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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니 Dec 05. 2020

[출간전 연재]1주 차 역학조사관의 소회

조무래기 역학조사관의 일기

*본 글은 종이책 출간 전 발행 글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향후 출판 서적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 번의 임기제공무원 면접을 보고 탈락과 임용취소 등을 거쳐 한 곳에 정착했다. 직무는 역학조사, 직위는 시간선택제 다급, 호칭은 '주사'. 


보건소 내 감염병을 담당하는 행정과에 예속되고, 당장은 기초조사 및 수반되는 행정업무를 배운다. 기관엔 공보의이며 자원해서 도에서 파견한 역조관들이 있다. 한두 달 뒤면 이들의 파견이 종료되고 우리가 중앙에서 받는 교육을 받고 나서 역학조사 업무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것이라 예상하는데, 이 부분은 그렇게 될지 아니면 지금처럼 한 명의 일반직 공무원 일만을 담당해야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무도에는 상사분들과 더 위의 분들까지 포함한다. 



1일 차

계정 접근의 권한도 없는 상태에서 오티도 받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출근 첫날이 지역 사상 최대의 확진자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초동대처가 중요한 만큼 신규들을 쳐다볼 여력은 그 누구에게도 없었다. 다행히 같이 신규로 발령 난 주사님 한 분이 시스템을 알고 있어서 계정 발급 절차 등을 도와주고, 아는 만큼 일을 알려주었다. 


사무실은 두 곳인데, 하나는 칠판이 있고 책상만 있는 역학 조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행정/사무쪽 일을 처리하는 전체 사무실이었다. 신규들의 책상은 전체 사무실에 꾸리고, 조사에 대해 질의하려면 전화나 아래 역조실에 가서 물어본다. 


파견 나온 역조관님 두 명 중 한 분은 타 지역 파견 중이었고, 그들도 실전 바로 투입이라 배우며 하고 있다 했다. 중앙 질병청에서도 동일하게 말했었다. 'Learning by doing'  일하면서 스스로 습득하라. 왜냐하면 신종 감염병이라 기초 자료들이 전무하고, 일하면서 쌓아갈 수밖에 없어 그렇다. 신규 간호사, 레지던트 (전공의) 등도 비슷한 성격으로 일한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 보건소 일을 해 본 적이 없어 모르지만, 학생 때 실습 갔던 분위기와 확연히 달랐다. 긴급하고 빠른 판단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흔히 말하는 공무원에 대한 '느린 일처리', '편하게 일함'이라는 수식어는 찾아볼 수가 없다. 



2일 차

어제보단 시간이 조금 나서, 일을 조금씩 알려주셨다. 물론, 일을 다 안다는 전제하에 해보라고 가르쳐 주기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내 손에서 해결해야 할지 생각하다 보면 일이 늦어지기 일쑤였다. 그나마 암센터에서 일한 경력이 있어 공공기관 시스템을 조금 이해하고 있어 왜 그렇게 되는지 옆에서 보면 파악할 수 있어서 눈치로 보고 귀로 듣고 자잘한 부분들을 습득하고, 영 모르고 판단이 안되면 직접 가서 물어봤다. 


뭘 놓친지는 알 수 없으니 계속 뒤를 봐주시기에 피드백받으면서 하나씩 배워간다. 조사한 모든 것은 전국에서 통합해서 확인할 수 있도록 질병청 사이트에 입력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재난문자가 나가고, 현장 조사 나가고, 추가 동선 확보 자료들이 메신저와 메일 등으로 오간다. 


한 명의 확진자에게 확인할 긴급한 내용들은 30분이 되지 않아 완료된다. 정석대로만 한다면 그들과 관련된 접촉자들을 추리고, 통보하고, 방역하고 외부인들 출입을 막는 데까지 단 몇 시간 만에 해결이 된다. 


문제는, 완벽하지 않은 기억력과 현장과 진술의 불일치 등이다. 현장 가서 확인까지 몇 시간이지만 만일 불일치하는 부분이 있다면 수정하기까지 다시 조사하고 추가 자료를 확보해야 한다. 그럼 만 하루가 걸릴 수도 있는 것이며 그 사이 접촉자들에게 통보가 늦어 적절한 시간 안에 조치하는 것이 불가할 수 있다. 


시스템이 통제하는 게 아닌, 사람과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이런 어려움이 있다. 


이 날은 관련 접촉자가 다수 발생하여 통보할 곳이 많았다.  다 전화하니 밤 열한 시. 문서 정리와 전체 통합사이트에 올리고 나니 12시. 마무리 확인 작업을 끝나니 12시 반이 되었다. 다행히 밤은 새우지 않아도 돼서 귀가했다. 


