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시장에서 기웃거리는 것. 그곳에서 제품에 대한 이야기를 걸어보려는 것. 광고라 불리는, 브랜드의 숙명이다.
그런데 광고는 근본적인 딜레마를 안는다. 대중이 거부감을 갖는다. 다른 콘텐츠를 즐기기 위해, 대가로, 어쩔 수 없이 보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콘텐츠 경험을 방해한다. 머릿속은 다른 기대감으로 가득한 순간에 나오는 불청객 광고. 브랜드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주려는 의도인데, 슬프게도 광고는 아무리 잘해봐야 광고일 뿐이다. 잘 나가던 앱도 광고가 많이 붙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떠난다. 광고를 숨겼다가 걸린 인플루언서는 팬덤을 잃기도 한다.
브랜드는 묘수를 탐색한다. 직접 콘텐츠 생산자가 되기도 한다. 광고 그 자체를 찾아오게 하는 방법. 배달 앱이 푸드 에세이집을 내고, 스타트업이 영화를 만들고, 수많은 브랜드가 유튜브 채널을 운영한다. 팝업 스토어를 열어 특별한 오프라인 콘텐츠를 만든다. 굿즈 마케팅은 현물 콘텐츠를 주는 방법이고, 맞춤형 광고는 그나마 성 안 낼 것 같은 사람에게 보여주는 광고다. 광고의 딜레마를 타파해 보려는 노력으로 마케팅의 형태는 매우 다양해졌다. 하지만 이렇게 만든 콘텐츠를 홍보하기 위해 또 광고를 하게 되는 아이러니에 빠지기도 한다.
2,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기억에 한창 '스낵 콘텐츠'라는 게 화두였다. 과자처럼 빠르고, 간편하게 즐기는 콘텐츠. 점점 짧아진 콘텐츠가 앞으로의 대세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모두가 손 안의 스마트폰으로 일상의 자투리 시간에, 부담 없이 휙휙 볼 수 있는 콘텐츠를 찾는다는 이야기. 누군가는 현대인의 집중력이 8초까지 줄어든 탓이라고 했다. 그때부터였을까. 소비자의 마음을 단 몇 초 안에 사로잡는 것에 사로잡힌 마케터들이 생겨났다. 대부분은 그래서 무엇을 다르게 해야 하는지 아리송해했다.
대체로 더 긴 본편이 있는 영상을 짧게, '후킹'하게 편집한 영상이 많이 등장했다. 그런데 그것은 콘텐츠라기보단 요약본이 아닌가. 궁금증만 유발하고 빠지는 티저 같은 영상도 있었다. 일부만 보여주는데 짧지 않을 수 없다. 요약을 하고 알맹이만 남겨서 액기스 같은 강렬함을 갖게 된 콘텐츠가 아닌, 본편으로 유입시키는 장치로서의 영상이 아닌, 짧지 않고는 성립하지 않는, 처음부터 짧게 기획된 광고란 어떤 형태일지 궁금해하는 사이, 숏폼 플랫폼은 예측대로 빠르게 성장했다.
숏폼(short form)이란, 이름대로 짧은 콘텐츠를 뜻한다. 얼마나 짧아야 할까. 유튜브의 숏폼 플랫폼 '숏츠'는 60초 이내의 영상으로 규정된다. 틱톡은 60초다. 인스타그램 릴스는 기존 60초에서 최대 90초로 확대한 바 있다. 하지만 이것은 길이의 상한선이고 숏폼으로 불리는 대부분의 영상은 15초에서 30초를 기준으로 하는 듯하다.
브랜드는 면접장에 들어선 면접자처럼 1분 자기소개에아니 영상에 적응했다. 짧게 준비해 보지만, 결국 시작하면 마음이 급해 말이 빨라지고 나를 보여주기엔 역부족이라는 아쉬움과 함께. 그리고선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브랜드에 대한 의미 있는 이야기를 전달할 수 없다면, 굳이 할 이유가 없다. 시간이 제약이 될 때, 브랜드는 숏폼 플랫폼에 참여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우리 회사가 작년에 숏폼 플랫폼에 계정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 사실을 처음 꺼낼 때 주변의 하나같은 반응은 "녹차 회사가?"였다. 대행사는 자신 있게 걱정을 해주곤 자신 없는 솔루션을 제안했다. 패션 브랜드와 스포츠 계정은 성공시켜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조심스럽긴 틱톡 사의 영업 직원도 마찬가지였다. F&B (Food & Beverage) 시장이 크다고 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진 함께 찾아가보자고 했다.
