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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의 나는 동화 콩쥐팥쥐의 마지막 장을 아주 무거운 마음으로 덮었다. 콩쥐가 아주 좋은 해피엔딩을 맞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그저 나는 서점 안에서 쪼그려 앉아 무릎을 감싸 안으며 고개를 푹 묻을 뿐이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작은언니와 내가 친자매가 아닐 수도 있겠다.
내가 남의 자식이거나 아니면 작은언니 네가 남의 자식이거나. 그렇지 않고서야 그녀와 내가 콩쥐와 팥쥐와 같은 의붓자매 사이 그 어딘가와 이렇게 닮아있을 리가 없었다. 그럼 누가 남의 자식일까, 아아. 그러고 보니 아버지가 잊을만하면 나를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고 했는데 그게 사실이었나라고 생각하다가 거칠게 도리질을 했다. 나는 급히 현실을 부정하며 이런 결론을 내렸다.
아니야. 그렇게 성격이 더러운 걸로 봐서는 작은언니가 무조건 남의 자식이야.
어휴. 언니 이제 어떡하냐. 내가 이 사실을 알아버렸으니. 큰일 났다, 큰일 났어.
큰일 나긴 무슨 큰일이 나나, 언니의 무력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굳이 도형으로 그리자면 언니의 성격은 세모. 모난 곳이 세 곳 일 뿐인데 그게 마구 돌아가면서 사람의 기분을 훅, 마음의 상처를 훅, 가끔은 내 머리통을 자비 없이 빠악 갈겨버리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가령 작은언니가 심부름을 시키고 어린 내가 합리적인 대답(이라고 쓰고 말대답이라고 읽는다.)으로 그것을 거부하면 언니는 어김없이 You wanna die? Huh?라고 말하며 주먹을 쥐었다.
그러다 내가 울기라도 하면 옆에 있던 큰언니는 왜 애를 울리냐며 작은언니에게 뭐라고 하고는 나를 안아주며 이렇게 소곤거렸다. 은주야,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거 아니잖아, 더러워서 피하지. 그냥 피하고 말어. 하지만 큰언니의 말이 틀렸다는 걸 나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난 그녀가 너무 무서웠다. 진심으로 그렇게 무서운 똥은 내 생애 처음이었다.
작은언니는 모 여대의 체육학과에 당당하게 입학했다. 그리고 그 시절의 언니는 나에게 마치 카멜레온처럼 보이기도 했다. 학교를 가는 5일 중 4일은 등에 학교 이름과 체육학과라고 새겨진 초록색 야구잠바를 입었고, 미팅이 있는 나머지 날들은 이두를 가릴 수 있는 청재킷과 발달된 대퇴근을 숨길 수 있는 적당한 길이의 치마를 입고 신촌으로 향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언니는 예뻤다. 그리고 수많은 신촌의 남학생들이 언니의 연락처를 원했다. 아마, 그들은 몰랐겠지. 자신보다 팔 굽혀 펴기는 100회 정도 더 할 수 있고, 물구나무를 서서 거실에서 부엌까지 돌아다닐 수 있으며,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상황에서는 꽤 입이 험해진다는 사실을. (그들 중 아마 몇은 언니 심기를 건드려서 결국에는 줘 터지지 않았을까, 나는 조심스럽게 예상해본다.)
하나 고백하자면 학창 시절의 나는 언니를 지구 상에서 제일 싫어했다. 내가 질이 좋지 않은 친구들을 만나 혹시라도 나쁜 길에 들어설까 봐 였을까, 언니는 내 가방을 뒤지고는 미샤 화장품이 나왔다며 학생이 무슨 파우더를 바르냐고 아버지에게 이르고, 피시방에 갔다 온 나에게 담배냄새가 난다고 마구마구 일러댄 탓에 난 친구들과 그다음부터 피시방 근처에도 못 갔다.
핸드폰에는 언니를 ‘형사’라고 저장하였고, 일기에는 제발 신이 있다면 언니를 좀 일찍 데려가 달라고, 인간은 어차피 죽지 않냐며 써 갈기기 시작했다. 그러다 언니가 거실에서 ‘이은주, 물.’ 이러면 물을 갖다 주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신이시여, 지금 당장 그녀를 데려가소서. 사람이 물먹다 죽을 수도 있는 거죠? 그렇죠?’라고 힘껏 써 갈겼다.
하지만 이런 행동을 반복한 나에게도 작은언니를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다. 이 일로 말미암아 나는 지구 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존재에서 그냥 인천에서 제일 싫어하는 정도로 그녀를 조금(?) 인정하게 되었다.
