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잠에 들려 하는 나를 읽어줘, K.
K, 나 있지. 지난달엔 돈을 얼마 안 썼어. 놀랐다. 딱히 아끼려고 하지도 않았는데. 사람을 많이 안 만났더라고. 퇴근하고 집으로 바로 가 이불을 덮고 누워있어야 했거든. 행여나 힘이 빠져나갈까 마음을 부둥켜안고 집으로 전력질주를 했던 거야. 그렇다고 마음에 뭐가 있는 것도 아니야. 얼마 없어. 감정의 종류도 깊이나 폭 자체도 극히 얕아. 미움은 늘어가고 나는 자꾸 화가 나고, 그런 내가 다시 미워지고 내려놓고, 내려놓자 말하고, 다시 흐트러지고. 뭐, 잘 안되더라고.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다짐을 반복하고 있었어.
K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고 있어? 사교생활을 유지하는 건 중요한 일이래. 나는 연락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얼굴 마주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어. 다들 재는 것 같지 아무래도? 얘를 만나면 행복해질까 아니 적어도 피곤해지진 않아야 할 텐데, 얘는 몸도 마음도 건강한 사람인가 등등 많은 기준을 통과한 사람들만이 “밥 한 번 먹자”에서 “내일 시간 어때?”로 간택받는 것. 어른의 우정은 피곤해서 자꾸만 시들어가나 봐. 떠올리면 마음이 푸근해지는 사람이 있기도 한데, 그 사람을 만나지 않고 떠올리기만 해서 그렇게 되는 건가 싶네. 시니컬하지.
한때 항상 웃는 사람이기를 자처했고, 긍정적이고 예쁜 말만 하곤 했는데. 그건 내 우울이 부정당했기 때문이었어. 사람들은 대게 밝은 것만 좋아하잖아. 나는 말야. 남몰래 떨리는 당신 어깨를 더 사랑해. 지나치게 불평만 늘어놓던 시절의 당신은 이따금씩 버겁기도 했지만, 말끝에 묻은 슬픔을 읽을 수 있었는걸. 우리는 감정에게 하나의 이름을 붙였지만 사실 하나의 감정이란 건 없는 거 알아? 분노의 바로 뒤편엔 슬픔이, 우울 너머엔 절망감이 그다음 다시 분노, 또 슬픔...
나는 청개구리야. 누가 나를 밝은 사람이라고 말하면 갑자기 어디서 우울을 빌려와서라도 내밀고 싶더라고. 그래서 편지했어. 이런 모습도 보여주고 싶어서.
2018.03.27
선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