은 게 바로 이거야.


“너 안에서 들리는 가장 작은 속삭임을 외면하지 않는 태도”


아빠는 오랫동안 이걸 무시하고 살았던 시절이 있었단다.

사람들의 기준에 맞추려고,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려고, 나도 모르게 나의 내면을 뒷자리로 밀어 두곤 했던 것이지.


그러다 보니 어느 날 문득,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불안이 찾아왔어. 헤세가 말한 바로 그거였던 거야.



둘째, 네 안의 ‘그림자’까지도 너 자신임을 인정해라

‘자신과 하나가 된다’는 것은 네 안의 훌륭하고 멋진 모습만을 사랑하라는 뜻이 아니야. 네 안에는 분명 지질하고, 이기적이고, 나약하고, 때로는 질투에 사로잡히는 모습도 있을 거야. 우리는 흔히 그런 모습을 감추거나 부정하려 애쓰지.


하지만 아빠가 살아보니 알겠더구나.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가 짙듯이, 그 어두운 부분 또한 떼어낼 수 없는 ‘나’'라는 사실을. 자신을 안다는 것은 내 안의 모순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용기다.


“나는 왜 이럴까”라고 자책하기보다 “내 안에 이런 모습도 있구나”라고 담담히 인정할 때, 비로소 자신과 화해할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단다.


분열된 두 자아가 하나로 합쳐질 때 불안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깊은 평온과 이해가 깃들게 되니까.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온전한 네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사람은 스스로를 속이는 데 제일 능숙한 존재라는 점을 잊지 말아라.



셋째, 질문을 멈추지 말고 너만의 답을 가져라

세상은 너에게 수많은 정답을 강요할 거야. 그것도 대부분 다급하게. 하지만 자신을 아는 사람은 세상의 정답지가 아닌, 자신이 직접 쓴 답안지를 들고 인생을 살아간다.

“이것이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인가?”,

“나는 어떤 순간에 살아있음을 느끼는가?”,

“나를 진정으로 기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라. 이 질문들 자체는 너의 내면을 열고 들어가는 열쇠와 같아. 이 열쇠를 찾지 못하면, 너무 늦게 찾으면 세상에서 제일 힘든 싸움으로 끝날 수 있어!


나 자신과 멀어지는 싸움


그러니 남들에게 그럴듯한 삶이 아니라, 네 영혼에 네가 납득이 되는 삶, 영혼이 신이 나서 춤을 추는 삶을 순간순간 선택하는 용기를 가져야 하는 이유란다. 어제 전화 통화에서 이야기를 나눴듯이, 너의 20대는 나의 20대와는 다른 철학이 필요한 시대이니까!



사랑하는 나의 아이야.


너는 아빠가 오랫동안 몰라서 헤매었던 ‘나와 하나 되는 법’을 훨씬 일찍, 훨씬 오래, 훨씬 부드럽게 누리길 바란다.


그리고 네가 언제든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나는 나와 함께 걷고 있어. 그래서 괜찮아.”


비록 그 길이 험하고 외로울지라도, 스스로 선택한 길을 걷는 사람의 발걸음에는 불안 대신 확신이 차오른단다.

이 말이 들리는 날, 너는 이미 너 자신과 하나가 되어 있을 거야.

늘 너를 응원하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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