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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 임진각으로 가세

by 이은

명절이 다가왔다. 60대 부부 둘만 살아 한동안 공허하기만 했던 집은 큰언니 내외와 우리 부부가 도착하니 금세 그 온도가 바뀌었다. 마치 다섯 가족이 모여 살았던 예전의 활기를 되찾은 것 같았다. 우리는 LA갈비와 명절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지나간 일상을 이야기하는 행복한 시간을 가졌고, 식탁 위의 요리들은 하나둘씩 그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때, 엄마가 말했다.


“우리, 임진각으로 드라이브 갈까?”


엄마가 운을 띄우자마자, 옆에서 잠자코 듣고만있던 아버지가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난색을 표했다.


“어허이, 또 쓸데없는 소리.”


그러자 엄마는 이런 남편의 반응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40년째 꾸준히 밀어붙이고 있는 전매특허, ‘김여사표 콧소리애교 메들리’를 시전했다.


“댜기야, 김뇨사, 임딘가구루 두라이부 가고디픈데! 히잉! (해석 : 자기야. 김여사는 지금 임진각으로 드라이브를 가고 싶다.)”

“그래, 아빠. 명절인데 우리 다 같이 드라이브 가자. 우리 아들도 임진각 한 번도 못 가봤는데.”


엄마의 애교에 이어 큰언니가 네 살이 된 아들 핑계를 대며 그녀의 제안에 힘을 실었다. 아버지는 한숨을 쉬었지만 하는 수 없다는 듯 일어나 차키를 챙겼다.


우리는 그 날, 아버지가 운전하는 차에 몸을 싣고 임진각으로 떠났다. 엄마는 오랜만에 가게도 쉬겠다, 가족들도 다 모였겠다, 다 함께 파아랗게 흐르는 임진강을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런 제안을 했을 거다. 그러나 정확히 출발한 지 오분 뒤.


“크어어어어어엉. 크어어어어어엉.”


도로 위 차 안에서 지진 같은 굉음의 코고는 소리가 가득 울려퍼졌다. 범인은 바로 이 제안을 한 당사자이자 행운분식의 사장이기도 한 김여사. 엄마는 조수석을 한껏 뒤로 젖히고 세상모른 채 말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나는 슬쩍 룸미러로 시선을 던졌다. 아버지의 표정은 또 그녀에게 알고도 당했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것 봐, 내가 이래서 가지 말자고 했던 거야. 아니, 드라이브를 가자고 한 사람이 왜 차에만 타면 자는 거야? 야, 무슨대한민국 고속도로가 수면도로냐? 클락슨이 자장가야? 너네 잘 봐라, 엄마는 분명히 임진각에 가서 20분도 안되서 집에 돌아가자고 하니까…. 에휴, 또 당한 내가 바보지. 내가 바보야!”


나는 아버지의 한탄을 듣자마자 그의 어깨를 주물러주며 말했다.


“아버지, 엄마랑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살자는 백년가약을 맺었으면 평생 이런 드라이브도 책임져야 하는거 아니야?”


그러나 아버지는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뾰루퉁한 표정만 지었다. 그저 이 상황을 부정하고 싶은지 도리질만 할 뿐이었다.




아버지와 엄마의 드라이브 역사는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한민국에 차가 너무 없어서 올림픽대로도 무단 횡단하던 사람이 있었다던 1970년대 후반, 그 당시 운전을 할 수 있었던 스물세살의 아버지는 서울의 한 전자기기를 파는 가게에서 매장관리와 배달 그리고 키 큰 훈남이라는 꽤 중요한 직무를 맡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가게에 손님이 들어왔다. 아주 조그만 여자였다.


“손님, 무엇을 찾으세요?”

“아….”


귀를 넘기며 매장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여자손님이 아버지와 눈이 딱 마주쳤다.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돌부처가 된 것마냥 서서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고있는 그녀에게 재차 말을 걸었다.


“손님?”

“아…! 녹음…, 녹음기요!”


흠…, 녹음기라. 아버지는 매장을 쑤욱 한번 살폈다. 그러고보니 손님들에게 꽤나 평이 좋았던 제품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녀에게 녹음기를 하나 권해주며 자신감 충만하게 말했다.


“손님, 이 제품이요, 고장 안나기로 소문난 제품이거든요. 다른건 몰라도요, 이건 죽을때까지 A/S 받을 일은 없을겁니다. 하하하!”


