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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니 Dec 20. 2020

[출간전 연재] 3주 차 역학조사관의 소회

조무래기 역학조사관 일기

*본 글은 종이책 출간 전 발행 글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향후 출판 서적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12월 2주 차는 월요일부터 시작했다.

지난주 워밍업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확진자를 맡아서 인터뷰도 하고 보고서도 작성하고, 전산 입력도 완료하는 일을 하게 됐다. 원래 역학조사관(이하 역조관)이 하는 일은 주로 확진자 대면 인터뷰나 조사 업무 후 접촉자 분류인데 공중보건의나 한시적 임기제 공무원(최대 3개월 정도 근무)이 아니라 무기계약직 같은 정식 직원으로 시에 소속된 역조관이라 보건소 내 부서가 있고, 부서마다 과장님 팀장님 상사와 사수가 있다.


게다가 한국의 공무원 사회이지 않은가. 어디 상위기관에서 잠깐 파견 나온 게 아니라 조직에 막내로 출근을 했으니 주는 일을 배우며 시작했다.


전화 업무를 하면서 지침과 실제 적용되는 각양각색의 사례들을 포괄할 수 없는 점이 애석했고, 현장에서 확진자/접촉자를 대면하고 검사할 때 융통성 있으면서 위험을 최소화하는 지침을 잘 따르는 완벽한 방법이 무엇인가를 자꾸 생각하게 했다.



자가격리는 경제적 공포와 심리적 공포 모두를 가져다 준다.

밀접접촉자, 능동감시, 수동 감시, 이 세 가지는 접촉자를 분류하는 기준이 된다.

(접촉자로 분류되면 즉각적인 검사와 자가격리가 시행되어야 한다. 어길 시, 법적 조치를 받을 수 있다.)

건물 환경, 사람들 간의 접촉 정도를 판단하는 것은 조사관 개인차가 있을 수는 있지만 국내/외 연구를 통해 만들어진 지침의 테두리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마스크를 벗었고!, 식사를 했고!, 집에 같이 있었다면! 자가 격리자에 속한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순순히 따라주지 못하는 현실이 있다. 주된 원인은 생계유지. 직장인이 얼마 없는 소규모 회사일수록 2주간 문을 닫아야만 하는 경우까지 발생하다 보니 간청하기도, 윽박을 지르기도 하신다. 


반응은 어떤 것이든 당연한 것이라 상관없으나 문제는 끝끝내 설득이 되지 않고 결국 수칙을 어기겠다고 하시는 분들이다. 안 그래도 힘들다고 하시는데 구상권이나 경찰 고발까지 당하게 하고 싶지 않으니 제발 우리 얘기를 잘 들어주시라, 부탁한다, 그럼에도 안된다면 몇 시간이고 간격을 두고 다시 전화하고 어르고 달래고 빌면서 알겠다는 답과 인적사항을 받아낸다.


뭐, 이것 하나뿐이겠는가. 확진자 인터뷰부터 가족 연락, 동선 겹치는 회사, 친구, 학교 등등 관계자들과 얘기하고 설득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가장 답답한 건 팬데믹이 정부가 하나부터 열까지 수발을 들어서 개인을 모셔가야 하는 상황은 아니라는 점이다. 


확진이 되거나 격리자가 되면 손하나 움직이지 않고 전자동 시스템으로 고객님을 만족시키는 스파 서비스 같은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더러 있다. 


확진자는 병원이나 치료센터에 가기 전까지 대기를 해야 하고, 격리자는 가까운 관할 보건소에서 검사를 받고 집으로 와 격리를 시작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은 유선으로 통보되며 와상 환자나 거동이 힘든 장애/노약자분들에 한해 이송 전담반에서 중간에 시간을 빼서 검사를 나가는 것 외에 일반인들은 본인의 '차'나 도보로 와야 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타인과 접촉이 생길걸 우려하여 지침상 그렇게 안내한다.


물론, 내 잘못이 아닌데 억울하게 일도 못하고, 나가지도 못하며 귀찮고 아픈 검사(코에 면봉을 넣을 때 따끔하다)를 해야 하는 심정은 백번 수긍이 되지만 한두 명 확진되었던 사스 같은 상황이 아닌지라 지원이 미흡한 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데 전혀 협조가 안 되는 경우가 발생할 때마다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우리도 알아요, 시스템이 단단하지 않은 거.

