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노니 Dec 13. 2019

결혼기념일

같이 산 지, 1년이 지났다.

이효리가 한창 TV에 나와서 남편에 대한 소개를 할 때 '완벽한 사람은 없어요. 나한테 맞는 사람은 있어요.'라는 말이 인상 깊었는데 내가 딱 그 소리를 하고 다닌다.


사람은 각자 장단점이 있다. 배우자로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부분이라면 둘은 헤어지는 게 맞다. 하지만 세상만사 어떻게 둘로 딱 쪼개지는 일만 있겠는가. 그 지점에서 고민하는 건 개인의 몫이고, 선택에 따른 결과도 개인의 몫이기에 이 사람을 내 반려자로 생각하는 게 맞나, 하는 지점이 있었다.


사람들이 이혼할 때 쓰는 사유로 '성격 차이'를 말하는데 성격 차이가 있다고 하는 몇 가지 요소를 내 기준으로 정리해서 우리 둘의 차이를 적어봤다.


1. 대화

연애를 처음 시작할 시기엔 여느 연인이 그러하듯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할 말이 차고 넘친다. 우리 인생의 앞부분을 본 적 없는 사람과의 인생 대화이니 말이다.


그러다 어느 시점이 지나가면 할 말이 급격히 줄어든다. 취미가 맞고 하는 일이 비슷하면 계속해서 화제가 있겠지만 아쉽게도 우리는 그러지 못한 연인이었다. 영화를 보는 취향도 상반되게 달랐고(나는 서정적인 영화 장르, 그는 액션 위주의 스릴러물), 하고 싶은 취미활동도 달랐다(나는 유화 그리기, 그는 가죽공예).


사귀면서 이렇게 다르면 끌리긴 하지만 힘들다던데 괜찮을까,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우린 사회적 이슈를 바라보는 관점마저도 달라서 각자의 주장을 중심으로 논쟁을 하다 보면 마음이 상했다. 저런 사람인 줄 몰랐는데 저렇게 생각했구나, 하고 말이다.


연애 기간이 길어지고 몸이 멀어져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리는 말을 아꼈다. 떨어져 있는 데다가 싸움까지 잦아지면 악영향이 되어 돌아올 거란 생각에 대화가 줄어들었다. 오랜만에 만나도 딱히 할 얘기가 많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결혼을 했다. 대화가 별로 없던 연애 때를 생각하며 이대로 대화가 없어져서 서로가 소중해지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오기도 전에 우린 수다왕이 되어 버렸다.


부부가 되니 모든 일거수일투족이 ‘가족’ 일이 되었고, 대화가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반려견도 없고, 아이도 없었지만 서로의 일상이 화젯거리가 되었다. 재미있는 지점은 상대방의 본 가정의 구성원들 소식도 '우리'의 일상이 되어 화제가 된다는 점이다. 내 동생이 뭘 해도 남편이랑 얘기하고 남편의 동생이 뭘 해도 남편이랑 얘기한다. 장모님이 아픈 것도, 시엄마가 아픈 것도 공통의 대화 주제가 되고 오늘 내가 변비였다는 사실도, 남편이 차에서 큰 일을 치를 뻔했다는 생리적 현상까지도 화두가 된다.

말이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다.


신기한 건, 연애 때는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로 토끼 편이니 거북이 편이니 하는 걸로 싸웠는데 결혼 후엔 "그래서 거북이는 행복했을까?" 하는 한 가지 주제로 결론을 도출해 내는 방법을 터득했다. 왜 토끼가 행복했는지 묻지 않느냐며 싸우던 조정기간을 거치니 더 이상 토끼냐, 거북이냐로는 싸움거리가 되지 않는다.


2. 가족

결혼할 때 예비 배우자의 가족들을 봤는데 상식이 통하지 않아서 갈라섰다는 사례도 많고, 연애를 하기 전에 그의 부모님을 먼저 만나봐야 그를 알 수 있다는 생각이 있어서 연애하자마자 각자의 어머니들을 먼저 만나뵀다. 사귀는 날부터 해서 어머니랑 밥 먹고 싶다 했고, 친정 엄마가 내가 먼저 볼래, 해서 우리 집 먼저 왔다가 3일 후에 남편 사는 동네로 놀러 가서 같이 식사 시간을 가졌다. 이때부터 내 존재는 결혼할 사이라고 오는 것도 아닌, 그냥 연애를 시작한 사이인데 남자 친구 엄마랑 밥 먹을 수 있는 배포가 큰 아들 애인으로 점찍혔다.


어색하고 대화가 많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서로 좋은 인상으로 남았다. 각각의 만남 속에서 기억에 남은 대사가 있었는데, 우리 엄마는 "얘가 어디가 맘에 들어서 만나요?"였고, 시엄마는 "그런 건 00(남편 이름)이 해야지~"였다.


이 분들의 짧은 문장 속에서 평소 생각을 엿볼 수가 있었다.