정적이고, 차분하고, 느리게 흐르는 쉼을 제공하는 브랜드가 숏폼 플랫폼에서 무엇을 얻어갈 수 있을까. 반려동물 영상, 댄스 영상, 진귀한 순간포착, 상황극 같은 레시피를 활용하긴 어려운 처지다. 차 브랜드의 본질에서 멀어지지 않으면서 만들 수 있는 숏폼을 탐구해 나간다. 이 여정은 의미가 있다. 광고라는 숙명을 이해한다면 숏폼 플랫폼에 참여할 이유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숏폼 플랫폼의 사용자들은 여타 플랫폼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첫째, 그들은 광고에 대한 거부감이 낮다. '의도 없이' 입장하는 유일한 플랫폼. 그곳의 가장 큰 특징은, 이용자들이 사전에 설정한 어떤 어젠다 없이 들어오고 콘텐츠를 소비한다는 것이다.
어떤 콘텐츠 플랫폼이라도 접속하는 사용자는 대략적으로 머릿속에 어떤 콘텐츠를 볼지, 원하는지, '키워드'를 가지고 들어간다. 그것을 검색해보기도 하고, 비슷한 추천 동영상 중에서 골라보기도 한다. 그리고 나의 기대에 따라 고른 콘텐츠를 소비하기 전에, 그와 별개의, 원치 않는 광고를 시청하게 되는 것이 여전히 일반적이다.
하지만 틱톡에 접속하는 사용자들은 '어떠한 영상을 보고 싶은' 상태가 아니므로, 어떤 영상이든 수용한다. 그렇게 보는 짧은 영상의 합이 하루에 평균 96분에 달한다. 웬만한 프로그램 한 회 차보다 긴 시간이다. 숏폼은, 보겠다는 의식적인 의사결정도 없이 전부 다 보게 돼있다. 광고이건 아니건은 그들의 몰입도에 영향을 크게 미치지 않는다. 사용자에게 일반 콘텐츠와 광고는 콘텐츠 시청 흐름 속에 자연스럽게 묻어있고, 흥미롭기만 하다면 자발적으로 시청하고 호응한다.
둘째, 숏폼 플랫폼의 사용자들은 여타 미디어플랫폼에 비해 참여도(engagement)가 높다. 알고리즘을 학습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사용자들은 영상이 재밌다면, 굉장히 적극적으로 변한다. 좋아요도 하고, 팔로우도 한다. 그래야 알고리즘이 나의 취향을 학습하고, 나의 식성에 맞는 제안을 할 테니.
틱톡의 CEO가 미국 하원 청문회에서 설명한 알고리즘의 원리란 이렇다. 12345를 좋아한 사람과 12346을 좋아한 사람이 있으면, 전자에게 6번을 보여주고 후자에게 5를 보여준다. 이 수학은 영상들이 인기 순위에 밀려 배제되지 않도록 한다. 콘텐츠가 소멸되지 않고, 취향에 따라 주인을 찾아간다. 알고리즘의 추천이 영상 주제나, 카테고리, 사회적 네트워크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나의 결에 맞게 움직인다는 것은, 니치 브랜드에게 또 다른 희소식이다. 주말 연속극 앞에 틀 광고는 수많은 다수에게 소구 될 영상이어야 하지만, 숏폼 영상은 취향과 특색에 대해 이야기해 볼 수 있다. 귀여운 강아지나 신나는 댄스 챌린지 없이도, 해볼 수 있다.
얼핏 결이 전혀 맞지 않는 녹차 브랜드와 틱톡이라는 숏폼 플랫폼. 하지만 녹차 회사가 해볼 만한 이유가 있다. 어떤 상차림이든 맛있다면 수용하고 호응할 관객이 준비되어 있는 곳. 광고에 대한 역차별이 없는 곳. 짧아진 시간이 열린 마음을 가져왔다. 1분 소개를 준비하는 마음이 아닌, 오마카세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광고를 만든다. 브랜드의 본질에 더 가까워진 콘텐츠를 준비해 본다. 취향에 대한 이야기가 브랜드를 닮은 소비자를 찾아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