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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얼 Oct 22. 2024

37_독립서점의 마법



지난주 문학계를, 아니 나라 전체를 가장 떠들썩하게 한 뉴스는 단연 한강 작가님의 노벨문학상 수상일 것이다. 내용도 없이 제목만 뜬 그 속보 기사를 모니터 화면에서 처음 봤을 때 난 나도 모르게 외마디 감탄사를 내뱉으며 반가워할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우리나라 작가도 노벨문학상을 탔구나! 이후 시시각각 올라오는 관련 기사를 읽으며 한강 작가님의 열렬한 팬도, 작가님의 모든 작품을 다 읽은 게 아니었음에도 왠지 모르게 가슴이 두방망이질을 쳤고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거리는 기분이 느껴졌다. 단지 같은 나라 사람이기에, 애국심이 넘쳐나 그랬던 건 아니었다. 아마도 나도 소설을 쓰고 있기에(물론 아직 턱없이 부족하고 형편없지만) 소설을 쓰는 한강 작가님의 수상이 나에게도 왠지 모를 어떤 용기와 격려, 희망을 준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수상 발표 이후 지금까지도 한강 작가님과 관련된 수많은 기사가 연일 쏟아지고 있다. 작가님이 과거에 했던 발언 및 인터뷰, 작품과 관련된 이런저런 일화, 그리고 굳이 이런 기사까지 싶은 사생활 관련 소식까지. 그중 내 흥미를 끌었던 건 작가님이 독립서점을 직접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익히 알고 있고, 몇 번 그 앞을 지나치기도 했던 서촌의 한 작은 독립서점이 바로 그 서점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서점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님의 서점이라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고, 한편으로 궁금하기도 했다. 작가님은 왜 독립서점을 운영하실까?     

이런 의문은―당연하게도―나만 품었던 건 아니었던 것 같고, 그래서 의문에 답을 주는 기사(<노벨상 작가 한강 ‘만성 적자’ 독립서점 지키는 이유>, 경향신문, 2024.10.13.)가 곧 발표됐다. 기사에 의하면 우선 작가님이 예전부터 독립서점 운영을 원했던 것을 알 수 있었고(2016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글쓰기를 포기한다면 생계를 위해 어떤 일을 하겠냐는 질문에 작은 독립서점을 열고 싶다는 대답을 했다고 한다), 실제로 운영을 시작한 이후로는 만성적인 적자가 계속되는 서점을 운영하는 이유가 독립서점만이 갖는 가치와 역할을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작가님이 믿고 있는 독립서점의 가치와 역할이 무엇인지 말해주는 일화가 기사 말미에 실려 있었는데, 작가님은 한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동네서점으로 책의 다양성이 지켜진다. 독자들이 책방의 문화행사를 찾아가게 되면 생활의 패턴이 달라지고, 읽는 책도 늘어난다. 결국 삶의 패턴도 달라진다.”


나는 이 말에 완전히 공감하여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바로 내가 동네 독립서점으로 인해 삶의 패턴이 달라진, 아니 삶 자체가 달라진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내 소설책에 수록되는 작가 프로필은 이렇게 시작된다. ‘2020년 1월부터 독립서점 부비프의 글쓰기 모임을 통해 단편소설 창작을 시작하였다.’ 당시 집 근처에 새롭게 문을 연 서점이 아니었다면 난 소설을 쓸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고, 4편의 소설집을 발표한 작가가 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독립서점을 만나기 전 나는 내 삶과 미래에 대한 어떠한 확신도 없이 하루하루 흘러가는 일상을 번민과 의심으로 살아가는 그저 그런 월급쟁이 회사원이었다. 하지만 동네의 한 작은 서점에서 마련한 모임에 우연히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놀랍게도 내 삶의 방향은 완전히 바뀌었다. 모임에 함께 한 사람들이 가득 품고 있던 글을 향한 애정과 서로를 향한 다정에는 신비로운 힘이 있었고, 그 힘은 그동안 내가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던 길에 발을 내디딜 수 있도록 나를 이끌었다. 만약 독립서점이 없었다면, 그리고 그 서점을 사랑했던 사람들이 없었다면 내게 일어나지 못했을 마법 같은 일이다.


이러한 마법이 유독 내가 알고 있는 서점에서만, 그리고 나에게만 일어난 건 아닐 것이다. 분명 많은 독립서점에서 일어나고 있을 것이고, 그 마법으로 인해 나처럼 삶이 새롭게 바뀐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한강 작가님은 이미 깊은 통찰력으로 대형서점 또는 거대자본에서는 발휘되기 어려운 독립서점만의 인간적이고도 따듯한 영향력을 꿰뚫어 보셨고, 그 힘의 유효함을 잘 알기에―그리고 신뢰하기에―비록 녹록지 않은 사정이지만 꿋꿋하게 독립서점을 운영한다고 생각한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독립서점 덕에 받은 변화의 기회와 감사함을 언젠가는 꼭 돌려주고 싶다는 생각. 그래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독립서점의 마법을 경험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 물론 그 방법이 무엇일지, 어떠한 형태일지는 아직 잘 모른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다. 그건 바로 더 성실한 자세로, 그리고 더 진실한 마음으로 소설을 쓰는 것. 그로 인해 한 뼘 더 성장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하는 것. 그렇게 지금보다 소설가로 더 입지를 다지고 독자들에게 더 다가갈 수 있다면, 분명 독립서점을 위해서 무언가 할 수 있는 기회도 오지 않을까? 부디 그럴 수 있기를, 그리고 너무 늦게 오지 않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_2024.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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