- 병원이랑 비슷한 분위기지만 눈 앞에 환자를 케어하는 업무가 없으니 그보다는 나은 편이었다. 개인적으로는. 화장실도 갈 수 있고, 때는 늦더라도 식사도 번갈아 할 수 있었다. 집단으로 발생하는 경우만 아니라면 조사가 끝나고 조금이라도 꼼꼼히 서류 등을 확인할 시간이 생겼다(그럼에도 놓치는 건 검수 부탁).



3일 차

쪼끔 속도가 붙었다. 빠른 문서작성을 위해 손으로 필기 않고 컴에 바로 입력하기 시작했다. 통합시스템도 자꾸 들어가다 보니 익숙해져서 신속하게 확진자 상세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 


이제 계정이 생성되어 시스템에 접근이 가능하니 공무원 체계와 지금 기관의 업무 순환이 눈에 들어왔다. 연구실이나 비영리기관에서 일할 때는 공공기관이 갑이고, 위탁이나 지원받아서 하는 사기관들은 을이었는데 국가기관은 또 다른 느낌인 것 같다. 


을이었을 땐, 쟤네 너무 갑질 한다, 했던 게 갑은 아니지만 사업을 주고, 관리를 하는 행정파트일을 해보니 기관도 기관 사정이 있다,라고 옹호하는 마음이 생긴다. 바쁘니까. 너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무 바쁘니까. 


모든 국가기관이 그러하겠지만 비상사태이기 때문에 비상 상시 조로 근무가 돌아간다. 기본 오후 8시까지 근무라고 표에는 나오지만 실제론 9시에서 10시까지고, 그마저도 권한이 많이 주어지지 않는 직군들이고, 권한이 많은 분들일수록 자정이 넘겨 퇴근하기 일쑤이다.


- 상명하복의 체계는 분명히 있다. 그런데 아주 어릴 때 학교나 병원에서 느낀 위계질서의 삼엄함보다는, 내가 권한이 많은 사람이니 내가 처리하고 판단할게, 라는 것이 사뭇 신기했다. 그래서 날카로울 수밖에 없고 예민할 수밖에 없다. 판단할 것이 많아지고, 보류할 것이 많아지는데 하나라도 놓치면 큰일이니 말이다. 

한국 군인을 하다가 미군 쪽으로 넘어가 미군에서 일하시는 분이 이런 일화를 소개했었다. 밤중에 긴급상황이 터지면 한국은 졸병부터 소대장, 분대장 위로 올라오면서 집합한다. 최종 결정권자가 가장 마지막에 등장하면서 마무리가 늦어지고 초동 대처가 늦어서 큰일이 될 수도 있는데, 미군은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할 결정권자가 가장 먼저 나오고 아래로 내려가면서 집합이 이뤄진다고 했다. 처음 봤을 때, 절대 불가능한 시스템이 다른 곳에선 당연히 이뤄지니 괴리감이 느껴져서 씁쓸했다 한다. 

어찌어찌 급하게 일할 것들 쭉 배우고 일주일이 지났다. 다음 주부턴 주말 상시 조에도 들어가서 토/일 이틀 모두를 쉬는 건 이번 주가 올해의 마지막이 된다. 


대학원 수업을 주중에는 하나도 하지 못했다. 이럴 줄 알고 미리 수업은 다 끝냈지만 둘째 날 퇴근하면서 과연 내년엔 좀 쉬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데 일주일 해보니 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일단, 내 코스는 논문 제출하는 Dissertation이 없고, 수업과 과제로만 이어지는 코스웍이라 논문보단 수월하기에 딱 시험 치고 과제 제출하는 시점만 조금 양해를 구하면 될 것 같다.


아이가 있거나 본인 학업 등으로 재난 상황 터지는 것만 아니라면 양해를 구할 순 있는 환경이라 하셔서 12월이 지나면 학업 부분과 관련해 팀장님께 말씀을 드려볼까 한다. 


+

아직까진 민원을 받으면서 상처 받는 것보단, 감사한 부분이 많다. 갑작스레 격리 통보받거나 확진자와 마주쳤다는 전화를 받으면 얼마나 당혹스럽겠나. 그럼에도 협조 잘해주셔서 빠른 대응이 가능했다. 기사에 나오는 시민들의 협조에 감사드린다는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정말 퇴근할 때마다 감사를 느낀다. 


부디 잠잠해져서 1월에 교육 잘 받고 와 가지고 1인분을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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