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델 & 와일드>
반쯤 버려진, 또는 무언가 싸이코스러운 변방의 한 동네. 과거 사건에 대한 죄책감을 안고 온세상을 거부하는 아웃사이더 펑크 소녀. 의문의 죽음. 저변에 깔린 종교색. 악마 등 초자연적인 존재들의 등장. 친구들과의 연대. 부모와 자식 세대간의 갈등 등등. 왕년의 팀 버튼을 떠올리게끔 하는 요소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그래서 '아, 이제는 팀 버튼을 보고 자란 뉴 제너레이션 영화인들의 시대인가' 싶었는데 다 보고 나서 감독 찾아보니 <크리스마스의 악몽> 연출한 헨리 셀릭이었잖아? 새로운 팀 버튼 키드의 영화가 아니고 그냥 그 당시 팀 버튼 풍에 일조 했던 왕년의 큰 형님이 다시 돌아온 상황이었음. 그래서였을까? 패기는 넘치지만 어수룩하게 굴 확률이 높은 새 부대보다, 그래도 구관이 명관이라고 오랜만에 다시 돌아온 헌 부대에 담은 술 맛이 더 달큰하니 좋게 여겨졌다.
<크리스마스의 악몽>부터 시작해 <코렐라인>까지 연출했던, 그러니까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라 하면 도가 텄을 감독과 제작진의 신작이다보니 그 특유의 '룩'에서 나오는 비주얼적 쾌감은 당연한 것이다. 보는내내 그냥 인물들 움직이는 것만 봐도 재밌음. 물론 그런 생각도 들었다. 지금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들은 어쩌면 마이너 리그로써의 플러스 알파 효과를 당연히 가져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뭔 소리냐면, 1년에 제작 개봉되는 애니메이션이 총 100편이라 쳤을 때. 그 중 대부분은 지금의 디즈니나 드림웍스 소속으로 많이 제작되는 3D CGI 애니메이션일 것이고, 또 그 반에 반은 미야자키 하야오나 신카이 마코토의 손끝에서 나오는 2D 셀 애니메이션이 차지할 거잖아. 그 100편 중에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라고 해봤자 많아야 2~3편 아니겠냐고. 그 정도로 가끔 나오는 형식이다 보니 볼 때마다 새롭고 뭔가 재밌는 것 아닐까-하는 생각. 만약 세상 모든 애니메이션들이 모조리 다 스톱모션 기법으로만 제작됐다면 그건 또 그거 나름대로 이상할 것이다.
어쨌든 간에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써 기본적인 시각적 재미를 갖고 있는 작품인데, 앞서 말했듯 포스트 팀 버튼 영화로써 그 재미가 더 배가되는 영화다. 팀 버튼도 그랬다. 죽음 자체를 다루되 그 죽음 이후의 삶을 더 흥미롭고 재미있게 그려내는. 팀 버튼에게 있어 죽음은 그저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또 하나의 관문일 뿐, 그 자체로 공포스런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마치 그 옛날 이집트 등의 고대 문명권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팀 버튼 또한 사후세계의 열렬한 추종자라 볼 수 있을 것. 팀 버튼의 세계 속에서 죽음 이후의 삶은 죽음 이전의 삶보다 훨씬 더 풍요롭고 활기차다.
바로 그 점에서 <웬델 & 와일드>는 팀 버튼의 적자처럼 보인다. 죽음 이후의 맞닥뜨릴 지옥에는 거대한 놀이동산이 존재한다. 건설 장소가 지옥이니 만큼 당연히 그 목적이 즐거움을 주기 위한 것은 아니니, 죽은 영혼들이 타는 모든 놀이기구들은 다 그 자체로만 놓고 보면 고문기구나 진배없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고문기구 뺨치는 놀이기구들이 하나같이 다 재밌어 보여. 즐거워 보여. 비록 영혼들은 비명을 지르고 난리지만, '그래도 저런 지옥이라면 오히려 좋아'를 마음 속으로 외치게 되는 게 그저 나 하나 뿐만은 아니었으리라.
그래서, 지옥보다 더 지옥 같은 곳은 현실이다. 그것도 자본주의다. 지옥에서 파견된 두 악마조차 현실의 자본가들에게 뒷통수 맞는 현실. 지옥의 왕으로 군림하고 있는 아버지를 피해 우리도 우리만의 왕국을 건설하자며 뛰쳐나온 웬델과 와일드는 인간들의 세상으로 넘어 오자마자 계약의 중요성을 살갗으로 느끼고 깨닫는다. 아니, 근데 원래 악마라고 하면 계약 전문가들 아니야? 여러 신화나 종교나 소설들 조금만 찾아봐도 모든 악마들은 인간들과의 계약을 귀신같이 무섭게 해내던데... 누가 팀 버튼 풍 아니랄까봐 이쪽 세계 악마들은 하나같이 다 조금씩 나사가 풀려있다. 차라리 저승에서 망자들 관리하는게 나았지, 이승의 자본가들에게 악마가 뒷통수 맞을 줄 그 누가 알았으랴.
지옥보다 더 지옥같은 현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그 무섭고 위대한 지옥의 왕조차 자신의 자녀들은 애지중지하는 마당에 현세의 인간들은 기어코 자식 이기는 부모가 되고야 만다. 스톱모션 형식에 매혹되고 키건 마이클 키와 조던 필 특유의 유머에 킬킬대는 사이, 어느 순간 훅 들어오는 씁쓸함. 그리고 그 씁쓸한 맛의 이유에는 악마조차 탈모는 고칠 수 없구나-하는 한탄까지 섞여있다. 아니, 다시 쓰고보니 이것도 웃음 나오네. 지옥의 왕도 두려워하는 탈모라니. 고치지 못하는 탈모라니. 지옥은 장소가 아니라 상태라고, 머리가 빠지기 시작하면 그 때가 바로 지옥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