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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니 Apr 12. 2022

다시 한번 더 기회를

Academic Appeal (성적 재심사 요청) 작성기

2021 7월, 제출 연장을 한 과제의 Fail을 두 번했다.

처음 Fail은 한창 바쁜 상반기 역학조사관 일을 하고 있을 때라 글자수만 맞춰 냈다.

그리고 퇴사 후 배가 불러오면서(임신 중기) 2번째 attempt를 냈고, 역시나 또 Fail을 했다.

학칙상 자동 탈락으로 다음 코스를 진행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다시 말해, 강제퇴학이라는 이야기였다.


변명을 위한 변명을 하자면 임신에, 퇴사에, 이직에, 마음이 복잡하고 몸은 무겁고 해서 실패한 과제를 다시 들여다보는 것이 참 귀찮았다.

일이 바쁘다고 수업도 제대로 못 들은 과목을 다시 들으며 과제하는 심정이란. 그래서 발로 했다, 두 번이나.

'이쯤이면 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과 함께.


결론은 망.했.다.


어떻게 하면 되니, 하고 학과에 문의하니 Academic appeal을 쓰란다.

그게 뭐지, 하니 다시 한 번 더 기회를 주십사 읍소하는 편지를 학교에 요청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요청서를 쓰는 것도 학생회의 도움을 비대면으로 받을 수 있다 했다.


내 담당 Advisor*에게 전화 예약을 하고, 현 상황을 알린 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학생회 메일을 받아 과제 재제출 요청서를 작성하는 팁을 전수받았다.

*영미 대학에는 학생의 학과 생활을 전담 마크하는 학교 직원들이 지정되어있다.


온라인 과정이지만 비대면으로 주는 조언과 도움들은 참으로 유용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영어를 잘 못 듣고, 말하는 건 더 버벅거리는 수준이지만 최대한 쉬운 말과 정확한 표현들로 이해를 돕고 초등학생 같은 단순한 표현에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대답을 잘해주신다.


: 아카데믹 어필을 쓰라는데 어떻게 쓰지?
도우미: 먼저 인사를 쓰고 너를 소개해.
'안녕하세요, 저는 00이고, 학번은 0000입니다. 오늘 제가 편지를  이유는 과제 제출을   fail해서    기회를 달라고 부탁합니다.'
: 그다음은?
도우미: 이제   번이나 fail 받았는지에 대한 너의 사유를 적어. 주로 증명이 필요한 것들로 말이야. 예를 들면, 아팠다면 병원 기록지, 자녀가 아팠다면 자녀 병원 기록지, 일이 바빴다면 출퇴근 기록지나 상사가 네가 바빴다는  증명해줄 레터 같은  말이지.
: 내가 아프일이 바빴는데 입원은  했고, 병원 진료만 했어. 그것도 될까?
도우미: 뭐든! 일단   있는  위주로  말해놔 . 결과는 어떻게 될지 내가 미리 봐줄게.
: 고마워. 초안이 완성되면 검토  해줘.
도우미: 그럼 그럼. 언제든 연락해.


친절한 학교 사람들.

이런 시스템이 되려면 충분한 휴식시간과 만족스러운 베네핏(이익)을 제공해야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정말 순전히 개인의 봉사정신만으로 해주는 것 같지 않았다.


그렇게 편지는 다 썼는데, 증빙서류를 만드는 게 머리가 아팠다.

이전 직장에서 과로했다는 증빙을 해야 하는데

출퇴근 기록지는 따로 없었고, 지문인식은 있는데 인사팀에선 반출할 순 없다고 했다.

굳이 필요하면 관련 기록이 있는 보건소 일반 행정 주사님께 여쭤봐야 한다고 했다.


현재 확진자가 내가 있을 때에 비해 두배가 됐는데 그걸 어찌 달라고 한담.

다른 방법을 생각해봤다.

생각난 것이 급여명세서였다.

그 안에는 초과수당이 찍혀있었고,

공무원의 초과수당은 법령에 기재되어있어

영어로도 열람할 수 있는 정보였다.

‘이걸 첨부하자!’


한 가지를 해결하니 다음 과정이 있었다.

내가 아팠다는 걸 증빙해야 하는데, 단순히 임신만으론 질병이 아니니 붙일 수가 없었고,

임신으로 인한 합병증을 언급한 의사소견서가 필요했다.

