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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KOON Feb 04. 2023

너의 그 똥구멍까지 사랑한 거야

<바빌론>

최근 <놉>을 통해 조던 필이 그랬듯, 데미언 셔젤도 <바빌론>을 통해 영화를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을 고백함과 동시에 자신이 몸담고 있는 이 매체와 이 업계를 자신만의 시각으로 재정의 하려는 보습을 보인다. 몇 번의 성공을 통해 대가의 반열에 다가서면 다들 자신이 사랑했던 그 영화를 재정의 하려는 게 이쯤 되면 당연한 것일까? 다만 영화적 스펙터클을 무기로 쓰면서도 또 정작 그 영화적 스펙터클에 함몰 되지는 말라며 다소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취했던 <놉>의 조던 필과는 다르게, 데미언 셔젤은 차라리 좀 더 솔직한 입장을 견지한다. 내가 사랑하고 또 몸담고 있는 이 매체와 업계가, 어느 정도는 구질구질하고 천박한 것 알아. 한계가 있다는 것도 알고 여러 사회경제학적, 도덕적 문제들이 존재한다는 것 역시 잘 알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영화의 그런 면모들까지 죄다 사랑해. 더럽고 비싸고 천박하고 문란하고 무례하고 허세떨고 속물같고 심지어는 공허하기 까지 하지만. 나는 그 모든 것들까지 몽땅 다 사랑해-라는 몸짓. 그리고 나는 거기서 이런 생각을 했다. '이런 게 진정한 사랑인 것은 아닐까?'


영화는 '광란의 20년대'라고 불리었던 1920년대 시기 할리우드를 다루면서, 정말로 별 꼴을 다 보여 준다. 거기엔 공개된 장소에서 치르는 그룹 섹스가 기본이요, '골든 샤워'란 은어로 표현되는 소변 뿌리기가 보너스다. <바빌론>은 비단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창고에 산처럼 쌓아둔 마약들은 다 누군가의 코로 빨려 들어가며, 사람들은 쉽게 죽고 그만큼 쉽게 교체된다. 영화 현장에서 스타 배우는 절대적인 권력을 누리고, 신인 여배우들은 그들의 가슴 사이즈가 얼마나 되는지 만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발단에, 다름 아닌 '똥구멍'이 있다. 


비교적 얌전해 보이는 '항문' 따위의 단어로 바꿔 표현하지 않겠다. 그것은 이 영화가 취하고 있는 태도에도 위배되니. 정말로 똥구멍이다. 영화는 그 똥구멍을 노골적으로 보여 준다. 다행이라고 해야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게 사람의 똥구멍이 아니긴 하다. 그건 코끼리의 똥구멍이다. 그 동물의 덩치만큼이나 거대한 똥구멍. 그리고 그 거대한 똥구멍은 거대한 양의 똥을 마구 배출해 그 앞에 서 있던 사람에게 흩뿌려댄다. 이쯤 되면 앞서 말했던 소변 샤워가 차라리 그리워 지는 지경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 똥구멍을 통해 오프닝에서 부터 관객들에게 자신의 모든 걸 다 까서 보여줬다. "나는 이런 영화야!"라고 외친 것이다. 이런 추측이 비교적 적확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면 카메라가 익스트림 클로즈업을 통해 화면 가득 코끼리의 똥구멍을 보여줄 필요가 굳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오프닝의 똥구멍은 3시간여의 멜로 드라마와 직업 드라마를 거쳐, 결말부 극장의 스크린과 대구를 이룬채 공명한다. <바빌론>의 결말부 그 극장 속 스크린 장면은 영화 전체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감독이 참으로 거대한 야심을 갖고 있구나-란 생각을 절로 들게끔 만든다. 단순한 '움직임'에 불과했던 '영화'가,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을 거쳐 끝내는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에 이르기까지 그 거대한 역사를 통해 얼만큼 진화해왔는지. 그리고 그 사이 기착지로 제시되는 찰리 채플린부터 스탠리 큐브릭까지 영화사의 여러 역작들이 그 전체 역사를 수식해주기까지 하는. <바빌론>은 그야말로 대단한 야심을 통해 영화 역사 전체를 훑는다. 그런데 결말을 그렇게 내봤자, 어쨌든 이 영화의 오프닝이 똥구멍인 것은 변치 않는 사실 아닌가. 


바로 그 점이, <바빌론>을 진정한 사랑 영화로 느끼게 만든 지점이었다. 똥꾸멍을 까발리는 것으로 시작해, 끝내는 연서와 헌사를 넘어 찬가로 끝나는 결말에 이르기까지. 데미언 셔젤은 <바빌론>으로 말미암아 스스로가 영화의 A부터 Z까지를 모조리 사랑하는 인물이란 걸 만천하에 공표한다. 단점까지 사랑해야 진짜 사랑이라고? 아니, 나는 그걸 넘어 당신의 똥구멍과 거기서 나오는 똥까지 핥아가며 몽땅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진짜 사랑이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데미언 셔젤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그래, 너가 이겼다."


<바빌론> / 데미언 셔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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