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文; 자自

[ 내마음 사전 ] 122

by 정원에

바람은 어디서 불어와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아도 멈추고 싶을 때 멈추고, 불고 싶을 때 분다.


꽃은 굳이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때가 되면 피어나고, 떨어져 흙이 된다.

이 일에는 누구의 계획도, 설계도면도 없다. 그저 ‘스스로(自) 그러할(然)’ 뿐이다. 이것이 날것 그대로의 자연(自然)이다.


반면, 흐르는 물결 위에 크루즈를 띄우고, 거친 돌을 다듬어 집을 짓고,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짓고, 끊임없이 길을 내고, 밤하늘의 별을 이어 별자리를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스스로 굴러가는 치밀하고, 거대한 자연위에 인간은 선명한 선을 긋고 의미를 부여한다. 이것이 바로 ‘문(文)’, 즉 무늬를 그리는 일이다.

야생의 들판이 ‘자연’이라면,


그곳에 울타리를 치고 밭을 일구는 행위는 ‘문화(文化)’가 되고,

그 과정에서 겪은 인간의 희로애락을 기록해 ‘문학(文學)’이 되고,

이 거대한 흐름을 밝혀내어 시스템으로 구축해서 ‘문명(文明)’이 된다.


이 모든 것의 중심에는 인간이 남긴 흔적, ‘문자(文字)’가 있다.

자연은 언제나 침묵한다. 다만 묵묵히 보여줄 뿐이다. 그 압도적인 침묵 앞에서 인간은 불안과 경이로움을 동시에 느낀다.


그래서 흐르는 시간과 사라지는 기억을 붙잡기 위해 무늬(文)를 새긴다.


돌에 새기고,

종이에 적고,

이제는 디지털 공간에 0과 1로 기록한다.


문자는 인간이 자연이라는 거대한 혼돈 속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만든 지도이자, 유한한 삶이 무한한 자연에게 건네는 대화의 시도다.


그러나 문자가 자연을 온전히 담을 수는 없다. ‘물’이라는 글자가 축축하지 않고, ‘불’이라는 글자가 뜨겁지 않듯, 문(文)은 언제나 자(自)의 그림자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기록하고 읽고 쓰는 이유는 왜일까. 그 이유는 어쩌면 자연의 ‘자(自)’와 문자의 ‘자(字)’의 연결고리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자(自)'는 코(鼻)의 모양을 본뜬 글자에서 유래했다. 숨 쉬는 나 자신, 생명의 시작점을 의미한다. 즉, 규정되지 않은 ‘날것의 존재’ 그 자체이다.


반면, ‘자(字)’는 집(宀) 아래에 아이(子)가 있는 형상이다. 이는 단순히 글자를 뜻하기 이전에, ‘집에서 아이를 낳아 기르다, 불어나다’라는 생명력의 확장을 의미한다.

자연이 낳은 아이가 인간이고,

인간이 낳은 아이가 문자이니,

‘자(自)’와 ‘자(字)’는 ‘생명의 탄생’으로 연결된다.


결국 삶이란, 스스로 굴러가는 ‘자연’의 섭리 위에 개별 ‘생명’의 의미에 대한 고유한 ‘무늬’를 새겨가는 과정이다. 휩쓸려 떠내려가지 않되,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단단한 문장을 마음에 품는 일. 그것이 문자를 가진 존재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존엄이다. ❤️


_내 마음의 한 문장

“자연이 침묵으로 웅변하는 진실이라면, 문자는 그 침묵을 받아 적은 인간의 간절한 희망의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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