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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KOON Apr 03. 2023

Directed by Steven spielberg

<파벨만스>

한평생을 영화 만드는 데에 투신해온 거장은 자신이 다루는 초당 24개 프레임의 힘을 일찍이 알았던 듯 하다. 포스에 잔뜩 통달한 루크 스카이워커가 그를 통해 저멀리 떨어진 광선검을 자신의 손으로 불러오고 또 타인의 마음을 조종하는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했던 것처럼, 스티븐 스필버그 역시 영화의 힘을 다방면으로 활용하며 자신의 생애 전반기를 힘차게 꾸렸다. 그는 자신이 무서워하는 공포의 대상을 영화 안에 붙잡아 힘껏 통제함으로써 주도권을 되찾았고, 자신을 괴롭혔던 이들을 촬영과 편집의 마법으로 조각내고 붙여내 일종의 복수를 이룩했다. 하지만 무협세계에서의 룰이 대개 그렇듯이, 때때로 스필버그는 영화에 의한 주화입마에 빠져 고통 받기도 했다. 예를 들면 가족의 가장 어두운 비밀을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든가. 


그러니까 결국 <파벨만스>는 영화에 대한 스필버그의 예찬이며, 또 동시에 영화로 인해 스필버그의 삶이 얼마나 바뀌었는지에 대한 목격담이다. 목격담.... 그래, 목격담. 시선은 곧 권력이고 영화는 그 시선에 의해 생명력을 얻는다. 극중 스필버그의 직접적인 분신이라 할 수 있는 샘 파벨만은 자기 삶의 편린들 사이에서 특정한 것들을 '목격'함으로써 인생 분기점을 맞았다. 그는 인생 처음으로 찾은 영화관에서 공포를 목격 했고, 이어 그를 집의 창고에서 재창조해 다시금 목격함으로써 영화에 매혹되었다. 어디 그뿐인가. 이어 샘은 자신을 괴롭혔던 동급생의 키스와 엄마의 외도 아닌 외도 역시 연속적으로 목격했다. 목격함으로써 감정적으로 변모하는 개념. 어쩌면 스필버그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영화란 권력의 위정자였을지도 모르겠다. 


넓게 보면 전기 영화라고도 볼 수 있을 텐데, 보통의 전기 영화들은 다루고자 하는 인물과 그 영화를 연출하는 인물이 다르기 마련이다. <스티브 잡스>를 스티브 잡스가 직접 연출했다고 생각해보자. <소셜 네트워크>는? 그걸 마크 주커버그가 직접 메가폰 잡고 감독했다 생각해보자고. 물론 좋은 영화가 나올 가능성도 없진 않겠지만, 결과물은 아마 대개가 매우 느끼할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이 꾸려낸다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 개념인가. 하지만 스필버그는 놀랍게도 그를 담백한 맛으로 일궈냈다. 보통의 스필버그 영화였다면 놀랍도록 뾰족한 첨단의 연출이 잔뜩 튀어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파벨만스>에는 그런 게 없다. 눈에 띄는 연출을 줄여냄으로써 얻어낸 담백함. 어쩌면 자화자찬 축제가 될 수 있었던 영화를, 스필버그는 매우 신중히 다뤘던 게 틀림없다. 


일반적인 성장 영화는 전체 런닝타임에 걸쳐 그 성장의 과정과 결과를 모두 보여 준다. 그렇다면 <파벨만스> 역시 인상적인 데뷔 이후 성공적으로 할리우드에 안착한 샘 파벨만의 모습으로 마무리 되었어야 했다. 하지만 <파벨만스>의 결말은 사소하다. 존 포드라는 당대 거장과 짧은 대화를 나눈 뒤 스튜디오 사이를 다소 상기된 발걸음으로 걸어나가는 주인공의 모습이 영화의 엔딩이라니. 허나, 바로 이어지는 엔딩 크레딧의 첫번째 타이틀 덕분에 <파벨만스>는 영화 바깥에 존재하는 '스필버그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영화 안으로 끌어와 그 성장 스토리에 스펙터클한 대결말을 가미시킨다. 'Directed by Steven spielberg'라는 그 첫 타이틀. 그 한 줄이, 주인공의 모든 성장을 일거에 납득시킨다. 그 때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아마 우리가 사랑할 영원한 소년의 이야기. 스필버그 자체가 한 편의 영화다. 


<파벨만스> / 스티븐 스필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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