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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주 Dec 23. 2019

내 생애 첫 코인노래방 도전기

어느 삼십 대의 코인노래방 체험기


낯선 것이 싫다. 아니, 싫어졌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낯섦을 마주하기 위한 소모적인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새것이 싫어진다. 새 느낌과 새 의지를 가져야 하는 순간은 꽤 귀찮다. 


몇 개월 전이었다. 속이 꽉 찬 김말이 같은 답답한 지하철을 벗어났다. 사람이라는 물살을 가르고 역 입구로 겨우 빠져나오고 나서야 나는 깊은 한숨을 토해낼 수 있었다. 마치 회사에서 들이마신 모든 공기를 내뱉으려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래도 오늘 하루는 기꺼이 살아내었구나,’라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즈음 내 시선에 수초 간 머무른 건 바로 500원에 두곡이라고 적힌 분홍색 코인노래방 입간판이었다. 


이층에 위치한 그곳에 문을 열고 들어가 아무도 없는 카운터에 섰다. 검은색 카운터 위에는 ‘청소년들 절대 흡연 금지, 적발되는 순간 학교로 연락 감,’이라고 쓰인 다소 위협적인 안내문이 나를 맞이했는데, 십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노래방 사장과 교복을 입은 청춘들과의 싸움은 아직도 한참 진행 중이라는 생각이 들어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잠시 뒤, 아르바이트생으로 보이는 누군가가 카운터로 돌아왔고 그 앞에서 벙벙하게 서있던 나는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것도 수초 간이나 말이다. 이상했다. 보통 노래방 사장님들은 눈이 마주치면 얼마나 놀 거냐, 한 시간에 얼마다, 음료는 마실 거냐, 카드냐 현금이냐 등의 질문을 하기 마련인데 그분의 눈은 나에게 이렇게 묻고 있었다. ‘어. 쩌. 라. 고.’


그때, 출입문으로 어느 고등학생 두 명이 들어섰다. 그들은 복도를 그대로 가로질러 아무 빈방으로 향했고 얼마 뒤 그곳에서는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제야 나는 내가 이 곳의 룰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구나, 라는 감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아, 여기는 노래방이 아니라 무려 ‘코인노래방’이었지. 나는 여전히 ‘어. 쩌. 라. 고’라는 표정을 짓는 아르바이트생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냥…, 들어가면 되나요?

아무데나 빈 방 들어가셔서 동전 넣으시면 돼요. 

저, 근데…, 카드 되나요?



묻는 내 말에 그녀는 대답 대신 카운터 위 어느 안내 종이를 손가락으로 톡톡 치며 가리켰다. 



[카드는 3,000원부터 가능, 엄카환영] 










검고 반짝이는 기다란 복도를 주욱 홀로 걸어갔다. 그녀는 나에게 32번 방이 비었다고 말해주었는데 그곳으로 가는 길은 참 별세상이었다. 한 평도 안 되는 사십여 개의 공간들이 닭장처럼 다닥다닥 붙어있었고, 방을 차지하는 대다수는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었다. 누가 우리나라를 배달의 민족이라고 했나, 아니다. 우리나라는 분명 도전천곡의 민족 아니, 그것도 너무 오래됐다. 쇼미더머니의 민족이다. 


반평이나 될까 말까 한 그 조그마한 공간, 전면부에 보이는 32인치 티브이 한 대, 누가 누구랑 사귄다는 유치한 낙서로 가득한 벽, 그리고 도합 4명이나 앉을까 말까 한 기다란 의자 2개. 이것들은 내가 처음으로 마주한 32번 방의 광경이었다. 좁기도 좁아서 꽤나 놀랐는데 사실 내가 가장 놀란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화면 오른쪽 모서리에 보이는 정 없는 숫자 때문이었다. 알고 보니 그건 내가 부를 수 있는 노래의 곡 수였다. 무려 열다섯 곡이랜다, (콘서트니?) 그건 내가 삼천 원과 맞바꾼 것이었다. 


참 이상했다. 같은 것인데도 낯설었다. 내가 아는 노래방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시간당 이만 원에 널찍한 방과 넓은 테이블 안에서 우리는 참 자유로웠다. 줄어가는 시간이 아까워 간주 점프와 절 점프 그리고 점수 제거를 초기 세팅한 뒤 제대로 달리기 시작했던 기억, 잔여시간이 1분 정도 남으면 노래방 사장님에게 마치 서비스를 달라는 시위라도 하듯 노래방 메들리 14번을 찾아 시작 버튼을 누르던 기억들이 생생했다. 


