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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KOON Feb 05. 2024

고전적 의미의 할리우드 스타 탄생!

<웡카>


<웡카>를 논하기 전에, 조금 뜬금없는 이야기로 시작하고 싶다. 요즈음의 할리우드란 대체 어떤 곳인가. 새로운 아이디어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그저 왕년의 영광만 도돌이표 마냥 끊임없이 뜯어먹고 사는 곳. 참신하고 획기적인 기획은 가뭄에 콩 나듯 하고, 나머지는 몽땅 속편 아니면 리메이크 아니면 그마저도 리부트 하며 반복하는 곳. 그렇게 작금의 할리우드는 벌써 황금기를 한참 지난 듯 보인다. 그 중에서도 특히 할리우드의 배우들은 최근 그런 불만을 내놓은 적 있다. 이제 할리우드는 배우보다 캐릭터가 더 오래 남는 곳이 되어버렸다고. 모두가 캡틴 아메리카를 크리스 에반스 보다 더 사랑한다고. 모두가 앤드류 가필드나 톰 홀랜드 보다 스파이더맨을 더 사랑한다고. 배우는 교체 가능한 존재이지만 캐릭터는 아니기에. 어쩌면 코믹북이나 비디오 게임 등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들이 범람하고 있는 현 할리우드의 상황 속에서, 이는 배우들의 일견 당연한 푸념 같아 보인다. 


물론 <웡카> 역시 그러한 비판에서 자유롭진 않을 것이다. 우선 그 자체로 로알드 달의 유명 동화를 원작으로 삼고 있고, 이미 실사 영화화도 두 번이나 된 전적이 있지 않았던가. 게다가 윌리 웡카 역할을 진 와일더와 조니 뎁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훌륭하게 해내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어쩌면 <웡카> 또한 캐릭터가 오래 남는 영화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엔 티모시 샬라메가 있다. 왜? 대체 티모시 샬라메가 어떤 배우이기에? 당연히 그는 좋은 배우다. 수준급의 연기력을 지녔고 파리해 귀족적인 외모로 태어났으며, 무엇보다 젊다. 작품 선택의 안목도 훌륭하다. 허나 나는 그를 그저 '좋은 아이돌 배우'라고 생각해왔지, 앞으로의 21세기 할리우드를 이끌 대표 배우로서 확신해본 적은 없었다. 적어도 <웡카>를 보기 전까진 말이다. 


길게 돌고 돌아 이야기했지만, <웡카>를 통해 티모시 샬라메가 증명한 것은 단순하다. 바로 그가 '좋은 아이돌 배우' 이상이라는 거. 극중 제대로 준비된 무대에 처음으로 오르기 직전, 장막 안의 어둠 속에서 윌리 웡카를 연기하는 티모시 샬라메의 얼굴 클로즈업에는 고전적 할리우드 배우의 아우라가 빛을 타고 흐른다. 그렇다, 그에겐 고전적 할리우드 배우의 풍미가 있다. 그 옛날 제임스 스튜어트나 클라크 게이블이 그랬던 것처럼, 그저 배우의 이름 하나만으로 수많은 관객들을 동원할 수 있는 바로 그 풍미. 표정과 말투, 몸짓에 이르기까지 극장 안의 관객들을 집중시키고 또 휘어잡을 수 있는 카리스마.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나 <듄> 등, 지금까지 그의 진면목을 전시한 영화들은 많았지만, 전시를 넘어 그를 이토록 체감시키는 작품은 <웡카>가 처음이었다. 앞으로 할리우드에서 대체하기가 어렵기로는 아마 톰 크루즈 다음 가는 배우가 되지 않을까. 장기적으로 보면 그 이상이 될 수도 있고 말이다. 


새로운 할리우드 스타 티모시 샬라메가 이끄는 <웡카>, 그를 뒤에서 충실히 밀어주는 건 역시 든든한 감독 폴 킹이다. <패딩턴> 연작을 통해 귀여운 상상력과 잘 조율된 연출력을 선보였던 폴 킹은, 비록 그 앞선 두 영화에 비해 조금 반복적이더라도 <웡카>를 훌륭하게 감독해냈다. 큰 프로덕션 디자인부터 세세한 소품에 이르기까지 알콩달콩 오밀조밀한 것은 물론, 뮤지컬 넘버 장면들도 아름답고 귀엽게 잘 그려냈다고 본다. 그중에서도 무엇보다 폴 킹의 강점은 촬영과 편집으로 완성한 연출의 리듬에 있다고 보는데, 이번 <웡카>에서도 어느정도는 그게 잘 완성됐다고 보고. 사실상 확연히 더 대중적인 버전의 포스트 웨스 앤더슨이라고까지 여겨진다. 


<패딩턴>이 그랬던 것처럼, <웡카>도 처음부터 끝까지 무해한 영화의 기운을 풍긴다. 달달하니 귀여운 영화. 그런데 또 다루고자 하는 소재들은 유독 또 날이 서 있기도 하다. 초콜릿으로 귀엽게 포장되어 있어서 그렇지, 영화는 인신매매부터 시작해 아동학대와 사기를 다루고 심지어는 공직자와 성직자들의 부패까지 표현해낸다. 무엇보다 사실상 마약 카르텔이라 볼 수 있는 초콜릿 카르텔 삼인방은 명랑하게 표현되어 있어서 그렇지 실질적으론 마틴 스콜세지 영화들의 주인공이라고 해도 믿을 법 하고.


하지만 결국엔 초콜릿 공장의 공장장이 되는 남자가 주인공인 이야기이기에, <웡카>는 그 모든 걸 달콤하게 포장하며 잘 묶어낸다. 금리와 물가는 오르고, 내가 산 주식은 하향곡선을 그리고, 서로간의 거리는 더욱 더 멀어지고 있는 팍팍한 이 시기. 어쩌면 너무 순진해 말도 안 된다 푸념할 수는 있어도, 그래도 바로 이런 시기라서 <웡카>는 더 위로가 된다. 특히 윌리 웡카와 누들이 기린 아비게일의 젖을 짜다가 함께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종국에는 풍선을 타고 플라밍고들과 함께 하늘로 날아오르는 장면. 그 장면에서는 나도 눈시울이 붉어질 수 밖에 없었다. 대체 왜 그랬을까. 그 장면은 슬픈 장면도 아니고, 극중인물들이 울고 있지도 않은데. 내 생각에 그건 그냥 그 장면이 순수한 아름다움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로 순수한 아름다움을 전시하는 영화. 그리고 그렇게 할리우드의 미래가 되어줄 배우와 감독을 다시 한 번 확실하게 소개해내는 영화. <웡카>의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은 거기에 있다. 


<웡카> / 폴 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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