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살이, 이럴 때 본국에 귀국 정착하고 싶다.
* 남편은 한국회사의 파견직으로 등록되어 4대보험을 납부하여, 의료보험이 되는 사람의 경우입니다.
2019년 9월 일기.
간단한 부인과 질환으로 한국에 한 달간 머무르게 됐다.
질염이 없었는데 생기더니 1년 동안 반복적으로 불편감이 느껴져 여름휴가 때 병원을 찾았고, 병원에서 레이저 소작술을 받아서 자궁경부를 단단하게 해 주면 입구에서 나오는 분비물이 줄어들어 세균 감염의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고 소견을 듣고 남편과 엄마가 동시에 그럼 가을에 한국에 와서 치료도 받고, 영어 공부하면서 쉬라고 강력하게 권고하여 친정집에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기거하게 되었다.
시술은 1시간 남짓으로 간단한 데 비해, 의사 선생님은 한 달간 자주 내원해서 경과 지켜보는 게 좋으니 한국에 있어달라고 하여 어쩔 수 없이 한 달이 넘는 시간을 한국에 체류하게 되었다.
현행 의료보험이 너무나도 잘 되어 있어 해외 시민권을 받은 사람도 혜택을 보고, 외국인도 혜택을 보고 있기 때문에 최근 해외에 출국해서 한동안 들어오지 않는 사람의 의료보험은 자동으로 닫힌다. 만일 이걸 풀지 않고 귀국해서 바로 병원으로 가게 되면 진료비를 그대로 몇 만 원씩 지불하게 된다. 물론, 공단과 연결되어 있어 진료를 보기 전에 접수대에서 "보험이 안 되어있네요, 진료 보시겠어요?" 하고 물어보기에 갑자기 많은 돈을 치료비로 낸 적은 없다.
의료보험을 풀려면 내가 혹은 회사가 직접 공단에 들어가서 이 사람이 귀국하니 보험을 풀어주십시오, 하고 요청서를 팩스로 보내면 2-3시간 안에 정상화된다. 해서, 한국에 갈 때마다 우린 한국 회사에서 담당 직원분이 보험을 풀어주셔서 자유롭게 병원에서 볼 일을 볼 수 있다.
중국에서 중국어가 안됐을 때는 조선어(조선족이 쓰는 한국어; 중국은 한국어를 조선어와 한국어로 구분한다)를 쓰는 국제 진료부가 있는 '인민병원'에 간다. 인민병원은 우리나라로 치면 국립의료원 도립의료원으로 보면 된다. 시설은 굉장히 크고 좋으나 내부 시스템은 여전히 90년대 초반 야전병원 수준이다. 의료진들은 성심성의껏 진료해주고 치료해주지만 딱 내가 초등학교 때 예방접종 맞으러 갔던 보건소, 도립병원의 냄새와 느낌을 풍긴다.
시스템도 에티오피아에 있을 때와 동일하다. 접수를 하고 진료를 본 뒤, 혈액검사나 기타 검사 및 치료가 들어가면 다시 접수대에 가서 수가를 계산하고 검사를 받고 약이나 처방 재료들도 직접 약국에서 사 와서 들고 가야 치료가 가능하다. 접수만 하면 그 안에서 무슨 일이든, 수술을 빼고는 다 알아서 해 주는 한국 병원과는 다른 점이다.
그렇다고 한국인 의사가 있는 개인 병원으로 가면 진료만 보는 비용이 편도 비행기 값이다. 치료까지 받는다면? 그냥 한국 가는 비행기를 타고 인천에 있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것과 동일한 값이거나 더 싸게 먹힐 수 있다.
그나마 인민병원에 가면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한국말로 진료가 되고 간단한 피검사나 약을 지어먹는 게 가능해서 이용하지만 화상과 같은 전문 치료가 필요한 부분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 번은 남편이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뜨거운 물에 2도 화상을 입은 적이 있다. 휴가 하루 낼 수 없는 환경의 곳인지라 혼자서 1시간가량을 다친 발에 찬 수건을 덮어두고 운전해서 왔다.
그렇게 간 병원에선 한국어가 가능한 외상 치료과가 없으니 병실을 회진하고 남는 시간에 치료를 하는 외과 전문의에게 가야 한다고 인계했다. 겨우겨우 찾아서 11층으로 올라가니 중국어가 안 되어 다시 국제부로 전화를 돌려서 이러쿵저러쿵 히스토리를 인계받아 뭐라 뭐라 적어준 처방약을 가지고 다시 1층으로 갔다.
계산을 기다리고 약 사는 것을 기다리고, 1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의사와 남편의 화상과 약이 한 자리에 모였다. 과격스러운 전문의의 손길은 흡사 에티오피아에서의 치료와 다를 게 없었다. Contamination(오염)되지 않도록 무균술을 지키는 건 바라지도 않았으나 거의 상처를 손으로 쥐어뜯다시피 하는 부분에 남편은 화가 났고 나는 그냥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현재 중국에서 의료인도 아니고, 뭣도 아니고, 치료의 전권은 의사인 그가 쥐고 있었으니 말이다.
드레싱이 다 끝나고 나서도 한참 있다가 차트를 쓰는데 이게 20분이 넘어가자 남편은 아픈 데다가 부아가 치밀어 올라 그냥 나가버렸고 우린 우리의 차트를 회수하지 못한 채 병원을 나서야 했다.
결국, 이틀에 한 번 드레싱을 받아야 하는 상처치료는 집에서 내가 했다. 필요한 약품은 현지 약국과 한국인이 운영하는 약국에서 먹는 항생제와 소독약을 샀고, 좀 더 좋은 퀄리티의 화상 연고와 붙이는 드레싱 제제는 한국에 간 친한 언니에게 부탁해서 받았다.
이럴 때 미약한 지식이나마 뭐라도 배우고 경험한 게 있어서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익히 알고 있는 것들이고, 남편이 부아가 치밀면서 다시 현지 병원에 안 가도 되고, 한국말로 왜 이렇게 아프게 하냐고 따질 수 있는 마누라가 거즈를 갈아주었으니까 말이다.
위와 같은 상황들로 인해 우린 현지에서 병원을 1년 동안 세 번 갔다. 나머지 정형외과, 산부인과 일로 내진과 사진을 찍어야 하는 외과적인 과라면 무조건 휴가에 한국에서 진료를 봤다. 만일 입원이라도 해야 하는 질병에 걸린다면 정말 재앙 같은 상황이 펼쳐졌을 것이다.
**어쩌면 현재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상황이 합병증으로 인한 사망을 막을 수 없는 건 인재가 아니었을까
아플 때면 미국이든, 유럽이든 모든 교민들이 입을 모아 말한다. 한국이 최고라고. 3천 원이면 끝나는 진료비. 만원이 안 들면서 이비인후과든 소아과든 진료와 간단한 처치가 한 자리에서 가능한 곳. 그곳이 내 본국이라는 사실만으로도 큰 보험이 된다.
어른이 아파도 이만한데 아이라도 있다면 정말 한국에 있어야 하는 게 맞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고 한국에서 다시 정착하고 싶은 마음도 간절하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서 서울 주변에서 살려면 아직 목돈이 더 필요하다. 1년만 더 버티자는 마음으로 오늘도 우린 고국을 떠나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