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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KOON May 16. 2024

우리 모두에게는
어렸던 시절의 위로가 필요해

<이프 - 상상의 친구>


영화를 관람한 건 공휴일인 석가탄신일이었다. 그런데 그 날 내 일정과 상영시간이 맞는 회차가 별로 없었고, 하필 그나마 선택가능했던 게 더빙판 회차였다. 어린이도 관람할 수 있는 가족 관객 타겟의 영화니까 더빙판이 있었겠지만 정작 나는 원어로 듣고 싶었고... 하지만 일정이 안 맞았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는 더빙판 회차의 상영관으로 들어가야만 했고. 헌데 마침 공휴일이었다보니, 실제로 상영관 안이 어린이들 천지였다. 물론 그게 싫었단 소리는 아니다. 애시당초 더빙판의 존재 이유가 어린이들에게 있는 것 아니겠는가. 다만 어린이 관객들로 꽉 찬 상영관 안에서 더빙판으로 관람하게된 상황이다보니, 자연스레 이상한 선입견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 이 영화 유치한 애들용 영화인 거구나.'


영화는 실제로 아이들의 세계를 다룬다. 어릴 적, 혼자 놀기 심심하거나 무언가를 혼자 하기엔 용기가 부족할 때를 위해 만든 상상의 친구들. 그 형태는 인간형, 동물형을 가리지 않고 참으로 다양했더랬다. 하지만 그 아이들이 점차 성장해 어른이 되어갈수록, 그만큼 세상 속에서 신경써야할 일들이 더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상상의 친구들이 설 자리는 좁아져만 갔고. 때문에 더는 상상의 친구가 필요없는 어른들은 전혀 그들을 보지 못한다. 인간사 다른 일들에 치여 그들을 다시금 기억해낼 여유나 생각이 없기 때문에. 


솔직히 말해, 나는 어릴 적에 상상의 친구를 만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 때문에 극중 주인공과 상상의 친구들에 100% 온전하게 공감하긴 조금 어려웠다. 하지만 <이프 - 상상의 친구>는 조금 더 확장적인 의미에서 나를 위로해내는 데에 성공했다. 비록 상상의 친구를 만들어 본 적은 없어도, 누구나 가끔씩은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며 남들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짓곤 하지 않나. 물론 그중엔 낯부끄러운 기억도 있어 당장 발로 이불을 차게 만드는 순간들도 존재하지. 하지만 마냥 좋은 것, 마냥 나쁜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잖아. 부끄러운 기억들 못지 않게 흐뭇하고 따뜻해지는 기억들도 있으니 골라골라 즐기고 누릴 수밖에. 


그래서 극중 상상의 친구인 블루가 이미 다 큰 어른이 된 제레미를 정말이지 오랜만에 다시 만나 "넌 할 수 있어"라고 조용히 위로해주는 장면에서 부끄럽게도 나는 눈시울을 적셨다. 또, 주인공 소녀 비가 할머니에게 "할머니는 어릴 적 꿈이 뭐였어요?"라고 묻는 장면 또한 무척이나 아름답게 느껴졌다. 어쩌면 "꿈이 뭐예요?"란 질문은 어린 아이들이 가장 많이 받는 질문들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다 큰 성인들에게는 참으로 아득한 질문이지. 그런 의미에서, 비의 그 물음에 잠깐이나마 과거에 젖어 어릴 때로 돌아간 듯 수줍어하는 할머니 모습이 애틋했다. 한때 발레리나를 꿈꿨던 그녀가, 홀로 남은 집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조용히 무언의 춤을 춰내는 모습은 바로 그래서 따스했다. 


우리가 한때 꾸었던 꿈은 무엇일까? 그건 장래희망란에 써넣었던 직업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꼭 해보고자 했던 어떠한 경험이었을 수도 있다. 막연했지만 반드시, 그리고 명확하게 존재했던 바로 그 꿈들. 그 꿈들은 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바쁜 삶과 각종 책임들에 치여, 어느새 나도 모르게 휘발되어버리고 말았던 그 꿈들에 대하여. <이프 - 상상의 친구>는 다 큰 어른 관객들의 마음을 아주 살짝 꼬집는다. 


그저 '유치한 애들용 영화'인 줄 알았던 게 어쩌면 기대치를 많이 낮춰놨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 떠나서 블루가 특유의 어리숙한 모습으로 제레미를 응원하는 걸 보며, 8살의 나는 지금의 나에게 무어라고 할지 궁금해졌다. 그러니까 꼭 상상의 친구가 아니더라도. 다 큰 우리 모두에게는 위로가 필요해. 한때나마 어렸던 우리 모두에게는 그 어렸던 시절의 위로가 필요해. 


<이프 - 상상의 친구> / 존 크래신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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