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 문이 닫히고 붉은 등이 켜진 순간, 마음속에는 수만 가지 생각이 파도가 되어 일렁인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분’에 휩쓸리지 않고 ‘감정’의 깊이를 지키는, 흔들림 없는 영혼의 자세임을 느낀다.
지금 느끼는 불안, 초조함, 두려움. 이것은 ‘기분’이다. 기분은 외부 환경에 반응하는 ‘피부의 감각’과 같다.
수술실 앞의 차가운 공기, 소독약 냄새, 의료진의 무표정한 얼굴... 이런 것들이 온 감각으로 받아 들이면 마음에는 즉각적으로 물결이 인다.
파도는 바람이 불면 당연히 생긴다. 손이 떨리고 입이 마르는 것은 영혼이 약해서가 아니라, 살아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겪는 자연스러운 ‘날씨’일 뿐이다.
반면, 사랑하는 마음, 낫기를 바라는 간절함, 의료진을 믿고 신에게 맡기는 신뢰. 이것은 ‘감정’이다. 감정은 환경이 아닌 내면의 가치에서 우러나오는 ‘심장의 고동’과 같다.
수면 위에는 태풍이 불어 파도가 10미터씩 치솟아도, 수심 100미터 아래의 깊은 바다는 고요하다. 그곳에는 어떠한 태풍도 닿지 않는다.
‘건강한 영혼’이란 파도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파도 아래 깊은 곳에 닻을 내릴 줄 아는 능력이다. 기분은 상황에 따라 변덕을 부리지만, 깊은 감정은 수술 결과나 대기 시간의 기분 따위에 휘둘리지 않는다.
지금 올리는 기도는 ‘파도’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심해’에서 하는 것이다.
기분에 휩쓸린 기도는 “무서워요, 잘못되면 어떡하죠?”라고 묻지만,
감정에 뿌리내린 기도는 “믿는다. 함께 이겨낼 것이다.”라고 내뱉는다.
수술을 마치고 나올 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공포에 질려 파랗게 질린 얼굴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지켜줄 것이라는 든든하고 평온한 눈빛이다. ‘나’의 평온함이 곧 '너'의 회복력이다.
흔들리는 것은 ‘기분’에게 맡겨두고, ‘감정’의 주인으로서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킨다. 수술실의 붉은 등이 꺼지고 문이 열릴 때, 그 깊고 고요한 바다가 되어 '너'를 가장 포근하게 안아주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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