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나무

[ 내마음 사전 ] 121

by 정원에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르지만, 그 시간이 남기는 흔적은 사뭇 다르다.


동물은 시간이 흐를수록 형태가 무너져 내린다. 팽팽했던 가죽은 늘어지고, 날렵했던 근육은 소실된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동물의 늙음은 곧 기능의 ‘상실’이자 형태의 ‘와해’다.


그렇기에 육체에만 머무르는 삶은 필연적으로 비참해질 수밖에 없다. 끝없이 소멸해가는 것을 붙잡으려 애쓰는 과정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무의 시간은 다르다. 나무는 늙을수록 자신의 형태를 완성해 나간다. 매끈하고 연약했던 묘목 시절에는 볼 수 없었던 웅장한 껍질의 굴곡, 하늘을 향해 기이하게 뻗어 나가는 가지의 곡선은 오직 시간만이 빚어낼 수 있는 예술이다.

나무에게 늙음은 상실이 아니라 ‘확장’이며, 와해가 아니라 ‘축적’이다. 비바람에 찢긴 가지는 흉터로 남지 않고, 꺾인 자리마다 더 단단한 옹이가 박혀 고유한 개성이 된다.


숲에 있는 수만 그루의 나무 중, 늙은 나무만이 유일무이한 제 모습을 갖는다. 나무에 비하면 사람의 늙음이란 어쩌면 찰나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파트가 즐비한 우리집 주변만 해도 ‘나’보다 먼저 태어나, ‘나’보다 더 오래 그곳을 지킬 나무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나무에게서 배워야 할 나이 듦의 기술이 바로 여기에 있다.


젊음을 흉내 내거나 붙들려 할 때 사람은 동.물로서 추하게 늙어간다. 하지만 자신의 겪어온 시간을 부정하지 않고, 그 세월의 켜를 인격과 태도로 굳혀낼 때 사람은 나무처럼 아름답게 완성된다.


주름살이 부끄러운 흠집이 아니라 치열하게 살아낸 삶의 나이테로 받아들여질 때, 노년은 쇠락의 계절이 아닌 완성의 계절이 된다.

육체는 비록 중력을 이기지 못해 무너질지라도, 그 안에 담긴 정신과 품격은 늙을수록 선명한 형태를 갖춰야 한다.


그것이 소멸을 향해가는 동물의 운명을 거슬러, 완성을 향해가는 나무의 존엄을 얻는 길이다. 늙는다는 것은 낡아지는 것이 아니라, 누구와도 닮지 않은 단 하나의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이다. ❤️


_내 마음의 한 문장

“육체의 형태는 시간 앞에 무너지지만, 삶의 품격은 시간이 쌓여야 비로소 완성된다.”


https://blog.naver.com/ji_da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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