팬데믹 선언은 2020년 3월에 터졌다. 10개월이 되었고, 그동안의 경험이 쌓였지만 1000명대 확진자는 너도 나도 우리도 처음 겪는 일이 아니던가. 2월부터 전국에 1000명대 확진자가 계속 이어져와서 시스템이 완벽히 보강된 것이 아닌 것을 모르시는 분들이 많다.


병상이 모자라고, 겨울에 이럴 거라는 거 전문가들이 말했는데 정부랑 지자체는 뭘 했느냐고, 하시면

"네, 그렇죠, 맞아요, (근데 저도 일개 직장인이고, 누군가의 지시로 일을 하는 아랫사람인데 정치인도 아니고, 대통령도 못한걸 어떻게 하죠ㅠㅠ),.... 죄송합니다. 미리 시스템이 준비되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죄송한 마음은 사실이나 제가 병상을 일부러 안 만든 건 아니고, 격리를 시켜서 괴롭히겠다는 건 아닙니다)."


사회생활하는 한국의 직장인들은 회사가 어떤지 알지 않는가. 그 속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일을 하는 것인데 그냥 내팽개쳐 둔다는 항변을 하시면 어찌할 도리가 없다. 


저도 서울에서 다달이 월세 내며 공공임대로 저렴하고 회사에서 가까운 주거지를 기다리고 있고, 이번 달 월급 없으면 다음 달 생활비 걱정하는 것은 동일합니다. 역학조사와 접촉자 분류는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조치하는 것이니 조금 더 양해를 부탁드린다고 거듭거듭 반복해서 설명하고 완료한다.



24시간이 모자라.

예전에 다니던 직장보다 두배 더 일하고, 두배 정도 더 버는 것 같다. 그리 나쁘진 않다 생각하면서 일하고 있는데 다들 한 마디씩 거들어 주신다. 이 시국에 와 가지고, 예상한 정도냐고. 

"예상하고 와서 마음은 괜찮은데 일이 좀 더 빠르고 정확해지면 좋겠어요."


아직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고 그러니 다른 관리직급에 있는 분들보다는 일찍 퇴근(밤 10시~12시 사이,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8-9시) 주말 중 하루도 쉴 수 있다. 


다른 지자체보다 인구수가 적은 편이라 바쁠 때는 바쁘다가 한바탕 조사 후 전산 정리할 시간은 있어서 그나마 누락한 것 없이 대응이 가능한 것 같다.


타시에서 이관되어 넘어온 경우, 초토화된 도시의 상황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휘갈겨 쓴 문서와 잘못 쓰여 있기도 한 역학조사서를 볼 때면 왜 이렇게 주시나, 보단, 아이고 확진자 많이 나왔나 보네, 한다.


이번 주는 대학원 리포트와 재시험이 있어서 2-3주에 걸쳐 주말을 오롯이 과제에만 힘 쏟으며 온전한 쉼 없이 컴퓨터와 한 몸이 되어 살았던 12월이었다.


그나마 제출할 것을 다 해놓고 보니 출근해서 늦게 오더라도 한시름 덜게 되어 이번 주랑 다음 주는 살짝 산뜻하게 퇴근할 수 있을 것 같다(소망).


++ 뉴스에서 보다시피 많은 인력들이 코로나 대응에 불철주야 일하고 있다. 사무실에서 역학조사하는 사람이 병상에서 간호하고 진료, 검사하는 분들보다 힘들랴. 징징대는 소리보단 가끔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께 글을 통해 조금이라도 양해가 구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적어 보았다. 


사실, 설득이 필요한 분들보다 예스 피플들이 더 많다. 무엇을 얘기해도 당연히 알고 있고, 이해하며, 고생은 담당 직원들과 의료진이 하는 것임을 백분 이해해주는 말씨를 듣다 보면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을 통보하는 사람으로서 고마움과 미안함을 깊이 느끼게 한다. 


협조와 양보와 배려는 마스크보다 강하게 코로나로 인한 힘듦과 부작용을 멀리하게 도와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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