엄마는

 [큰 딸과 결혼해 주는 은인 같은 사람은 누굴까]

시엄마는

 [부인을 고생시키지 않는 남편이 되어야 한다]


헤어짐의 위기가 왔을 때, 결혼을 선택하는 순간에 남편과 함께 예비 시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가 함께 사는 데 혁혁한 공이 있으시다.


3. 가치관

결혼을 주저한 이유가 있었다면 종교였을 것이다. 남편은 종교가 없는 사람, 나는 한국에서 개신교 모태신앙으로 태어난 사람이었다. 군대 있을 때 모든 종교에 맛을 들이면서 도전을 해 본 적은 있지만 과학적인 본인의 사상과는 맞지 않는다고 특정 종교에 귀의하지 않았다. 아마 내가 한국에서 오랫동안 한 교회를 다녀온 곧은(?) 신앙인이었다면, 처갓댁에서 사위에게 이쪽으로의 종교 선택을 강요했더라면 갈등의 소지가 될 수 있었으나 둘 다 아니었기에 문제 되진 않았다. 다만, 차이를 좁혀나가는 데에는 난항이 있을 거라 예상한다.


종교적 가치관은 달랐으나 도덕적 가치관은 오히려 내가 모자랄 정도로 배울 면모가 많다. 남편은 동물을 좋아해서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빨대 꼽힌 거북이 동영상을 보고선 식당이나 카페에서 빨대를 쓰지 않는다. 장인어른 환갑여행으로 다녀온 베트남에서 기념품으로 사향고양이 커피를 사 왔을 때 억지로 먹여서 뱉어낸 배설물로 만든 걸 수도 있다고 경각심을 줬다.


자신의 아이를 엄하게 혼내는 일이 생기더라도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은 하면 안 되고, 공공장소에선 절대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는다는 당연한 사실도 가끔 잊어버리는 모자란 나를 일깨워줬다. 그렇다고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고 가르치는 건 아니니 적정선의 이타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남편이 맘에 든다.


4. 불편함을 느끼는 정도

다른 사람이었다면 불편했을 부부생활이 우리 둘은 불편하지 않아서 좋다.


① 집에서의 에덴동산 생활-둘 다 몸에 열이 많아서 샤워 후에 자유인의 상태로 활보하다 취침한다. 한 때, 유튜브로 생활 브이로그 몇 편 올렸는데 친구들이 신랑은 어디 갔냐고 물어서 우리 둘이 있을 땐 심의 준수를 따를 수 없어서 그래,라고 답했다. 그 뒤로 유튜브는 접었다. 이후 한 커뮤니티에서 남편이 너무 헐벗고 다녀서 이런 것도 이혼사유가 되냐는 글을 보고 이런 게 안 맞을 수도 있구나, 알게 됐다.

② 충청도식 유머-(문을 세게 닫았을 때) "그래 가지고 집이 무너지겠어?"라는 유머는 충청도식 은유라고 어디선가 들었다. 할아버지 같은 비유를 다 하네, 피식. 웃었는데 지인과 말하는 중에 그런 비꼬는 식의 은유가 불편하다는 말을 해서 이런 부분이 안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③ 그의 잔소리와 예민함 vs 나의 게으름과 둔함

남편은 예민한 기질이 있고, 어렸을 때부터 허약체질이라 병원에서 살기를 내 집 같이 했었고, 그런 배경으로 인해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잔소리를 많이 하는 성격이 형성됐다. 특히, 먹는 것에서 예민함이 도드라져 냉장고에 한 번 들어갔다 나온 음식은 잘 먹지 않는다고 했다.

(덕분에 식품 관련 일로 먹고 산다)


이런 사람의 와이프가 된다고 했을 때, 다들 험난한 시집살이라고 예상했지만 덕분에 맛있는 게 먹고 싶으면 맛집을 찾아가고 반찬을 굳이 여러 가지 안 해도 되며 나보다 본인의 요리실력이 더 좋으니 남편이 주방장이고 난 항상 부주방장(보조가 더 맞는 표현)을 분담하고 있다.

(1년 동안 장모님이 내가 요리를 제대로 못 가르쳐 미안하다는 사죄만 백만 번 했으나 이제 모두가 익숙해져서 그러려니 하고 있다)


나는 천성이 게으르고 둔탱이라 할 정도로 느리고 둔했다. 엄마 잔소리는 공기 같이 존재해서 누군가에게 잔소리를 듣는 게 어색하지 않다.

(어릴 때는 엄마랑 엄청 싸웠지만 성인이 되면서 조금씩 누그러졌다가 남편의 잔소리가 친모의 잔소리를 뛰어넘으면서 엄마하고 사이가 좋아졌다는 훈훈한 결말)


이 둘이 결혼하니 특이하게 퍼즐 조각처럼 합이 맞았다. 잔소리를 퍼부으면 오오, 그래? 하면서 무시(ㅋㅋㅋ)하다가 남편이 화를 내면 (남편은 화가 나면 삐짐 모드) 그제야 각성되어 내가 고치기로 하고 화해하고 다음부턴 조금 변화되는 모습 보이지만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면 남편이 익숙해지거나 내가 다시 고치거나 한다.


