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이 걸려서 적응하다
2019년 11월 일기.
고등학교 때를 떠올려보면 재수하기 싫어서 수시에 올인했고, 공무원 시험 싫어서 병원 그만두고 공무원 시험은 생각도 안 했다. 그만큼 혼자서 무언가를 목표로 공부하는 것이 힘들다. 학교에서 학교 공부를 하다가 졸업을 하거나 취업을 하는 건 따라가겠지만 '독학'이라는 것은 특히나 집에서 공부한다는 것은 나 같은 의지박약러에게 가당치도 않는 일이었다.
그런 나에게 집에서 혼자 공부하는 시간은 쥐약 같은 시간이 되었다. 물론, 주부를 전업으로 하고 있었으나 주방일에는 잼병이었고, 청소나 빨래는 원래 일을 하면서도 개인이 스스로 해야 하는 일이었기에 특별히 살림을 하는 건 없었다.
남편도 내 직업은 전업주부가 아니라 고시생이고, 주 업무는 살림이 아니라 어학공부라고 당부해놨다. 돈을 벌지 않으면서 스스로 목표를 정해놓고 하는 공부라니, 처음 해 보는 일이기도 하고, 하기 싫은 과업이기도 했다.
억지로 해야 하는 공부 중에 잘하는 것은 직업과 관련된 일이면 나름 순응하고 잘 따라갔다. 병원에 있을 땐, 인증제로 선생님들이랑 같이 공부했고, 봉사 가서 스스로 자료 찾는 거 했고, 연구원 시작하면서 통계에 대해 기억도 안 나고 어려우니 온라인 통계 교육청 사이트에 가서 평균에 대한 개념부터 퇴근 후에 공부했다.
정해진 업무가 없이 흘러가는 공부시간은 지루했다. 일단 가져간 책으로 공부하고 학원을 다니면서 중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적응하고 나니 이듬해부터 유튜브, 인스타툰에 손을 댔으나 한 두어 개 만들다가 에고, 귀찮다, 재미도 별로 없다, 하면서 멈췄다.
그중 어쩌다 알게 된 브런치에 3개월이나 걸려 글 세 개를 겨우 작성하고 작가 신청하고 승인받았으나 거의 반년 간 방치하다 여름부터 저장한 글을 꺼내기 시작했다. 운동도 꾸준히 다니려고 시간을 정해두고 수영을 시작했다.
자기의 시간을 가지는 프리랜서들은 자기만의 패턴을 만들어놔야 한다고 해서 부단히도 노력했으나 가끔씩 터지는 심리적인 변수들이 한 달을 지속하지 못하게 했다.
중국어 시험이 코앞에 닥침, 갑자기 한 달안에 논문 한 편 써야 함, 한국에 다녀와야 함, 친구가 생김, 아이패드가 고장 나서 수리하러 다녀와야 함, 계획이 전면 수정됨 등등 한국에서라면 그냥 있을 사소한 에피소드가 집에서만 있는 사람에겐 왜 이렇게 크나큰 레벨로 다가오는 건지 의아했다.
되도록이면 저러한 변수들에 넘어지지 않기 위해 몇 가지 도구들을 전략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한다.
아이엘츠 영어 시험을 준비하면서 알게 된 [챌린저스]라는 앱과 가입한 여러 카페에서 주제에 맞는 카톡 스터디를 개설하면 참여했다. 역시 돈을 주고 습관을 사는 방법은 현명했다. 제법 돈도 모으고 습관도 만들어놔서 혼자 공부하는 답답함과 지루함을 이겨낼 즈음, 목표에 대한 불안함으로 해외파견 사업에 계약직으로 이력서를 지원해 본다.
혹시 된다면 이력을 추가하면서 원격으로 대학원을 다니면 이점이 될 것 같아서였다. 물론, 남편의 허락과 지지가 꼭 필요한 부분이지만 본인도 나의 공부와 계속적인 커리어를 응원하니 되기만 하면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도전을 시작했다.
기혼에 한국에 거주하지도 않는 여성을 누가 면접이라도 볼까, 싶었는데 면접 제의가 왔다. 화상으로라도 면접이 가능하단 말에 응했고, 생각보다 준비되지 않은 나의 마음과 영어 실력, 그리고 무례하지만 현실적인 질문들이 있었다.
"아이는 없고, 혹시 계획이 있나요?"
"남편의 수입이 얼마나 되나요?"
"혼자서 떨어져 살 수 있겠어요?"
왜 묻는지 알겠으나 굳이 그 질문들이 문제가 되는 부분이라면 나는 그곳에 지원하지도 않았고, 면접에 응시하지도 않았을 텐데 굳이 면접에서 저런 질문을 하는 저의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심심하신가, 새로운 응시자의 생각이 너무나도 궁금했나, 싶었다.
결국, 이런저런 소일거리를 하다가 정착한 브런치 글쓰기만이 내가 하는 일중에 가장 큰 유흥거리가 되었고, 남편과의 결혼생활은 행복 그 자체지만 남편도, 나도 결혼생활 외의 모든 생활들은 맘에 들지 않는 상태로 1년을 보내고 있다.
우리가 각자 적성에 맞는 일을 하면서 매일 저녁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삶은 언제쯤 만날 수 있을지 몹시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