때는 2003년, 중학교 체육대회를 앞둔 무더운 여름이었고 그 해 나는 학급 반장이었다. 뭐, 이름만 반장이었지. 사실은 아이들을 통솔할만한 파워도, 성격도 안 되는 탓에 그저 허수아비일 뿐이었다. 그날도 나는 연두색 체육복을 입고 대회 종목인 에어로빅을 연습하고 있었다. 창 밖에는 매미가 죽을 듯이 울고 있었다.
나는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팔과 다리를 이리저리 흔들고 대충 교실 이곳저곳을 돌아보았는데 부반장이 친구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평소 흔히 잘 나간다는 친구들 앞에서 거침없는 아부를 선보이는 그녀의 행동이 떠올랐고, 나는 참 재수 없다고 생각하던 차라 그녀 뒤에서 썩소를 한방 날려주었다. 그런데 그때, 부반장이 고개를 돌렸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승무원처럼 입매무새를 다시 고쳤다. 그녀가 곧 슬며시 다가왔다.
야, 이은주. 이번 체육대회 때 애들한테 뭐 쏠 거야?
글쎄, 생각 있어?
야, 이번에 롯데리아에서 한우버거 세트 나오던데. 그거 하자.
그래? 한번 생각해볼게.
부반장의 표정은 ‘생각하긴 뭘 생각해, 내가 하라고 하면 하는 거지’라고 쓰여있었지만, 나는 그녀를 애써 외면한 채 계속 여유 있는 척 연습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학교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급히 돌아온 나는 제일 먼저 컴퓨터를 켜고 롯데리아 사이트에 접속했다. 그녀의 말대로 한우버거 세트가 팝업창에 거대하게 그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서랍 속에서 계산기를 꺼내 우리 학급의 인원 수와 한우버거 세트의 숫자를 두들겼다.
444,000원.
잘못 보았나, 계산기를 몇 번이나 다시 두들겼지만 끝내 숫자는 변하지 않았다. 에휴, 가격 한번 죽이게 비싸네. 이 년은 우리 엄마 피 말리는 꼴을 보고 싶어서 그러는 건가, 이거면 우리 엄마가 김밥을 몇 백 줄을 싸야 하는지 아냐, 라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이건 부반장과 내가 반으로 나누어도 20만 원이 넘는 금액이었고, 그 당시 물가에 비해 상당히 비싼 금액이었다. 나는 뒤돌아 소파에 앉아있는 작은언니에게 물었다.
언니.
왜.
내가 반장이니까 반애들한테 체육대회 때, 뭐 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데…
그거 500원짜리 아이스크림 하나씩 돌리면 되는 거 아니냐?
나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속으로 ‘5년 전 중학교 반장들은 체육대회 때 저럴 수 있었구나.’라는 생각과 동시에 그녀와 나의 세대차이만 격하게 실감할 뿐이었다. 나는 조용히 내 방으로 들어가 핸드폰으로 부반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무래도 한우버거는 비싼 것 같아. 우리 다른 걸 생각해보자.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핸드폰을 닫고 책상에 앉아 숙제거리를 펼쳤다. 그러나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도록 부반장에게서 문자는 오지 않았다. 아직 못 봤나, 의아함에 괜히 핸드폰을 열었다 닫았다 하던 나는 에라 모르겠다, 하며 저쪽으로 핸드폰을 치우고 숙제에 몰두했다. 그리고 마침내, 얼마 지나지 않아 문자가 도착했다. 그리고 또 문자가 도착했고, 그리고 또 문자가 도착했다. 대충 내용은 이런 것들이었다.
야, 이은주. 네가 반장 돼서 우리한테 하나라도 쏜 거 있냐? – 한나 –
야, 이은주. 한우버거 왜 못 쏘는데? ㅋㅋ 웃기다. 반장도 제대로 못하면서 – 유리 –
야, 이은주. 네가 뭔데 …. – 지연 -
야, 이은주. 부반장이…. – 지수 –
그중, 부반장이 보낸 문자는 단 하나도 없었다. 그저 그녀와 친한 것처럼 보이는 우리 반 일진 지망생들의 이름만이 연속적으로 내 핸드폰을 장식했을 뿐이었다. 그 순간, 선명하게 보이던 핸드폰 화면이 갑자기 잘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집인데 안개가 낀 것 같기도 하고, 비가 오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다 눈을 감으니 물이 후두둑 떨어졌고, 정말 추하게도 콧물이 턱까지 내려왔다. 나는 갑티슈 몇 장을 뽑아 얼굴을 닦았고, 목이 메는 탓에 헛기침을 몇 번했다. 그런데.
