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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KOON Jun 29. 2024

슬픔이 기쁨의 이유가 될 수도 있다는 경이

<인사이드 아웃>


장난감과 자동차 등에 그랬던 것처럼 감정이란 무생물 또는 추상적 개념을 의인화 시켜내 표현한 픽사의 솜씨, 말해 무엇하랴. 기쁨부터 슬픔, 버럭, 까칠, 소심, 그리고 빙봉에 이르기까지 캐릭터 전반의 디자인이 훌륭하고 직관적이다. 여기에 장기 기억 저장소나 여러 성격 섬들의 묘사, 시험 범위 같은 중요한 내용은 곧잘 까먹으면서도 정작 광고 로고송 같은 쓰잘데기 없는 것들만은 기어코 기억해내는 우리들의 기이함, 이밖에도 '의견'과 '사실'들은 서로 비슷하게 생겨먹어 곧잘 섞이곤 한다는 등의 깊이있는 내면 탐구. <인사이드 아웃>은 볼 때마다 픽사의 능력치를 다시 가늠하게 만드는 가늠자 같은 영화다. <몬스터 주식회사>나 <인크레더블>, <업>, <월-E> 등으로 이어지던 픽사의 황금기 시절 작품들에 비교해도 가히 꿀리지 않는다. 


우리의 감정은 곧 우리들의 기억, 또 우리들의 경험과 바로 직결되어 있다. 그 때 느꼈던 감정은 기억이 되고, 또 그 기억들은 퇴적되면서 하나의 경험 단층으로 누적된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옛날 그 시절을 구체적 인과로 떠올리기 보다, 그저 하나 또는 몇 개의 감정 정도로 연상해내곤 한다. 그 때 우리 참 기뻤었지, 그리고 그 때는 우리 참 슬펐었지- 등으로. 그러니까, 비록 그 때 그 때일지라도 감정은 우리 인생 전반에 길고 긴 영향을 끼친다는 말. 


그런고로 만약 선택할 수 있다면 우리의 감정을 항상 '기쁨'으로 설정해두는 게 어쩌면 좋을 것 같다. 매순간, 매일매일이 기쁠 수 있다면 우리의 인생 전체 역시 마냥 기쁘기만 할 거야. 그러니 슬퍼도 웃고 화가 나도 웃어! 무서울 때나 무언가 께름칙한 순간에서 조차 웃게 된다면 우리 인생은 기쁜 순간만으로 영원할 테니! 왜, 요즘 그런 말도 있잖아. 힘들고 슬플 때 웃는 자가 일류라고! <인사이드 아웃>의 기쁨이가 딱 그 짝이다. 기쁨이는 라일리를 위해서라면 모든 순간 자신이 조종간을 잡는 게 가장 좋은 결과를 낼 거라 믿는다. 가끔 소심이나 까칠이가 끼어들 순 있겠지. 하지만 버럭이, 특히 슬픔이는 조종간에서 멀어지는 게 좋을 거야. 우리 소중한 라일리의 매순간은 항상 기뻐야만 하니까. 그래야만 라일리의 삶 전체도 기쁘게만 남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기쁨이가 슬픔이와 함께 일련의 모험을 거치며 끝끝내 깨달았듯이, 우리네 인생에서 마냥 배제되어야만 할 감정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소심이가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하고, 까칠이와 버럭이가 그나마의 스트레스 해소 창구를 만들어주듯이. 그리고 무엇보다 슬픔. 슬픔은 때때로 상대를 연민하고 그에 공감해주며, 종국엔 자기 스스로조차 차분하게 만들어주는 효과를 지녔다. 어쩌면 그래서 다른 그 누구보다도, 슬픔은 기쁨와 잘 어울리는 짝패다. 나 역시도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어가면서 느끼거든, 이젠 너무 기뻐도 눈물이 흐를 때가 있노라고. 때때론 울며 누군가에게 기댈 어깨를 내어주는 것이, 다른 큰 기쁨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단순하게 딱 잘라 분류할 순 없는 것. 인생사의 대부분이 그렇듯, 감정 역시도 이토록 복잡하고 또 섬세하다. 


슬픔이 기쁨의 존재 이유가 될 수도 있다는 경이. <인사이드 아웃>은 그 기쁘면서도 아련한 명제를 가뿐하게 재증명해내며, 오늘도 치열하게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따스히 위로한다. 슬플 때, 화가 날 때, 무서울 때 등 언젠가 세상에 나만 남은 듯한 기분이 들 때. 오늘 밤이 지독히도 무겁고 길게만 느껴질 때. 그럴 때, 내 머릿속에서 손을 맞잡고 있을 기쁨이와 슬픔이를 떠올려본다. 괜스레 벌벌 떨고 있을 소심이와 그 모습을 한심해하고 있을 까칠이, 그리고 분노를 주체못해 이마에서 불을 뿜으며 길길이 날뛰고 있을 내 안의 버럭이를 떠올려본다. 그렇게 한층 마음이 누그러지는 상상. <인사이드 아웃>은 우리 모두에게 그 상상에 써먹을 장작을 한아름 던져주었다. 


<인사이드 아웃> / 피트 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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