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INEKOON Jan 01. 2023

전쟁엔 취할 수 없었던 자들을 위해

<지상 최대 맥주 배달 작전>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시기. 저멀리 지구 반대편에 존재하는 후덥지근한 나라에서 지지부진한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주인공 치키는 동네 친구들과 맥주나 마시며 시간을 헛되이 쓰기 바쁘다. 물론 그 친구들 중 몇몇은 이미 군인이 되어 베트남으로 파병 가 있는 상황이지만, 뭐 어때. 다 정의와 세계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간 애국자들인 걸. 그러다보니 여동생이 이른바 멍청한 대학생들과 함께 어울려 다니며 전쟁 반대 시위를 하는 꼴을 보기가 싫다. 왜들 저리 난리야? 


짐짓 치키의 사고 방식은 당연해 보인다. 진보나 보수의 성향을 떠나, 당시를 살았던 미국인들 입장에서야 세계 평화 수호를 위한 조국의 전쟁이 위대하고 훌륭해 보이겠지. 그러니 전쟁 반대를 외치며 우리나라와 우리 군대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짓거리들이 납득 안 되는 거고. 나는 그것이 정말로 이해가 된다. 왜냐하면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치키는 그 당시를 살았던 미국인이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역사를 공부하며 그 베트남 전쟁이 옳지못한, 그리고 헛된 소모전이었다는 것을 알지. 게다가 이기기라도 했으면 몰라, 결과적으론 졌다는 것 또한 알고. 심지어는 이후 그 전쟁으로 인해 미국인들의 아메리칸 드림이 무너졌다는 것마저 안다. 하지만 당시를 살았던 치키는 몰랐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이나 SNS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나마 유일하게 지구 반대편의 소식을 전달받을 수 있는 TV 방송 매체도 다 정부의 통제 하에 있는데 치키가 뭘 알 수 있었겠는가. 물론 무지 역시 때때로 죄가 될 수 있지만, 어쨌거나 저쨌거나 나는 치키의 그러한 태도가 일견 이해 되었다. 


그랬던 치키가, 파병나가 있는 친구들을 위해 직접 맥주 배달을 나서면서 조금씩 달라진다. 그 시작은 분명 멍청해보였다. 총탄이 빗발치는 전쟁터에, 고작 맥주 몇 캔씩 전달해주겠다는 이유로 지구 반바퀴를 돌아 가겠다고? 이건 멍청한 걸 넘어 미친 거지. 하지만 배우고 깨달을 수만 있다면 그 시작이 멍청하고 미쳤다한들 뭐 어떻겠는가. 맥주에 내내 취해있던 치키는 그렇게 직접 전쟁의 참상을 목도해가며 점점 정신이 깨게 된다. 정의로운 아군과, 사악한 적군의 기준이 불분명 했던 전쟁. 무엇이 옳고 그른지 정확하게 선갈라 볼 수만은 없었던 전쟁. 그쯤 부터 치키에게는 맥주가 필요 없었을 것이다. 그 전쟁은 이미 술에 취한 듯 혼란스러웠기 때문에. 


그렇게 치키는 답답하게 고착화 된 전선과, 이마에 뿔이라도 나있는 줄 알았으나 알고보니 그저 죄없는 부녀자들일 뿐이었던 베트남의 사람들과, 승리를 위해서라면 전쟁 범죄와 정의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아군의 현실과, 조그마한 TV 화면 속에서만 존재하는 양복쟁이들을 위해 최전선에서 갈려나가는 젊은이들의 죽음 등을 통해 조금씩 깨어나게 된다. 술엔 취할 수 있어도, 전쟁에는 차마 취할 수 없었던 치키와 사람들, 그 세대를 위해. <지상 최대 맥주 배달 작전>은 취한 듯 멍청하게 시작하지만 끝내 깔끔하다 못해 확실한 정신으로 명징하게 끝을 맺는 영화다. 


<지상 최대 맥주 배달 작전> / 피터 패럴리


이전 12화 가끔은 순수한 마법을 믿고 싶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