그런데 왠걸. 다음 날이 죽을 날도 아닌데 그 여자는 보란듯이 녹음기를 가지고 가게에 다시 방문했다.


“저…, 이거 작동이 안되는데요.”


여자의 말이 끝나자, 안그래도 하얀 남자의 얼굴이 더 하얗게 질렸다. 머릿 속에서 어제 확신에 차 말한 자신의 멘트가 스쳐갔다. 살짝 민망하고 조금은 창피한 마음이 들어 아버지는 두어번 헛기침을 하며 녹음기를 건네받았다.


“아우…, 이상하네요. 그럴리가 없는데…. 이런 적 처음이네요. 주세요. 제가 봐드릴게요.”


아버지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도라이바를 집었다. 뭐가 문제일까…, 책상에 앉아 열심히 분해한 뒤 이것저것 살펴보는데 아무래도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다. 아버지는 옆에 있는 아가씨에게 흘깃 시선을 던진 뒤, 의자를 끌어왔다.


“여기 앉으세요.”


여자는 조심스럽게 앉았다. 그리고는 하얀 면장갑을 낀 채 물건을 고치는 아버지만을 빤히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녹음기에 시선을 둔 채 물었다.


“여기 사세요?”

“아…, 여기는 직장근처에요.”

“그러시구나, 혹시 서울 사람이세요?”

“아니요. 전 전라도 완도에서 올라왔어요.”

“와…, 정말요? 멀리서 왔네요. 저는 경상도 의성이요. 진짜 멀죠?”

“네…. 근데 경상도 사투리 안쓰시네요.”

“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올라와서요. 근데 손님도 사투리 정말 안쓰시네요.”

“네…, 저는 사투리 고치려고 허벌나게 노력했어라.”


아버지의 손에 들린 드라이버가 순간적으로 움직임을 멈췄다. 뭐지, 이 사투리와 서울말의 콜라보레이션은? 이걸 사울말이라고 하나? 아버지는 옅은 미소를 지은 채 엄마를 돌아보았는데, 그녀의 표정은 조금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참나…, 아니 이게 뭐라고 귀엽게 느껴지고 난리냐. 어이쿠…. 심장 뛰네. 심장 뛰어. 이러다 심장병 걸릴라.


이후, 운명의 장난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죽을 때까지 고장나지 않는다던 그 문제의 녹음기는 여섯번이나 더 연달아 고장이 났다. 그리고 저 먼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성공하기 위해 상경한 청춘남녀는 마지막으로 녹음기를 고친 날, 배달용 트럭을 타고 드라이브를 떠나게 된다.


비포장도로를 달리던 아버지는 조수석에 앉은 엄마를 설핏 바라보았다. 여인의 얼굴에는 아이유 같은 귀여운 매력이 철철 넘쳤다. 트럭 안에서는 ABBA의 I HAVE DREAM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엄마의 마음속에도 역시 3단고음이 울려퍼졌다. 이렇게.


나는요, 오빠가 좋은걸, 아이쿠, 하나, 둘,

아임인마드리이이이임.


엄마와 아버지는 사귀면서 수많은 데이트를 했는데, 그 중 엄마가 가장 좋아했던 건 드라이브였다. 그녀는 그 도로 위, 그 청량한 공기, 그 탁트인 시야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이 세상의 모든 걱정과 근심이 모두 시원한 바람에 흩어져가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결혼 전에는 사장님의 트럭으로, 결혼 후에는 아버지가 운전하는 택시로 언제든 길을 나섰다. 떠나는 데에는 어떤 장애물도 그들을 가로막지 못했다. 지도도 필요없었다. 택시기사였던 아버지는 아버지 자체로 인간 네비게이션이었고, 그의 머릿 속에는 전국팔도의 도로가 가득했다.


