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브라더나인 Oct 22. 2021

7개월 육아) 우리는 모두 아기와 같다

40대 초보아빠의 육아일기

며칠 전 간만에 출장이 생겨서 수서역에서 부산행 SRT에 몸을 실었다. 열차가 서서히 출발하자 창 밖으로 플랫폼에 설치된 기차 모양의 자판기가 눈에 띄었다. 기차역이다 보니 기차 모양의 자판기를 편의점에서 설치한 듯싶었다. 귀엽고 신기했다. 사진을 찍을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열차가 속도를 내는 시점이기도 했고 그것보다 40살이 넘은 사람이 그깟 기차 모양 자판기를 찍고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게 뭔가 어울리지 않고 좀 창피한 것처럼 느껴졌다. 만약 내가 해외여행 중이었다면 거리낌 없이 사진을 찍고 기록을 남겼을 것이다. 여행자에게는 기록의 의무가 우선이지 않은가.


아기가 6개월이 지나자 부쩍 새로운 것들에 관심을 가지지 시작했다. 이제 엄마, 아빠의 얼굴을 바라보며 눈을 마주치는 순간도 많이 줄었다. 치졸하게도 아기를 키우면서 처음으로 서운한 기분이 들었던 순간이었다. 처음에는 일을 하고 들어오기 때문에 아기와 보내는 시간이 많지 않아 나에게만 그런 것으로 생각했으나 집에서 재택을 하는 아내의 처지도 마찬가지였다. 섭섭한 위안이 됐다.

그 시기쯤 어느 날 아내의 사촌동생이 집으로 놀러 왔다. 약 백일만에 다시 만난 건데 신기하게도 아기는 사촌동생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는 게 아닌가. 얼굴에 눈을 떼지 못하고 뚫어져라 쳐다보는 모습을 보니. 아 너도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아이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한 사실을 이렇게 깨닫다니. 말 그대로 웃픈 상황이었다. 참고로 우리 아기는 낯가림이 없다.


7개월 차가 되니 뒤집기 되집기는 자유롭게 하고 허우적거리며 기려고 안간힘을 쓰기도 하며 이제 혼자서도 잘 앉아 있는다. 앉아있을 때는 아기가 원하는 것을 잡고 놀 수 있도록 한 손으로 쥘 수 있는 장난감, 딸랑이, 인형, 치발기 등을 아기 주변에 늘어놓는다. 이전 같았으면 한창 물고 빨고 잘 가지고 놀던 장난감에도 이제는 금세 실증을 느끼는지 이내 던져버리고 만다. 아마존 쏘서에 놓아도 금방 칭얼거리고 다른 새로운 어떤 무언가를 찾아 한시도 쉬지 않고 머리와 눈으로 주변을 탐색하고 온몸을 비틀며 갈구한다. 최근에는 리모컨에 꽂혔다. 얼마나 갈지 모르겠지만 이렇다면 집안에 있는 물건들을 장난감으로 활용하는 방법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 출장길에 보았던 기차 모양 자판기를 보고 집에 있을 아기를 떠올렸다. 아기가 봤더라면 분명히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것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흥미를 느꼈을 게 분명하다. 조그만 손으로 조물딱 거리고 또 입으로 가져와 맛을 봤을 것이다. 집에서 지겹게 봐오던 모양의 물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그 귀여운 자판기를 보고 급흥미를 느꼈다. 만약 내가 SNS를 활발히 했다면 분명 포스팅도 했을 것이다. 새로운 것을 보고 흥미를 느끼고 관심을 갖는 것은 40이 넘은 나에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아직 아기이다.


가끔 그런 사람들을 마주한다. 어떤 새로운 것을 맞이하더라도 심드렁하고 어떤 때는 냉소적이기까지 한 어른들. 혹은 이미 알고 있는 것마냥 굳이 덧붙여 설명을 하려 드는 사람들. 무언가 그래야만 더 어른처럼 보이는지 그런 사람들과 있으면 나의 반짝거리는 호기심은 금방 퇴색되어버리는 것 같다. 그래서 어른 남자들이 서로 말이 없어지는 것 같다. 그들의 무관심이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의도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어떤 생존 방식이 습관으로 굳어진 것일 수도 있겠다. 어떤 면에서는 서글퍼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어찌 됐던 아직 나에겐 새로운 것에 흥미를 느끼고 관심을 가질 여력이 아직은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 역시 아기와 같고 우리 모두는 아기와 같다.



수서역 기차 모양 자판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