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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KOON Jan 01. 2023

가끔은 순수한 마법을 믿고 싶다

<마법에 걸린 사랑 2>

마법이 충만한 동화 속 세계에서, 마법에 필요한 현실 속 세계로 넘어왔던 지젤. 수 년의 세월이 지나 직접 아이도 낳고 그런대로 잘 사는 듯 했지만, 결국 그녀 역시 삭막한 대도시 뉴욕의 삶에는 채 적응하지 못하고 교외에서의 삶을 새롭게 꿈꾸게 된다. 그렇게 뉴욕을 떠나 근교의 작은 마을로 이사를 온 지젤과 그의 가족. 뉴욕에서는 이루지 못했던 '해피 엔딩'을, 과연 이 곳에서는 완성할 수 있을까?


전편은 디즈니가 거의 100여년에 걸쳐 착실하게 쌓아왔던 동화의 유산들을 영리하게 재활용 해낸 영화였다. 그럼 속편은? 안타깝게도 영화적 재미는 전편에 조금 미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속편은 충분히 흥미로운 확장 행보를 보인다. 동화 속에만 존재하는 바로 그 '해피 엔딩'. 하지만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에서는 그 '해피 엔딩'이 없다는 것을 지젤도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이야기'말고 '삶'이라는 것엔 죽음 외의 결말이 없으니 말이다. 그렇게 지젤은 그럼에도 계속되는 삶의 자장 안에서 서성이고 비틀대며, 때로는 악랄해지기도 한다. 


누군가는 이마저도 뻔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내게 이번 2편의 전개는 충분히 흥미로웠다. '해피 엔딩' 너머에도 존재하는 우리네 삶의 전체 순간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점도 그랬지만, 전편의 주인공이자 그야말로 순진무구함의 대명사인 지젤 '공주'를 악녀로 둔갑시켜 활용하는 방식 역시 대단했다. 비록 숱한 동화들과 또 그를 근간으로 삼은 디즈니 애니메이션들 때문에 현실 세계에서의 '새엄마'들이 곤혹을 치른 것은 알고 있지만, 어쨌거나 이야기내적으로만 봤을 때 이런 세계관 속에서의 '계모'들은 모두 악녀이며 또 어느정도의 공통성을 갖고 있지 않나. <마법에 걸린 사랑 2>는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지젤을 악녀로서 새롭게 변주해낸다. 의붓딸을 하녀 마냥 부리며 높은 첨탑 위 다락방에 가둔다든가, 악녀에게 다람쥐 조수는 어울리지 않는다며 뚱뚱하고 못되게 생긴 고양이로 친구를 바꿔낸다든가 하는 등의 묘사는 메타 조크로써 충분히 그 값어치를 해낸다. 


그리고 여기에, 에이미 아담스가 있다. 전편과 속편 사이 15년의 갭. 그 사이 에이미 아담스의 필모그래피는 풍성해졌고, 그로인해 그녀의 연기력과 유명세도 함께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그렇게 15년의 세월을 돌고 돌아 돌아온 전편의 주역. 그녀는 전편의 순진무구 했던 이미지를 그대로 이어냄과 동시에, 심술궂은 악녀로서의 새로운 이미지까지 신이 난듯 연기 해낸다. 연기력의 난이도로만 보자면 이보다 더 어려웠을 영화들도 그동안 많았지만, 그럼에도 이 쾌활하고 발랄한 세계 안에서 그녀 또한 신나게 연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 영화를 보는내내 기뻤다. 그야말로 에이미 아담스의 놀이터라고 할 만한 영화. 


물론 앞선 흥미로운 설정들은 디즈니 실사 영화라는 한계에 봉착해 또 무뎌지고 결국엔 뻔한 결말로 향해 나아간다. 하지만 누군가 말하지 않았었나, 익숙한 맛이 제일 맛있는 맛인 거라고. 수십 년의 세월에 걸쳐 디즈니 애니메이션들과 각종 동화들의 맛에 길들여져온 나는 이 영화의 뻔한 맛에도 그저 빙그레 웃음 지을 수 밖에 없었다. 모든 게 다 결국엔 잘 될 거라고? 언젠가는 해피 엔딩을 맞을 거라고? 그건 그저 순진해 빠진 비현실적 말일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모두, 가끔은 이런 순수한 마법의 힘을 믿고 싶지 않은가. <마법에 걸린 사랑 2>의 그 순진해 빠진 마법은, 적어도 내게 먹혀 들었다. 


<마법에 걸린 사랑 2> / 아담 쉥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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