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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레시토 Jul 31. 2022

완벽하지 않은 채식주의자

고기 없인 못 살던 남편과 채식을 시작했습니다. Ep.3

그렇다. 우리 이야기는 완벽하지 않은 이야기다. 채식에는 단계가 있다. 동물성 단백질은 물론 생산과정에서 생명에게 비윤리적 행위가 가해 지거나 환경을 해치는 모든 식품을 먹지 않는 단계가 완전한 채식주의자, 비건(Vegan)이다. 비건은 꿀도 먹지 않는다. 채취하는 과정에서 벌꿀들이 많이 죽으며, 벌들이 애써 모아놓은 먹이인 꿀을 인간이 빼앗는 것이기 때문인데, 체취 과정에서도 여왕벌의 날개를 절단하거나 벌집을 태우는 등 비윤리적 행위가 가해진다고 한다.


여기서 유제품까지 허용하면 ‘락토 베지테리언(Lacto vegeterian)’, 혹은 계란까지 허용하면 ‘오보 베지테리언(Ovo vegeterian)’, 해산물까지 먹는다면 ‘페스코 베지테리언(Pesco vegeterian)’, 그리고 육류 중 붉은 고기는 제외하고 닭고기까지는 먹는다면 ‘뽀요 베지테리언(Pollo vegeterian)’이다.

상수동 비건레스토랑 ‘슬런치’의 메뉴판에 있던 채식주의 그래프. 맛집으로 매우 추천하는 곳이다.


그럼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까? 결론적으로 우린 완전한 채식이 아닌 락토 베지테리언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이유는 우리에겐 그게, 더 오래 채식을 지속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처음부터 완전한 채식을 하지 않는다고 우리 스스로를 몰아붙일 필요가 있을까? 비건을 실천하고 유지하는 멋진 사람들을 알고 있고 어쩌면 그분들의 입장에서 우리가 모순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한다. 그리고 우린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채식 생태계에 기여해보고자 하며 이 노력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가지는 식단의 100% 채식으로 완벽히 채울  있을까였다. “근데 자기야, 진짜 정말 불가피하게 우리가 육식을  수밖에 없는 상황엔 어떡하지?” 남편은 조금의 예외를 주면  행복할  같다는 뉘앙스로 내게 물었다. “예를 들어 회사 회식 자리에서  가치관과 식단만 고집하기엔 민폐가  수도 있고 따로 음식을 가져가기도 여의치 않다면 그땐 어쩔  없겠지 . 결국 우리가  같이  살기 위해서 하는 건데 너무 스트레스를 받으면서까지 채식을 한다면 오히려 지속하기  힘들 거야. 대신 우리가 채식을 한다는 사실은 그전에 알리자.” 이건 남편 혼자 일하는 1 미용실 사장님이고, 나는 회식자리가  없고 재택근무가 많은 회사에 다니고 있어서 예외에 속할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채식을 하되 아예 채식을 포기해버리고 싶을 만큼 완벽히 실천하기 어려운 상황에선 예외를 두기로 했다. 어쩌면 우리가 금방 도망쳐버릴 수 있는 빌미를 남겨놓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의식적으로 육식을 하려고 하지 않는 이상, 약간의 유연함을 갖고 오래 지속하는 게 아예 채식을 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채식을 해볼까? 망설이는 사람도 ‘비건(Vegan)’이라는 단어에 압도되지 않고 우리처럼 조금이라도 먼저 실천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때론 완벽주의가 일의 시작을 망치기도 한다.


인터넷에 비건 레시피를 검색하고, 음식점에 가서 비건 옵션을 문의하고, 가족과 친구에게 우리 식습관을 알리는 일들이 쌓여간다면 적어도 육식주의 세상에서 채식이라는 단어가 생소하거나 유난스러운 사람들이 하는 식단이라는 선입견을 조금씩 바꿔나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럼 언젠가는 우리가 바라듯, 환경도 동물도 인간도 서로에게 무해한 세상에 가까워지는 길이라고 믿고 있다.


유제품을 허용한다고 해서 일부러 우유를 구매하거나 즐겨먹지는 않는다. 냉장고엔 항상 우유 대신 두유가, 치즈는 최소한으로, 그리고 요거트는 오트요거트를 선택의 우선지에 둔다. 사실은 유제품을 소비하는 횟수는 달에 꼽을만할 거다.


몇십 년을 지속해 온 식습관을 비호의적 환경에서 바꾼다는 게 쉽지 않고, 종종 남편도 나도 ‘우리 왜 이렇게까지?’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우리는 채식을 하고 있다.


카페를 좋아하는 내가 이젠 카페에서 디저트를 먹기가 까다로워졌고, 가족들이 함께하는 모임에서 남편과 나는 따로 밥을 먹고 참석하거나, 지인이 사 온 김밥에서 남편은 마치 편식하는 어린애처럼 햄만 골라 지인의 접시에 둔 채 나머지 김밥을 먹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믿는 가치관과 사실들 그리고 겪고 있는 변화의 긍정적인 측면들이 아직까지 우리를 채식주의자로 남겨주고 있다. 그리고 우린 할 이야기가 참 많이 생겼다.


무엇보다 나 혼자 애써보려던 결혼 전과는 달리 이번엔 남편이라는 든든한 동료가 함께 해주니, 어떤 퀘스트던지 한 번 도전해볼 만한 용기가 생겼다. 이러려고 그토록 남편을 설득하려 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래 채식 그거, 일단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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