뭐야.
문이 열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그날도 야구잠바를 입고 있는 작은언니였다. 나는 그때, 왜인지 모르겠지만 지구 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언니를 보았을 뿐인데 겨우 멈췄던 눈물샘이 터졌고 눈물을 말 그대로 방류해버리기 시작했다. 언니는 잠시 그런 나를 지켜보더니 내가 쥐고 있던 핸드폰을 뺏어서 문자를 그대로 읽어 내려갔다.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역시 그녀의 입은 험했다.
뭐야, 이 시X년들은.
야, 얘네 지금 어디야. 네가 앞장서.
언니, 제발 이러지 마. 나는 언니의 손목을 잡고 최대한 힘을 주며 버티기 시작했으나, 이두와 대퇴근이 발달했으며 물구나무로 거실과 부엌을 약 10회쯤 돌아다닐 수 있는 그녀를 이길 수는 없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언니와 나는 2학년 8반 미닫이 문 앞에 서있었다. 아이들은 다음 날 열릴 체육대회를 연습한다는 명목 아래 오후 네시가 지나도록 교실을 지키고 있었고, 그곳에 부반장과 일진 지망생들도 보였다.
언니가 미닫이문을 살짝 열고 그 앞에 있는 누군가에게 무어라 하니, 교복을 입은 다른 누군가가 다가왔다. 야구잠바를 입기는 했지만 언니는 예뻤고, 그 친구는 별 경계심 없는 순수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안녕, 여기 부반장이 누구야?
아… 전데, 누구세요?
사실, 그 후에는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단편적으로 몇 장면만 기억이 나는데 한 대여섯 명 정도가 미닫이문을 필사적으로 닫으려고 붙잡고 있으니 언니는 괴력을 발휘해서 그 문을 열어버렸고, 아이들은 줄줄이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교실로 진입한 언니가 문자 보낸 아이가 누구냐, 부반장 이리 나와라 하며 사자후를 내질렀다.
진심 쪽팔렸다. 어린마음에 고맙다는 마음이 먼저 들기보다는 나 내일 학교 어떻게 가!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하필이면 다음 날이 체육대회였고, 그 일은 우리 중학교 전체에 걸쳐 일파만파 퍼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이은주 언니가 조폭이란다, 아니다 체육학과인데 여자 유도 국가대표 선수라더라 등등. 하지만 다음 날, 쪽팔림을 무릅쓰고 간 나에게 그 누구도 소문의 진위를 묻지 않았고, 나 역시 그 소문에 대해서 굳이 진실을 밝히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들은 나와 부반장이 체육대회 때 쏜 것이 한우버거 세트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별 불만 없이 잘 먹어주었고, 나를 반장 대우해주었으며 부반장 또한 나를 다시는 무시하지 않았다.
그 사건으로 인해 언니는 내가 다니는 중학교의 선생님과 기나긴 면담의 시간을 가졌지만, 언니는 평소의 언니답게 기죽지 않고 당당했다. 그래서 우리 둘이 극적으로 사이가 좋아졌나? 그것도 아니었다. 언니와 나는 우리가 지금까지 보낸 서먹하고 어색하기 짝이 없는 과거를 반성한다거나 하는 그런 느끼한 것 따위는 하지 않았다. 대신 내 안에 그래도 언니가 나를 동생으로 생각해주긴 하는구나, 라는 마음이 스쳐갈 뿐이었다. 변한 것없이 사건은 사건일 뿐이었고, 여전히 그녀는 나에게 있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였다.
하지만 뭐, 굳이 변한 것을 열거하자면.
그녀는 내게 '지구 상'이 아닌 '인천'에서 싫은 사람으로 그 온도차가 확 줄었으며 ,
내 핸드폰에 저장된 그녀의 이름이 이를 기점으로 ‘형사’에서 ‘둘째 언냐’로 바뀌었으며,
더 이상 나는 그녀가 죽기를 바란다는 소원을 일기에 써 갈기지 않았다. (넘어지길 바란 적은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콩쥐팥쥐와 같은 의붓자매가 아니라 친자매라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작가의 말>
작은언니에 대한 작가의 말이라.... 오글거립니다. 우리는 그런 사이가 아니기에.....
지금은 싫어하진않고 좋아는 합니다. 언니를요... (누가 김치 좀 주실래요. 오글거리고 느끼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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