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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KOON Apr 18. 2024

팬더 권법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

<쿵푸 팬더>


일찍이 운부천부라고 하였다. 운명의 길흉은 하늘이 내린단 소리.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뚱뚱하고 게을러 일견 심신단련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이던 팬더 포가 평화의 계곡을 지킬 새로운 용의 전사로 점지됐다. 여기에 운부천부라는 그 말을 또 공증이라도 하려던 듯, 대사부 우그웨이 또한 제자들의 불만섞인 문제제기에 딱 한마디로 답하지. "세상에 우연은 없다네..."


그것은 물론 어느정도 옳은 소리다. 우그웨이의 말대로, 하늘에서 갑자기 툭하고 내려온 새 용의 전사는 끝내 타이렁으로부터 평화의 계곡을 지켜내니까. 허나, 제아무리 운부천부라 하여도 그 뒤엔 반드시 절차탁마가 동반되어야 하는 법. 그게 무엇이든 자르고 쓸고 다듬고 갈아야지만 우그웨이가 말했던 바와 같이 우연 아닌 운명의 효용이 생긴다. 그리고 그 관점에서, 포는 적절한 제자였고 또 시푸는 훌륭한 스승이었다. 


영화들을 보며, 나는 언제나 부서진 인물에 감응하고 감동해왔다. 그리고 바로 포가 그렇다. 전설을 곱씹고 영웅들을 액션 피규어로 구현해 매일같이 헤벌레한 표정으로 구경하는 그야말로 쿵푸 오타쿠. 하지만 그 자신이 용의 전사로 선택되어 좋았던 것도 잠시, 이후엔 수많은 자괴감의 벽을 맞이하게 된다. 뚱뚱한 몸매에 기민하지 못한 움직임. 누군가를 죽도록 제압하는 것보다는, 그냥 죽도록 먹고 싶은 게 많을 뿐인 팬더. 그러다보니 시푸의 직속 제자인 전설의 5인방은 물론 바로 그 시푸마저도 포를 무시할 수 밖에. 심지어 시푸는 첫 훈련의 목표 자체가 애초부터 포를 포기시키는 것이었으니 말 다 했다. 쳇, 튀어나온 배 때문에 자기 발가락도 못 보는 녀석이 용의 전사는 웬 용의 전사!


하지만 이같은 난관들에도 불구하고. 과거는 이미 흘러갔고 미래는 아직 알 수 없으니, 그저 바로 지금의 이 현재를 선물처럼 소중히 여기라던 대사부 우그웨이의 가르침과 그 우화등선에 시푸는 마음을 고쳐먹는다. 그렇게 시푸는 훌륭한 사부로서 포를 이끌게 되고, 이에 포 또한 훌륭한 제자로서 시푸를 따르게 된다. 여기에 결과론적으론 '너 자신이 되라'는 족자 속 용의 전사 비법까지. <쿵푸 팬더>는 서양권에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임에도 불구하고, 쿵푸를 비롯한 무협의 동양적 세계관을 아주 뼛속까지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동양적 무협 세계관에 대한 드림웍스의 그 이해도는 비단 정신 수련에만 그치지 않는다. 무협으로 치자면 정신 수련이라 할 수 있을 영화적 주제와 메시지를 단련하는 것엔 물론, 또 그 주먹 수련이라 할 수 있을 액션성에 있어서도 단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코미디의 주체이다 보니 포가 벌이는 액션 대부분은 재미있고 웃길 뿐이다. 허나 그외 시푸와 전설의 5인방, 그리고 무엇보다 악당 타이렁이 펼치는 액션은 애니메이션을 넘어 장르 영화 전체로 퉁쳐 보아도 결코 꿀리지 않는 수준. 특히 타이렁의 탈옥 씬과 대 전설의 5인방 씬, 그리고 이어지는 대 시푸 씬은 무협 장르 액션의 정수를 화려하게 펼쳐낸다. 


무협 장르 안에서 세상은 언제나 의외의 인물을 영웅으로 받아들이고, 또 개개인은 갑자기 드러난 자신의 운명에 순응한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대사부 우그웨이와 사부 시푸, 그리고 그 아래 새로운 제자이자 용의 전사인 포로 이어지는 승계가 재미있기도. 전설의 5인방은 호랑이와 원숭이, 뱀과 학, 그리고 사마귀로 각각 호권과 후권, 사권과 학권, 그리고 당랑권을 의미한다. 여기에 악당 타이렁이야 표권의 상징일 테고. 헌데 적어도 내가 아는 무협의 세계에서, 우그웨이를 상징하는 거북이의 귀권이란 없다. 심지어 시푸는 레서팬더에 포는 그냥 팬더야. 세상에 나는 팬더권은 물론이고 레서팬더권이란 더더욱 들어본 바 없걸랑. 


그래서 우그웨이에서 시푸로, 또 시푸에서 포로 이어지는 승계 라인이 재미있었다. 그들이 규정되지 않은 규격외의 강자들이었단 점에서. 하지만 어쩌면 그 인과관계가 반대였던 것은 아닐까? 알고보면 강하지만 만만한 외면 때문에 뒤늦게 개화했던 것이 아니라, 개화가 늦다보니 스스로를 돌아볼 여력까지 끌어모을 수 있었기에 강자로 등극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시푸가 던져 심었던 작고 하찮은 복숭아 씨앗이 오래도록 자신을 돌아보곤 끝내 초록 싹을 틔워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까 보아라, 우주의 삼라만상은 이미 당신 안에 있다. 


<쿵푸 팬더> / 마크 오스본 & 존 스티븐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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