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INEKOON Mar 17. 2023

돌려받지 못한 약속들에 대하여

<스즈메의 문단속>

사람들은 이 영화를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만든 재난 3부작의 마지막 편이라 말한다. 확실히 그랬다. <너의 이름은.>과 <날씨의 아이>는 개별 작품의 호오를 떠나 모두 재난의 범주 안에서 움직였고, 그건 이번 <스즈메의 문단속>에 이르러 더 확실해진다. 이세계로부터 열린 문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계로 비집고 들어오는 대지진 유발의 존재들. 그리고 그걸 막으려 열도를 종횡무진하는 한 소녀의 로드 무비. 생각해보면 특이하다. 신카이 마코토의 훨씬 이전작들인 <초속 5센티미터>와 <별을 쫓는 아이>, <언어의 정원>들은 재난을 주 소재로 삼지 않았었으니까. 그렇다면 대체 그 사이, 신카이 마코토에게는 어떤 지진이 일어났던 것일까. 여러 인터뷰를 통해 밝혔듯, 그를 관통한 건 2011년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이었다. 열도를 뒤흔들고 그 주변 국가들에게 역시 여러모로 영향을 주었던 큰 사건. 추산된 것으로만 2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사망했던 그야말로 대지진이었다. 


그 이후 착수한 <너의 이름은.>부터 2011년의 대지진 영향을 받았다고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말했다. 그리고 그중 가장 최신의 결과물인 <스즈메의 문단속>은 한 예술가가 실존 했던 현실의 사건을 투영하는 과정을 직접 목도하는 아름다운 경험이다. 걔중 인상적인 것은 역시 '문'이라는 소재일 텐데, 보통의 판타지 영화에서 '문'이라면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를 이어주는 일종의 '시작'을 의미하는 오브제로써 주로 활용된다. <오즈의 마법사>가 그랬고 <나니아 연대기> 역시 그랬다. 하지만 <스즈메의 문단속>은 '문'을 그렇게 활용하는 동시에 '이뤄지지 못한 소박한 약속'에 대한 인사로써 은유하기도 한다. 일본인들이 실제로 많이 쓰는 문장이기도 하겠지만, 한국인인 우리 입장에서도 "다녀오겠습니다"라는 의미를 지닌 일어 "行きます"는 숱한 일본 영화나 드라마 등의 매체에서 접해봤기에 그리 어색한 인사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그 "다녀오겠습니다"라는 말이 주로 발화되는 지점은 어디인가. 그 곳이 바로, '문'의 앞이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일상적이면서도 소박하고, 그래서 짐짓 당연하게까지 느껴지는 이 작은 인사들이 그 큰 재난에 의해 얼마나 많이 지켜지지 못했을까-를 고찰한다. 영화 속에서나 밖에서나, 그 사건 직전의 사람들은 문을 열며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리고 문 안에 있던 사람들은 "잘 다녀 와"라고 화답 했을 것이고. 그러나 문 밖으로 나간 자들은 자신이 마지막으로 내뱉은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더불어 문 안에 남아있던 자들 역시 그들이 남겨둔 그 약속을 돌려받지 못했다. 그래서 스즈메는 듣는다. 지진 요괴 미미즈가 튀어나오는 문을 막을 때마다 매번 들리는 스러져간 사람들의 지켜지지 못한 약속들. <스즈메의 문단속>은 그렇게 실제 사건으로부터 상처를 입었던 이들에게 작은 위로가 될 만한 어떠한 것을 조그마하게 사근 거려 준다. 


영화적으로 아쉬운 부분은 분명 존재한다. 중반부 도쿄 상공 장면이 너무 스펙터클해 그 지점이 일종의 클라이막스처럼 여겨진다. 때문에 그 이후 영화의 나머지 절반은 쓸데없는 사족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게다가 덩달아 그 후반부 전개가 늘어지고 뻔한 건 덤. 여기에 제아무리 첫눈에 반했다 한들, 알고 지낸지 얼마 안 된 소타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바쳐가며 마지막 모험을 결정하는 스즈메의 모습 역시 쉽사리 납득이 가질 않고. 살다보면 그렇게 사랑에 빠질 수도 있고, 우리네 인생 모든 요소들이 어찌 다 설득력을 갖고 일어나겠나 싶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건 픽션 아닌가. 그렇다면 작품의 이야기 내에서 최소한 관객들을 설득할 정도로 그걸 건드리긴 했어야지. 


그럼에도 <스즈메의 문단속>을 통해 비로소, 신카이 마코토는 대지진의 상처를 적어도 본인 스스로 아물어낸 듯 보인다. 다음 작품에서는 이제 조금 지진과 재난을 벗어나도 괜찮을 것 같다. 


<스즈메의 문단속> / 신카이 마코토


이전 13화 전쟁엔 취할 수 없었던 자들을 위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