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나는 친정집이었다. 누우면 바닥까지 푸욱 가라앉을 것 같은 푹신한 리클라이너 소파에 늘어진 채로 채널을 돌렸다. 주말 아침의 방송사들은 참 감사하게도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차량이 전복되는 블랙박스 영상도 틀어주지 않았고, 지난주에는 범인이었다가 이번 주에는 과학수사대 형사 역할을 맡은 재연배우가 나오는 치정 살인극도 방영하지 않는다. 오로지 동물, 영화, 여행과 같은 평화로운 콘텐츠들로 가득했다.
검지 손가락으로 채널(+) 버튼을 누르자 티브이 화면에 파아란 바다가 끝도 없이 펼쳐졌다. 유럽 어딘가로 보이는 그곳에서 한국의 유명한 뮤지션들이 버스킹을 하는 예능이었다. 바다와 맞닿은 노란 절벽 위에는 빨간색 지붕들로 통일된 집들이 늘어져있었고, 곧 화면은 전환되어 검정 선글라스를 쓴 유러피안들이 낚시를 하거나 과수원에서 과일을 따는 등의 평화로운 일상들을 비추었다. 아무 생각 없이 보던 나도 어느샌가 그 색감에 매료되어 가만히 티브이를 응시하던 그때, 누군가 현관문 도어록키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고야-, 여기는 어디야?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가게일을 마치고 온 엄마. 어제 저녁, 일을 하러 나간다며 현관문을 나선 그녀는 아침해가 뜨고나서야 돌아왔다. 그리고 가방도 내려놓지 않은 채 티브이 화면 앞에 서있었고, 그곳에 빨려 들 것처럼 시선을 고정했다.
왔어? 이탈리아래, 아말피
이태리? 어머, 어쩜 저런 데가 다 있어? 저기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
엄마는 금세 가방을 내려놓고 내 옆으로 자리를 잡고는 치과에서 뽀로로를 보는 아이처럼 집중하기 시작했다. 나는 곁눈질로 설핏 엄마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엄마는 단 한 번도 해외를 나가본 적이 없다. 그녀 나이 예순 하나. 가장 멀리 가본 곳이라고는 서른 즈음에 남편과 함께 밟은 제주 땅이 다였으리라.
엄마도 사면이 바다인 완도 출신 아니야? 그런데 왜 저런 곳을 부러워해.
아이고, 나는 완도 살면서 좋다는 생각 한 번도 안 해봤다.
그러고 보니 언제였더라, 예전에 엄마가 완도에 살던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잠시 해준 적이 있었다. 그때는 눈만돌리면 잔잔한 바다가 보였는데, 잠깐 섬에 들릴 도시 사람들이야 바다를 보면 속이 뻥 뚫린다는 생각을 하지 그곳에 살던 엄마는 바다가 그렇게 답답할 수 없었다고 했다. 육지로 나가고 싶어 죽겠는데 어디든 바다밖에 안보였으니까.
그런데 지금의 엄마는 물빛 찰랑거리는 저 이태리의 바다가 아름답다고 하니 참 아이러니하다. 남의 떡이 커 보이듯이 남의 바다가 더 크고 아름다워보이는기라도 하는 걸까. 아니면 회색 아스팔트 가득한 도시에 사십 년을 넘게 살다 보니 저런 것들이 그리워진 걸까. 문득, 뭐라도 좋으니 그녀에게 바다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왕지사 완도보다는 이태리 여행이 낫겠지.
엄마, 저기 가려면 장기 비행해야 돼. 열다섯 시간 이상 비행기 타고 이동할 수 있어?
하면 하지 왜 못하니?
그럼 내가 나중에 보내줄게.
아이고, 내 돈으로도 충분히 갈 수 있네요. 느그는 느그만 잘 살아라.
됐고, 아빠는 어떡하지. 아빠는 장기 비행 못할 거야. 그렇지? 그럼 엄마만 가야 하나?
네 아빠는 내가 침대에 누워서 가는 거 해줄 거야.
엄마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말했다. 자신은 이코노미석에 열다섯 시간을 버티고 병약한 남편은 적어도 비즈니스 클래스 이상을 예약해주겠다는 뜻이다. 하늘 위를 누워가는 게 얼마나 비싼지도 모르면서. 아마도 조선시대였다면 열녀비를 세우고도 남았을 거다. 거기다가 딸을 셋이나 키우고도 그 값의 천만분의 일도 안될 것 같은 비행기 값도 딸들이 내면 부담될 거라며 자비로 비행기 값을 낼 거란다.
내가 국가를 가지고 있었다면 오만 원 짜리에 신사임당이 아닌 김순안 여사를 새기지 않았을까. 그러다 문득, 엄마는 왜 저렇게 항상 이기적이지 못하고 이타적인 존재로 남아있으려 하는지 궁금했다. 그렇게 40년을 넘게 살았으면 이제 자신의 욕심을 채울 때도 됐는데 말이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나는 화제를 돌렸다.
그럼 엄마도 여권 만들어야겠다.
여권 있어! 저기 안방 옷장 안에 있어.
뭐? 여권 언제 만들었어?
십 년 넘었어. 재작년인가는 갱신까지 했는데?
입에서는 헛웃음이 나오고 속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물음표가 떠올랐다. 일평생 해외여행이라고는 가본 적도 없을뿐더러 세 자매가 아버지랑 동반 여행이라도 가보라고 제안할 때면 언제나 행운 분식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가게에는 주인이 있어야 한다고 한사코 거부하던 그녀였다. 그런데 여권이 있다니. 그것도 십 년이 넘게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만료되는 기간까지 생각해서 갱신하며 철두철미하게 관리를 했단다. 알고 보니 그 여권은 이미 오래전부터 미국에서 살고 있는 둘째 딸을 위해 만든 것이었다. 딸을 보려면 비행기를 타야만 하니까 말이다. 물론, 그것 또한 실현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궁금해졌다. 엄마에게 있어 떠남의 의미는 무엇일까, 하고.
엄마도 그 어린 시절에 꿈이라는 게 있어서 완도를 등지며 바다를 건너는 배에 몸을 실었겠지. 그 배 위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얼마나 간질간질하고 시원했을까, 그 공기를 마신 그녀의 폐부는 또 얼마나 벅차올랐을까, 나는 잘 상상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육지에 걸음을 내디딘 엄마는 오늘, 평일과 주말의 경계는 느낄 새도 없이 언제나처럼 저녁 7시에 일어나 몸을 씻고, 우동냄새가 나는 옷을 입고, 현관문 도어록을 열 것이다. 그리고 육지의 또 다른 완도인 행운 분식으로 들어가 허리에 앞치마를 두를 것이다. 그러다 까아만 행운 분식의 새벽 밤, 손님도 없는 가게를 지키는 엄마가 넌지시 유리창 밖을 쳐다보면 남편과 자식이라는 바다가 넘실거리면서 그곳을 감싸고 있겠지. 우리 엄마가 떠날 수도 없도록.
할 수만 있다면 나라는 바다는 작은 배라도 띄워 엄마를 그곳에 억지로 실어버리고 싶다. 그래서 자식 때문에 가는 미국도 어디도 아닌 엄마가 아름답다고 말한, 저 멀리 물빛 찰랑거리는 이태리 아말피의 진짜 바다로 엄마를 데려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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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엄마의 여권에 외국아저씨들이 도장찍는 날은 대체 언제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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