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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KOON Mar 15. 2024

파악불가능하고 타협불가결한

<가여운 것들>


제목이 단수가 아니라 복수다. 영제로는 'Poor thing' 뒤에 's'가 붙었고, 한제에는 '가여운 것' 뒤에 '들'이 붙었다. 그러자니 영화를 보기 전부터 궁금해진다. 과연 영화가 가리키고 있는 가여운 것들이란 대체 누구인가? 아마 가장 가여운 것은 주인공인 벨라 백스터일진대, 그렇담 그녀 외에 가여운 존재가 더 있다는 것인가?


한 여자가 런던의 템스 강으로 뛰어들어 죽음을 택하는 이미지로 <가여운 것들>은 시작된다. 그리고 영화가 전개되면서 우리는 천천히 알게 된다. 벨라 백스터의 외형을 지녔지만 정작 내면까지 그녀는 아니었던 그 불쌍한 여자는, 알고보니 임신한 상태로 템스 강에 투신했다더라. 이후 아직 죽지 않고 간신히 숨이 붙어있었던 그 여자를 갓윈이 인계받게 되는데, 막상 소생시키자니 이미 스스로 죽음을 택한 여인에게는 그게 더 못할 짓이더라. 그래서 갓윈은 그녀의 배 안에 비교적 멀쩡히 살아있었던 아기의 머리를 열어 그 뇌를 아이 엄마의 머릿속으로 옮겨넣었다더라. 그러니까... 벨라 백스터는 자신의 엄마 머릿속에 또아리를 틀고 자리잡게 된 존재라 이 말이다. 


뱃속의 양수 안에서 헤엄치고 있을 당시, 그 아이의 성별이 남아였는지 여아였는지는 묘사되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적 주제와 분위기로 봤을 땐 높은 확률로 딸이었으리라. 그러니까 <가여운 것들>은 결국 아무 것도 경험해보지 못한 소녀가, 자신의 엄마를 죽음으로 몰고갔던 이 세상을 뒤늦게 접해 공부하는 이야기로써 읽혀든다. 몸만 성인이지, 벨라는 이 세상에 대해서라곤 정말이지 아무 것도 모르는 그냥 아이에 불과한 것. 


하지만 그런 벨라의 관점을 통해 <가여운 것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전시함으로써 관객들을 가엾게 만든다. 물론 벨라는 갓윈을 통해서 나름의 가족애를, 덩컨으로 말미암아선 성과 섹스의 쾌락을 알게 되지. 그리고 객관적으로 그건 좋은 거다. 그러나 그 이후는 어떤가. 유람선에서 벨라와 친구가 된 해리는 그녀에게 저 아래 빈민가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들려준다. 이어 프랑스 파리의 매음굴에서 일하게 된 벨라에게, 포주는 또 말해주지. "네 말대로 매춘부 여성이 고객 남성을 선택하는 구도가 훨씬 더 좋을 수도 있겠지. 헌데 현실적으로 그건 불가능하단다. 그리고 너가 계속 이렇게 딴지 걸어 일 못 하면 난 돈을 못 벌게 될 거고, 그렇담 여기 누워있는 내 손녀 딸도 내가 부양할 수 없게 될 거야!"


무구한 역사를 지닌 우리는 그만큼 타협불가결한 세계를 살아간다. 보고 듣기에 좋은 방법이란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고착화된 지금 이 방법대로 하지 않으면 일이 더 불편해지고 느려질텐데 괜찮겠어? 우리는 사회 생활을 하며 그같은 말들을 무수히 많이도 들어오지 않았나. 정석대로 하자면 그렇게 해야겠지만 현실적으로 편하고 서로 다 만족하려면 이렇게 해야하는 거야! 그 말은 학교 안에서도, 회사안에서도, 군대 안에서도, 심지어는 가족 안에서도 떠다니는 말이다. 


포주가 내뱉은 대사대로, 우리는 파악불가능하고 타협불가결한 세계 안에 살고 있다. 그리고 벨라는 그같은 세상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배워낸다. 결국 삶에 대한 나름의 방식을 배워낸 벨라가 깨달은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녀가 알게 된 진정으로 가여운 것들은 과연 누구였을까? 그녀와 그 작은 정원에 모여 앉아 차를 마시던 사람들? 아니, 아마 진정으로 가여운 것은 그 정원 바깥의 우리들 세계일 것이다. 파악불가능하고 타협불가결한 이 세계와 그 안의 우리들 말이다. 비록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표현주의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이미지들을 통해 실제 우리네 세계와 영화 속 세계를 의도적으로 분리하려하고 있지만, 결국 그것은 확대해석과 과몰입을 경계한 감독의 작디작은 배려일 뿐.


<가여운 것들> / 요르고스 란티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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