사례 1 : 신발 좀 꺾어 신지 말아라 -> 알았음 -> 습관은 쉽게 안 고쳐짐 -> 반복적으로 말함x10000~ -> 왜 내 말을 안 들어주니, 나쁜 짓도 아닌데 좀 고치렴(한숨) -> 아, 그렇게 답답한 일이야? 알았음, 고치겠음 -> 조금 노력 -> 가끔 버릇대로 신발 꺾어 신음 -> 남편이 발견 -> 신발을 구겨신지 않도록 다 신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출발함 -> 잘 안 고쳐지니? -> 응응, 그렇긴 한데 노력 중이야 -> 그래, 그래. 그럼 됐다.

사례 2 : 차 문 세게 닫지 마라 -> 별로 세게 안 닫는데? -> 시범 보임 (쿠왕!) -> 아, 세게 닫는구나 -> 살살 닫음 -> (감동) 고맙다, 내 얘길 들어줬어 -> 훗, 별거 아니네 -> 문 닫을 때마다 당근과 칭찬을 퍼 부음


* 1년 후 변한 것

잔소리를 듣지 않으면 삐졌지만 이젠 겨드랑이를 공략하거나 발바닥을 공략해서 간지러움에 취약한 나를 미치게 한다. 못 견디는 나의 발길질에 손가락이 삐거나 피부가 긁혀 피가 나는 건 남편의 몫. 이젠 내가 말을 안 들으면 이런 식으로 경고한다.

“곧 있으면 피를 볼 거야. 물론 그 피는 내 피야.”


결혼할 때 우린 분명 많이 싸울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원만하게 협조적인 신혼생활을 하고 있다. 다른 부부들이 싸울 때 집을 나가서 배회한다는 얘기를 듣고 부부싸움을 하면 집을 나가는구나, 하고 이해했을 정도로 크게 싸우는 일은 없었다. 아마 위의 네 가지 중 하나라도 크게 어긋나면 그땐 대대적인 협약서를 작성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 장난

요즘은, 남매처럼 장난치며 입에 있던 물 뿜기, 샤워하는데 화장실 불 끄기 등을 시전 한다.

내가 이성 남자랑 사는 건지, 남자 형제를 입양한 건지 구분이 안 갈 정도다. 장난이 심해진 이유를 생각해보면, 남편은 회사생활로 힘든 심신을 집에서 나랑 장난치며 푸는 거 같다. 신혼 초만 해도 쇼핑이나 간식으로 해소했는데 집에 와서 멍멍이를 보며 힐링하듯 장난치는 걸로 스트레스를 푼다.


-- 심신의 건강

타고난 피부 트러블 유발자라 남편이 남자 친구이던 시절부터 이것저것 사다 주며 피부 케어에 신경 써줬다. 같이 살면서 본격적으로 관리가 시작되었다. 요즘 잔소리의 8할은 운동과 피부관리로 쏟아진다. 하루 한 번 이상 헬스장 다녀올 것, 생각날 때마다 미스트로 얼굴에 수분 보충하기, 물을 자주 마시기, 배달음식을 지양하기, 밀가루를 지양하기, 건강한 샐러드를 자주 먹기 등의 잔소리로 나를 관리하더니 괄목할 만한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친정 엄마를 시작으로 나를 알던 주변 사람들이 눈에 띄게 피부가 깨끗해졌다 하고, 몸도 훨씬 날씬해 보인다(살이 빠진 건 아니다)고 말한다.


-- 주도권을 내게로

첫 번째 헤어짐의 발단이 본인이 나에게 미주알고주알 고하지 않아서라고 각성해선지 그 이후로는 좋은 거, 안 좋은 거 빼놓지 않고 털어놓았다. 플레이 스테이션 연간 게임 회원권이 4만 원인데 나한테 물어보고 결정할 정도니 말 다했다.


--평화로운 시월드, 처월드

시댁에서도 친정에서도 자기 자식의 배우자는 하늘이 내려준 사람이라고 인정한다.

- 저런 까칠하고 예민하고 잔소리 많은 애한테 맞춰 살아주니 고맙다.

- 이런 덤벙대고 게으른 애를 채찍질하고 당근도 주면서 공부시켜줘서 고맙다.


결혼을 결심할 때 나밖에 없던 게 맞았다. 모든 수입의 지출은 내가 60이고, 본인은 15 정도 나머지가 저축이다. 내게 쓰는 어학 교육비와 한국에 갈 일 등으로 쓰는 비용 때문에 그렇다.


향후 장래는 어찌 될지 모르나 우린 같은 방향의 꿈이 있다. 적성으로 보나 흥미로 보나 남편은 살림꾼, 나는 일꾼형이다. 양가 부모님도 우리 둘의 미래에는 서로의 적성에 맞는 일을 하길 응원하신다.

이전 03화 한국 의료보험의 장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