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식주의자의 사고 회로
남편은 삼시세끼 고기를 먹던 사람이다. 고기 비린내를 싫어하시는 어머님이 매일같이 고기를 구워주어야 밥을 먹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풀떼기만 먹어서 어디서 힘이 나냐는 보통 사람들의 생각을 가지고 30년 넘게 살아왔는데 내가 채식을 하자고 설득할 수 있을까? 처음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남편의 직업은 미용사인데, 어쨌든 하루 종일 정교하고 미세하게 몸을 써야 하는 일인 것이다. 어느 날엔 점심도 거르고 종일 서서 일한 후 저녁 10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와 밥을 먹기도 한다. 얼마나 배가 고팠을고. 단번에 포만감을 채울 수 있는 고칼로리, 고단백 식사로 스스로에게 보상을 줘야 했던 것이다. 게다가 남편은 중학교 때 태권도 선수생활을 했었고 지금도 모든 운동을 좋아한다. 운동하는 남자들의 평균적인 생각인 고기를 먹어야 힘이 난다는 메커니즘에 평생 노출돼왔고 믿어왔던 사람이다.
남편과 썸을 탈 때의 이야기인데 내가 최근 비건에 도전했었고, ‘아무튼, 비건’이라는 책을 재밌게 읽었다고 말했더니 당시 남편은 내게 “단백질이 안 좋은 건가요..?”라고 조심스럽고 순수한 어투로 물었었다. ‘채식 = 풀떼기 = 단백질이 없음’의 공식이 자리 잡고 있는 그의 생각을 담백히 보여주는 그 질문이 웃기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또 나는 이 사람과 잘 되려면 채식을 할 수 없겠구나 탄식하기도 했다.
그랬던 그와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이 기간은 대부분의 연애와 다르게 매우 짧았는데(그 모든 과정에 1년 1개월이 소요되었을 뿐) 서로에 대한 확신이 빠르게 들었고, 결혼 준비를 하는 도중 아이가 생겼고, 그 아이가 팔삭둥이로 나와 그렇다. 그리고 너무나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를 낳고 보니 뉴스에서 심심찮게 들려오는 이상기후 얘기와 내 머릿속 한편에 자리 잡고 있던 채식에 대한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은연중에 있었던 고기를 먹을 때의 죄책감도 아이를 낳고 느끼는 것은 달랐다. 이미 30년을 살아본 우리야 이상기후가 발생한다는 뉴스를 보고 ‘아이고, 어떡해. 이제 정말 심각해지네, 저 나라는 문제네 문제야.’ 하는 말로 무심히 넘기고도 어찌어찌 생을 마감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고도 몇십 년은 더 살아야 할 지금 갓 태어난 아이에게는 그게 바로 내 상황이 되고 내 친구의 얘기가 될 수도 있을 건데 그 원인이 결국 아이를 가장 사랑하는 나라니, 이건 뭔가 해야겠다 싶은 거다.
어쩌면 그래서 육식주의자인 남편을 설득하기 조금 수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강아지를 좋아는 해도, 먹는 동물과는 분리화, 타자화가 철저히 되어있으니 동물에 대한 측은지심의 측면으로는 고기라는 맛있는 식재료를 포기할 수 없을 거다. 그런데 세상 누구보다 사랑하는 본인의 딸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건 좀 먹히지 않을까? 일말의 희망을 가져보았다.
두 번째로는 남편이 좋아하는 운동을 이용해 채식을 더 하고 싶고 소위 ‘힙한 것’으로 만드는 전략을 취했다. 이 전략이 꽤나 잘 먹혔던 것 같다. 남편이 좋아하는 축구선수부터 내가 좋아하는 F1 선수 루이스 해밀턴까지 세계적인 역사를 쓰고 있는 선수들이 사실은 채식주의자라는 사실을 알려줬다. 남편의 반응은 솔깃한 듯했다. 남들이 잘하지 않는(적어도 우리나라에선) 채식을 하면서 운동도 멋지게 잘하고, 생각도 멋진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라는 뉘앙스를 풀풀 풍기며 남편에게 이런 사실들을 은연중에 말하곤 했다.
내가 이토록 남편을 설득하려 했던 이유는 채식은 말 그대로 밥을 같이 먹는 사람인 식구가 함께하지 않으면 그 어려움이 두배, 아니 열 배는 된다. 채식에 대한 객관적 사실들은 다른 책에 훨씬 잘 설명되어있으니 넘어간다. 결론적으로 환경적, 건강적, 동물 친화적으로 안 하는 게 손해인, 아니 좀 더 극단적으로는 인간으로서 직무유기같이 느껴진 이 식습관을 내가 제일 사랑해마지않는 남편과 꼭 같이하고 싶었다. 우리 남편이 불쌍하다고 느껴지시나요? 그럼 이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지켜봐 주길 바란다. 나도 무척이나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