그런데 사실 나는 아버지에게 궁금한게 있었다. 택시기사로 일하며 하루종일 진을 빼고나면 쉬는 날에는 분명히 운전대를 좀 놓고싶을텐데, 아버지는 엄마가 드라이브를 가자고 할 때마다 별 불만없이 차키를 챙기곤 했던 것이다. 만약 내가 이런 아버지의 삶을 살았다면, 단언컨대 휴무일에는 택시 쪽으로 절대 눈도 안 돌렸을 거다. 대체 아버지를 그렇게 움직이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 답을 이렇게 내렸다. 아버지는 엄마에게 지독하게 빠진 사랑꾼이라고. 그리고 그건 이 이야기 하나로 증명할 수 있다. 지인의 결혼식 때문에 부부가 포항으로 향했던 어느 날이었다. 아버지는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들을 보며 근황도 나누었겠다, 맛있는 밥도 먹었겠다 기분이 매우 좋았다. 서울에서 여기까지 오느라 몸은 조금 고되었지만, 뭐 어떤가! 이제 경부고속도로만 주욱 타고 서울로 올라가면 되는데! 아버지는 이 여정의 반은 이미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 엄마가 예상치 못한 말을 했다. 아니, 말이 아니라 김여사표 콧소리애교 메들리’를 시전이었다.


“댜기야, 김뇨사. 빠아아아다 보고디퍼요. 히잉. (해석 : 자기야. 김여사는 바다를 보고 싶다.)”

지금 말로 동공 지진이라고 해야 하나, 그걸 들은 아버지의 눈동자가 딱 그랬다. 아니, 경부고속도로로 가면 단 몇 시간 만에 서울로 갈 수 있는데…. 그러나 그런 고민도 몇 초. 돌아가는게 뭐가 문제인가, 내 아이유가 지금 바다를 보고싶다고 하지않나. 아버지는 역시나 사랑꾼이었고, 자신의 아내를 위해서 두 팔을 걷어붙인 채 액셀레이터를 밟았다.


포항에서 강원도로 주욱 이어지는 해안도로는 길었다. 예상했던 시간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을 지체했다. 그동안 엄마는 반짝이는 파아란 바다를 마음껏 보기도 하고, 조수석에 누워 코를 또 크으으으으으으엉 골며 자기도 했다. 그래도 아버지의 귓가에는 그게 다 귀여운 애교로 뭉쳐진 콧소리로 들렸을 거다. 젊었을 때 아버지의 심장은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사랑으로 절절 끓었으니까.



어느덧, 빌린 트럭으로 갈대밭 데이트를 즐기던 20대의 어리고 귀여웠던 커플은 40년이라는 길고 긴 세월을 지나 60대의 노부부가 되어버렸다.


자동차의 시동이 꺼질 때까지 깔깔대며 즐거운 웃음소리를 내던 소녀는 이제 남편의 병원비와 세 딸의 앞길을 책임지는 가장이 되어버렸고, 그 세월의 풍파가 너무나도 억센 탓에 드라이브가 시작된 지 5분도 안되어 잠이 드는 할머니가 되어버린지 오래다.


그건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오직 아내만을 위해 스스로의 휴무일까지 반납하며 운전대를 잡았던 어린 가장은 이제 머리가 하얗게 다 쇠어버린 그저 병약한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어느 전자기기 상점의 키 큰 훈남과 아이유의 모습은 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드라이브처럼 당신들의 인생도 참 즐겁기만 했으면 좋았으련만…. 40년이라는 인생 안에는 청신호만 있지않았다. 어느 날은 신호등도 고장 나 멈춰서야했고, 또 어떤 날은 이 길이 아닌 저 길로 돌아가기도 하였을 테지. 또 비가 세차게 오는 날은 함께 차를 밀어야 했던 그런 날도 있었을 거다. 그 도로 위는 참 평화롭기도, 짜증나기도, 매우 춥기도 했던 그들만의 사계절이 분명히 존재했다.


하지만 좀 돌아가면 아니, 멈춰서면 어떠랴, 그 여정의 한가운데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바다를 늘 함께 보았는데. 그들이 어떤 표정으로 하늘과 바다를 바라보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건 둘만 알 것이다. 다만 추측할 수 있는건 서로가 짧지않은 긴 시간동안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느끼며, 함께 울기도 함께 웃음짓기도 했다는 것.


임진각을 향하던 도로 위, 아버지는 조수석에서 잠든 엄마를 설핏 바라보았다. 그리고 가는 내내 아내가 깨지 않도록 그저 조용하고 묵묵히 운전만 할 뿐이었다. 한참 뒤 임진각에 도착한 우리 가족은 차에서 내렸다. 내 앞에는 엄마와 아버지가 주름진 손을 맞잡은 채 천천히 걷고 있었다.








<작가의 말>

젊었을 때는 아이유, 지금은 아이같은 애교킹 우리엄마 :) 내가 팬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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