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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얼 Oct 27. 2024

38_등단?



우리나라의 문학계(특히 소설과 시 분야)에는 등단이라는 제도가 있다. 우리나라와 일본에만 존재하는 제도인데, 간단하게 설명하면 아마추어 작가가 특정 조건을 충족해서 프로 작가로 인정받고 데뷔하는 것이다. 여기서 특정 조건이란 신춘문예 당선, 문예지 신인상 수상, 문학상 수상 등이다.  출판사에 투고한 원고가 편집자에 의해 출판되면 작가로 인정받는 여타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심사를 거쳐 급을 메기는 듯한 우리나라의 등단 문화는 조금은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문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등단하지 않는다고 해서 작가가 될 순 없는 건 아니고, 미등단 작가 중 평단과 대중 모두에게 인정받으며 눈에 띄는 활동을 하는 작가들도 많이 존재한다. 그래서 등단 제도는 그 필요성에 종종 논란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출판계나 독자가 등단 작가를 더 인정하고 선호하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아무래도 등단이란 게 기본적으로 공모를 통한 경쟁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수많은 지망생 중 감각이나 실력이 가장 뛰어난 작가가 선정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유명 신춘문예나 문예지를 통해 등단한 작가는 그만큼 우수한 필력으로 작품성과 대중성을 보장하는 경우가 많다. 출판계와 독자가 등단 작가를 선호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소설을 쓰는 난 등단에 있어 갈팡질팡 해왔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소설가는 당연히 등단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런저런 공모전에 많이도 지원했다. 하지만 실력이 부족하니 당선이 될 리 없었고(하지만 이때 소설들을 많이 완성하긴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등단 없이도 소설 쓰고 책 만들어서 독자들과 만나는 것도 충분히 괜찮다고 생각했다. 등단을 포기했다기보다는 굳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편에 가까웠다. 미등단 유명 작가들의 사례는 나의 이런 태도를 뒷받침해 주는 공고한 근거가 되었다.


며칠 전 동료 작가들과 등단의 필요성에 관해 얘기를 나누었다. 사실 나를 비롯해 독립출판 작가 중 많은 수가 등단을 목표로 하거나, 등단 작가라는 타이틀을 간절히 원하진 않는다.(그런 것처럼 보인다) 그러지 않더라도 독립출판이라는 대안적인 활동은 자신들의 창작물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독자들과 직접 가깝게 만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소설을 쓰는 동료 작가님 중 한 분도 같은 입장이었다. 등단이야 하면 물론 좋겠지만 등단이라는 목표에 매몰되어 등단될 때까지 고독한 창작의 세계에 갇혀 괴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보단, 소설을 직접 출간해서 독자들에게 빠르게 선보이고 소통하는 게 자신에겐 훨씬 더 가치 있다는 거였다. 충분히 수긍이 가는 타당한 의견이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등단이 필요 없다고 여기는 건 어쩌면 아직 그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회피하는 건 아닐까? 포도를 따지 못한 여우가 어차피 먹지 못할 신 포도였을 거라고 지레짐작하며 자기 합리화를 하듯 등단에 실패한 난 독립출판이라는 허울 뒤에 숨어 등단하지 않아도 충분하다고 안주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러면서 독립출판이니까 이 정도면 괜찮겠지 스스로 판단하며 더 예리하고, 더 세련되고, 더 깊이 있는 소설을 써야 할 의무를 모른 척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자 왠지 온몸에 힘이 빠지며 무력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등단이란 게 단순히 소설가임을 증명하는 자격증 같은 건 아닐 것이다. 한 작가가 등단했다는 것은 그 작가의 작품이 문학적으로든, 기교적으로든 일정 수준 이상을 획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등단을 목표로 하지 않더라도 작가라면 당연히 이 수준에 도달해야 하고, 도달하려 노력해야 한다. 이건 작가의 의무이자 독자들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등단 없이도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들은 분명 이 수준에 걸맞은, 아니 그 이상의 창작물을 내고 있기에 평단과 대중의 인정을 받는 것이리라.


결론적으로 작가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역시 좋은 작품을 쓰는 실력이다. 등단하고 말고는 차후의 문제다. 기본적으로 실력이 뒷받침된다면, 언젠가 멀지 않은 시기에 등단할 수 있을 것이고, 등단하지 않더라도 분명 많은 사람에게 인정과 사랑을 받는 작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난 등단의 필요성 따위를 머리 아프게 고민하거나 입 아프게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 그저 부지런히 쓰고 조금씩 더 성장해야 한다. 이것 말고 지금 내가 해야 할 건 아무것도 없다.



_2024.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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