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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니 Mar 03. 2020

따뜻한 말 한마디

2년 차 신혼부부의 일상

-중국에서의 신혼 일상 소회-


따뜻한 말 한마디

부부 사이 당연한 건 없다.

출퇴근 시, 항시 메시지를 보내면 수고한다, 고생한다 말로 인사하고 남편이 월급 때마다 주는 생활비에 고맙다, 고생했다 표현한다.

남편이 돈 벌어다 주는 게 당연한 게 아니니까


남편도 마찬가지, 내가 설거지 한 뒤, 아침 차려줄 때, 옷 챙겨줄 때 고맙다고 수고했다 해준다. 그거 별로 시간 안 들고 오래 남는 소소한 이벤트 같다. 누굴 툭 쳤을 때 사과를 습관처럼 하듯, 고맙다고 습관처럼 하면 마음이 한없이 따뜻해지는 것 같다.

막상, 당시엔 물 흐르듯 흘러가서 당연한 말처럼 들렸지만 집사람은 혼자 집에 있을 때, 바깥사람은 일하다 힘들 때 곱씹어진다.

그럼 힘든 것도 조금 빨리 지나갈 수 있게 이겨내 진다.


부부싸움

여느 부부인들 크고 작은 불협화음 없으랴, 폭풍처럼 한 번씩 지나가는 법.

서로 안 맞는 게 있다. 이건 타협할 수 없을 것 같이 달라서 누구 하나가 희생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해결될 수 없을 것 같은 문제들에 직면할 때가 있다. 싸움이 되는 시발점은 갈등이 생길 때 교과서적으로 ‘미안해’, ‘나도, 미안해’, ‘사이좋게 지내자’ 하고 해결할 수 없는 데 있다. 개인의 습관과 가치관이 충돌하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점은 그 부분이 갈등이 폭발함으로 인해 융화되어간다는 사실이다. 물론 갈등이 쏟아지는 방법이 가구수만큼이나 다양하지만 그건 갈등의 번데기가 나비로 부화하는 과정과 같다.


용광로에 끓는 쇠처럼 절대 녹지 않을 주물들이 마구 들어오는 시기인 신혼 시기(기간에 대한 정의는 다르지만)가 절절 끓고 오래 꿍꽝꿍꽝 두드리다 보면 최고급 철이 나온다.

언제 다른 모양이었냐는 듯 말이다.



잠도 많고 게으른 나와 나름 건강한 생활습관이 배어있는 사람이 회사 출근 때문에 더더 새벽형 인간이 되는 남편

집에 있는 건 그냥 빨리 먹어치우는 하마 같은 나와 썩지 않는 한, 아껴뒀다 먹는 남편

이 둘이 만나니 아주 신명 나는 자진모리장단을 얼굴도 잘 못 보는 주말마다 풍악을 울려댔다.

(뭐, 그렇다고 엄청 싸운 건 세 번 정도 되나, 그것도 남편이 차분해서 악다구니 지르는 싸움은 상상도 못 함, 친정집에서 동생이랑 엄마랑 싸우던 거에 비하면 절간이나 다름없음)


단순히 습관이 안 맞아서 싫은 게 아니라 내가 이만큼 참는다 생각하고 내가 이만큼 희생했다 생각하는 부분을 이해받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어떻게든 이해시키고 관철시키고자 풍악을 울려댔던 것 같다. 내 맘을 알아줘, 왜 내 맘을 모르니, 하고 둘 다 같은 노래를 같이 부르는 느낌이다.


그래 봤자 섬처럼 고립된 환경에 친구가 있나, 가족이 있나, 아무도 없어서 한 두 회의 풍악이 울리고 나서 이제는 풍악을 울리기 전에 왜 풍악이 울리는지 알고 하자, 로 넘어가기 시작하면서 결국 굳이 자진모리장단을 쳐대야 하나 그냥 앉아서 얘기해보자, 식으로 감정이 상하지 않게 수위를 조절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그냥 서로가 원하는 삶의 태도를 받아주면서 한바탕의 신혼 조정기간이 끝났다.

일일이 말해주고 관리해주기 좋아하는 남편이 엄마 같은 잔소리 하는 것을 인내하고(가끔 너무하는 거 아니냐고 응수), 남편은 매일 같은 잔소리에 3번 말하면 1번은 말한 대로 따라주는 콩순이 인형(재우면 자고 먹이면 먹는) 같은 와이프에 감사하며 보폭을 줄여나갔다. 하잘것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 하루하루 모이니까 이 쓸데없는 데에서 재미를 느끼려고 다들 결혼해서 행복하다고 하는 건가, 하는 의구심이 들긴 했다.


결론은 갈등을 풀어나가는 대화가 있어서 싸우면서도 좋다. 맨날 웃고 놀기만 하다가 진중해져서 토라지고 풀고 나면 시니컬한 면을 봐서 스릴감이 느껴져 공포영화가 따로 필요 없다. 결혼은 미친 짓이라는데 확실히 미친 사람끼리 만나서 제정신인 척하는 게 결혼인 거 같긴 하다.


 P.S 기나긴 롱디 부부의 시간이 어서 마무리되고 권태기가 찾아와 볼 수 있게 붙어 지냈으면...(코로나 썩 꺼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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