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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KOON Feb 04. 2024

당신의 순진하지만 위대한 소망

<나의 올드 오크>


영국 북동부의 작은 시골 마을. 이곳은 왕년의 탄광촌으로써, 마을 주민 대부분이 석탄을 캐고 그와 관련된 부대 사업을 하며 삶을 이어왔다. 하지만 21세기의 현재 흐름에 어쩔 수 없게도, 탄광은 문을 닫고 폐광이 되어버린다. 탄광이야 그냥 간판 내리고 문 잠그면 된다지만, 그 주변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던 사람들의 삶은? 그들의 삶까지 간판 내리고 문 잠글 순 없는 것 아닌가. 그렇게 '쇠락해가는 폐광촌의 촌놈들'로 낙인찍힌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을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동네의 작은 펍, 올드 오크에서 서로의 대소사를 나눈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이미 훈내가 진동한다. 시나브로 죽어가고 있는 마을에서 유일한 등불이 되어줄 펍? 그 곳에 마을 주민들이 속속 모여 서로간의 사연을 풀어낸다? 이것은 흡사 썩 일본 영화스러운 감성이기도 하고. 하지만 <나의 올드 오크>의 감독이 켄 로치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우리는 깨닫게 된다. '아, 이거 처음부터 끝까지 마냥 훈훈한 영화로 흘러가진 않겠구나.'


이른바 사회주의 좌파 감독답게, 켄 로치는 이 쇠락해가는 깡촌에 시리아 난민들을 이주 시킴으로써 현재의 유럽과 현재의 세계를 돌아보게끔 만든다. 기본적으로 이민족에 대해 배타적일 수 밖에 없는 인간의 특성. 그는 이 깡촌 마을의 사람들에게서도 발현되어 그들이 시리아 난민들의 물건을 함부로 다루고, 던지고, 또 그들을 밀치고, 욕하고 하는 등의 모습을 드러낸다. 심지어 그 영국인들은 시리아인들에게 너네 나라 상황이 어떻든 그건 내 알 바 아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데, 언제나 말했지만 21세기의 우리는 서로 이미 너무나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지 않은가. 막말로 시리아의 지금 내전 상황에 영국이 관여한 바가 단 1%도 없겠느냐 이 말이다. 요즘 농담으로 세계사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났을 때 그 원인을 대충 영국으로 찍으면 거의 다 맞는다고까지 하니. 


하지만 진흙 속에서도 연꽃이 피듯이, 인지상정이 무엇인지 아는 올드 오크의 주인 TJ가 시리아 난민들을 포용하기 시작하며 동네의 분위기는 점차 달라져간다. TJ는 그들의 대소사를 챙겨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며, 종국에는 함께 밥을 나눠 먹는다. 예전 그의 어머니가 그랬듯, 함께 먹을 때 더 단단해질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말이다. 


물론 TJ의 천성이 착하다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가 겪어온 과거의 불행들 덕분에 지금 이 순간의 TJ가 만들어졌다 할 수도 있고. 그러나 무릇 연민과 공감이란 서로의 살림과 역사를 들여다볼 때 비로소 생기기 마련이다. 시리아 난민이었던 야라는 이 폐광촌의 과거 역사를 사진으로 들여다보면서, 그리고 현재 그들의 찬장과 냉장고 안 살림을 열어봄으로써 그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마을에서 오래도록 살아온 주민들도 야라의 사진을 통해,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와 음악 선율을 통해 시리아 난민들의 삶을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되는 거고. 


<나의 올드 오크>는 이처럼 시의성 있는 주제로 분명하게 자신의 생각을 담아낸다. 헌데 때로는 그게 좀 과할 때가 있다.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를 극중 인물들의 입을 빌어 너무 직접적으로 전달해낸다거나, 심지어는 현재 시리아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묘사하기 위해 아예 뉴스 풋티지 느낌의 영상을 대놓고 오랫동안 담아낸다거나. 때로는 그 정도가 너무 심하고 과해 다소 부담스럽게까지 느껴진다. 


다만 정상참작의 여지는 있다. 켄 로치. 올해 나이 87세의 이 거장은 이 작품을 끝으로 은퇴의 뜻을 내비쳤다. 물론 대놓고 "이제 나 은퇴하겠소!"라고 공언한 것은 아니었지만, 인터뷰 틈틈이 자신의 시력과 기억력이 나빠져가고 있어 더 이상 영화를 만드는 건 어려울 것 같다 말해왔으니 <나의 올드 오크>를 사실상 그의 마지막 장편 상업 영화라 봐도 무방할 것. 그 관점에서 본다면, <나의 올드 오크>의 이 직설적 화법은 일견 이해가 된다. 한평생을 노인과 아이, 노동자와 식민지의 피지배층 등의 약자들 편에 서서 영화적 나팔을 불어왔던 거장. 그런 거장이 이제 은퇴를 하며 향후 미래에 대해 너무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이야기만 할 수는 또 없는 것 아닌가. 설령 그게 현실이고 진실이라 할지라도. 


그래서 그냥 나는 <나의 올드 오크>를 노선생의 따끔한 일침 정도로 이해하려 한다. 영화의 결말이 너무 순진해 미덥진 않지만, 그래도 그게 이 노선생의 소망인 것 같아 그저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기로 했다. 


<나의 올드 오크> / 켄 로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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