정규 산전 검사일에 가서 피부 소양증과 과도한 치질로 인한 출혈에 대해 약 처방을 받은 기록이 있어 소견서를 떼서 번역 공증을 받아 첨부했다.


마지막 검토를 학생회 도우미가 해주고는 이 정도면 완벽하진 않아도 가능할  같아,라고 말해주어 바로 제출을 했다.


제출은 2021년 9월.

답변은 아이를 낳은 11월이 되어도 오지 않았다.

집념의 페일러(failer) 학생은 메일을 보낸다.

"답변 언제 주나요? 나도 계획을 해야 하는데 답변 좀요ㅠㅠ"


좀만 더 기다리라는 성의 있는 답변을 받고도 2주를 더 기다리니 드디어 통과되었다는 소식을 받았다.


그러나 통과 소식을 받음에도 오히려 착잡했다.

이미 손을 떠난 6개월 전의 과제를 하려니 답답한 심경이 드는 것이었다.

남편이 하라고 하라고 하는 잔소리에 미적거리다 겨우 다시 파일을 열었는데도 도저히 손에 잡히지가 않아 SOS를 쳤다.

해당 과목 담당교수에게 줌으로 내 과제를 전면 수정해 줄 것을 요청한 것이다.


역시나 친절하게 처음부터 잘못된 내 과제를 찬찬히 읽어보고는 포인트를 잡는 것부터 알려줬다.

내가 한 것이 아예 잘못된 것은 아니었으나 모듈의 목적과 방향성에 맞는 해답을 내놓지 못했다고 말이다.

나침반이 없는 길 잃은 여행자에게 소중한 조언들을 해주고는 역시나 이번에도 친절하게 일일이 워드로 피드백을 다시 작성해서 메일로 보내줬다.

교수님의 가이드 아래 다시금 과제를 수정해가기 시작했다.


아기는 이미 신생아를 막 졸업했고, 산후도우미 이모님이 끝나고, 시엄마가 오셔서 조리를 도와주셨다.

부지런히 는 아니어도 나름 꾸준하게 수정을 하고, 일러준 이론과 프레임워크를 접목하여 얼기설기 덧대인 과제를 다시 정방향을 꿰매기 시작했다.


이후로 한 달 동안 두 번의 피드백을 받곤, 새해가 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제출을 완료했다.

아, 할 만큼 했다.

이때는 이미 한국에서 석박통합과정을 지원하고 난 뒤라 마음이 떴기도 했고, 다시는 페일과 재제출을 반복하는 7주마다 논문 한편을 써내야 하는 굴레로 돌아가기가 싫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렇게 생일을 며칠 앞두고 아, 맞다. 과제 결과 나왔겠네, 하는 생각에 확인을 했다.

.

.

.

예쓰!!!!!!!!!!!!!!

턱걸이도 아니고 꽤 좋은 점수로 통과했다!!!!!!!!!!

(물론, 재제출은 최대 점수가 minimum으로 설정되어 의미가 없다)

흑흑 ㅠㅠ

우리 아기가 엄마 정신 차리라고 기를 넣어줬나 보구나.

이렇게 6개월간의 재재 제출을 겨우 넘긴 하나의 기록을 남긴다.



현재,,

2022년도 전기 석박통합과정에 들어가서 한국에서 공부 중인 상태를 Advisor에게 노티했다.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본교 교칙상 외부 박사과정을 하는 학생은 자동으로 코스를 나가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내 경우는 예외가 적용될 수도 있어 (영국 내에서 받는 박사과정이 아니라서) 학교에 문의를 해본다고 했다.


4월인 지금까지 학교측의 답은 여전히 미정이지만

만약 된다고 하면 9월에 시작하는 코스를 시작해서 12월에 마무리한 뒤, 디플로마를 취득할 계획을 갖고 있다.

(당근 현재 하는 석박통합 같이하면서;;;)


어디까지나 계획이고 실제로 대면 수업이 확실시되는 2학기에 그걸 시작할까 싶긴 하지만 뭐, 언젠 계획대로 살았나.

그냥 생각이나 해보는 지금이다.


++만약 디플로마 안 따고 수료증 받고 끝난다면 최종 에필로그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온라인 석사과정 궁금해서 구독하신 분들께 미적지근한 결론을 선사한 것 같아 다소 송구스럽네요.

그럼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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