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 없인 못 살던 남편과 채식을 시작했습니다. Ep.2
“오빠가 채식을 하는 게 빠를까, 내가 기독교를 믿게 되는 게 빠를까?” 어느 날 산책하면서 문득 내뱉은 질문에 남편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기독교인 그를 따라 황금 같은 일요일에 교회를 따라가는 내 모습이 스스로 놀라웠고 그건 엄청난 노력이었기에 문득 든 생각이었다.
어디 대답해보시지, 당신이 고기를 끊는 것만큼이나 내가 교회에 따라간다(물론 믿음은 아직이다)는 것은 아주 큰 변화라고. 참고로 남편을 만나기 전의 나는 일요일엔 무조건 데이트도 하지 않고 푹 쉬어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모든 크리스천을 존중하지만 여전히 나의 입장에선 보이지 않는 신을 믿고 시간을 쏟는 것보단, 지금 내 눈앞의 밥상에서 변화를 줄 수 있는 채식을 하는 게 세상과 나 그리고 미래 세대인 아이들에게 훨씬 이롭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내 생각이 이렇듯 남편의 신앙생활도 존중해야 하니까. 그런데 나만 노력한다는 조금 억울한 마음이 들어 그를 찔러본 질문이었다. 남편이 채식을 하겠다는 생각까진 못하더라도, 아내가 하고 싶은 채식을 함께하지 못해 줘 조금이라도 미안한 마음은 들지 않을까?
그리고 웬걸, 그런 마음이 들었나 보다. 1편에서의 전략(딸이 살아갈 미래가 달린 일이오 and 채식은 힙하고 멋진 거야)과 더불어 내 소소한 노력들에, 남편은 이제 ‘고기를 어떻게 안 먹어?’에서 ‘그래, 그게 정말 필요한 거라면 자기가 하자는 대로 따라갈 수도 있어’로 바뀌었다.
남편의 이 작은 변화에 내심 얼마나 기쁘고 고마웠는지. 비록 동물들의 고통에 대한 윤리적인 설득은 남아있지만 말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남편은 세상에서 가족 다음으로 좋아하는 게 맛있는 고기를 먹는 것인 듯한 사람이었다. 가치관을 바꾼다는 일이 쉬운 일이면서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안다. 내가 책 한 권 잘못(?) 읽어 채식에 도전했던 것처럼 그게 참 쉽다가도, 수십 번을 남편을 따라 교회에 가면서도 그저 커피 마시고 싶다는 생각만 들만큼 바뀌지 않는 것이 신념이고 가치관이다.
쇠뿔도 단 김에 빼랬다고, 이 작은 변화에 때는 이때다 싶어 객관적 사실들을 직접 확인시켜주기로 했다. 채식을 하면 무엇이 좋고 왜 해야 하는지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도록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여줬다. 남편은 책과 안 친한 사람이라 영상이 매우 효과적이었다. 채식을 통해 신체 능력을 최고로 끌어올린 사람들의 이야기, 환경적 신체건강학적 면에서의 이점, 남성성이 육식과 연결된다는 잘못된 관념을 고쳐주는 실험 등 운동을 좋아하는 남편이 재밌게 본 ‘더 게임 체인저스’는 꼭 다들 한 번씩 보기를 추천한다. 남편 같은 사람에게 딱인 이 영상을 보는 도중에 열정이 끌어올랐는지 ‘자기야, 나 채식하고 싶어, 나 지금 완전 관심 생겼어’라고 진심으로 말했다. 그의 입에서 ‘나 채식하고 싶어’라니..! 귀엽네.
어느 책인지 영상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나이가 지긋한 노부부의 사랑이야기를 다룬 내용을 본 적이 있다. 할아버지가 할머니의 당부대로, 예컨대 ‘아침엔 꼭 사과 한쪽씩을 먹어요’하는 일상적인 요구에 할아버지가 ‘알았어요’라고 대답하는 것은 ‘당신을 사랑해요’라는 뜻이라고 했다. 그 사람의 말을 듣고 존중해주고 행동해주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남편이 내게 채식을 해보자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하니 나 참 결혼 잘했네, 생각이 드는 거다. 내가 그에게 했던 질문처럼 남편이 채식을 한다는 것은 내가 종교를 믿게 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니까. 지금껏 누려왔던 편의와 즐거움을 포기하며 자기 말대로 한 번 해볼게라고 말해준 남편을 오늘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