그런데 내가 보고 있는 것은 참 정 없어 보이는 ‘15’라는 숫자, 그리고 이 좁은 공간에 홀로 남겨진 자신이었다. 참담한 심정으로 리모컨을 들어 인기차트를 눌렀다. 이런 제기랄, 1위부터 10위까지 아는 노래가 없다. 키드 밀리, 슈퍼비, 나플라가 누구냐. 요즘 것들은 작명 센스들이 왜 저래. (알고 보니 동년배였음) 나는 버튼을 눌러 다음 순위로 넘어갔다. 그리고 넘겼고, 넘겼고, 또 넘겼다. 나는 낯섦 안에서 조금의 익숙함을 찾아내기 위해 무진장 애를 쓰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하게 된 곡은 다이나믹듀오의 ‘죽일 놈’. 아, 제목은 죽일 놈인데 왜 이렇게 반가운 놈으로 다가오는 거냐. 영원히 사랑받을 놈들. 대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노래방 인기차트의 자리에서 내려가지 않고 있는 랩 하는 송해! 우리 다듀님들에게 감사하며 내레이션부터 노래까지 냅다 부르기 시작했다. 


 

 너 아까 나한테 왜 그랬어
 너 또 왜 그러는데
 내가 도대체 어디까지 맞춰야 돼
 넌 맨날 그런 식이야 됐어 나 갈게






곧이어 땡땡땡(슈프림팀) 종을 치고 회사에서 나와서는 바로 잡아타고 싶은 이별택시(김연우), 세기말 감성들로 수놓아진 노래들을 연이어 홀로 부르며 나는 나를 하얗게 불태웠다. 열다섯 곡의 파장은 컸다. 거기다가 시간이 아니라 곡수가 줄어드는 시스템은 나를 1절 가수가 아닌 완창 가수로 만들어주었기 때문에 갈수록 목이 너무 아파왔다. 


결국, 마지막 곡으로 예약한 에일리의 보여줄게를 보여주기는커녕 거의 반주만 틀어놓은 채로 쭈그려 앉아있어야 했다. 하지만 단언컨대, 지금 이 순간 삼천 원은 그 어떤 아메리카노들보다 시원하고 값졌다.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의 원흉, 박 부장도 생각나지 않았다. 코인노래방 이거, 할만하네!


어느새 화면의 숫자가 1에서 0으로 바뀌었다. 나가라는 말이었다. 역시 서비스는 없었다. 에잇, 정 없는 코인 노래방 것들, 세상이 왜 이렇게 변해가? 괜히 성질이 나서 가방을 어깨에 홱 둘러매고 문고리를 잡았다. 그런데 그 순간, 벽에 붙은 성인 애창곡 순위 벽보가 시야에 들어왔다. 배호, 나훈아, 임주리 등 트로트 가수들이 부른 애창곡 리스트들이었다. 


나는 한순간 아주 어렸을 적, 그러니까 내가 교복을 입고 노래방을 뻔질나게 드나들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낯선 감정들을 느끼기 시작했다. 물론 그때도 이런 벽보는 있었다. 그래도 그건 있으나마나한 것이었고, 어린 나와는 절대로 상관이 없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 똑같은 벽보를 보는데 그냥, 뭐랄까…. 어린 친구들이 선점하고 있는 디지털 인기차트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그들의 시대를 누군가 자리한켠을 마련해 보여주는 느낌이랄까, 딱 그거였다. 배려라면 저것도 배려겠지. 하지만 오래지 않아 저 벽보에는 그들의 시대가 지워지고 곧 우리의 시대로 가득 차오르겠지. 혹시라도 저곳에 젝스키스나 동방신기가 이름을 올린다면 나는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까. 글쎄다,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에휴, 이런 생각을 하는 것 보니 나도 나이가 들어가는구나.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노래방을 나왔다. 






사실을 고백하겠다. 나는 코인 노래방을 가기까지 일 년 남짓 그 주위를 배회했다. 처음에는 익숙함에서 조금은 변종된 그 존재가 참 맘에 안 들었는데, 나중에는 저게 대체 무엇일까 하는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쉽사리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문턱을 넘는 일이 무엇이 어려운 거냐고, 남들이 들으면 웃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게 나에게는 참 어려웠다. 노래방이라는 단어 앞에 ‘코인’이라는 두글자가 붙어서, 오백 원에 두곡이라는 그 계산적이고 정 없는 조건이 싫어서, 아이들만 가는 것 같아서 그래서 나는 노래를 부르고 싶어도 꾹 참고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지고 나서야 우리가 늘 가던 노래방을 가자고 졸라댔다. 익숙하지도 않고, 내 것이 아닌 것 같고, 가서 무언가 실수라도 해서 내 치부를 드러내면 어쩌나 하는 낯선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었다. 


그런데 막상 겪어보니 별 게 아니다. 가서 바보처럼 서있을까 봐 쪽팔리다고? 아니다. 의외로 세상 사람들은 자기 살기도 바빠 나라는 인간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관찰하고 앉아있을 여력이 없다. 그러니 사용법을 모르면 아르바이트생한테 물어보거나 거기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 쳐다보면 될 일이고, 문을 열고 들어서 리모컨을 들고는 익숙한 다이나믹듀오만 찾으면 될 일이다. 혹시라도 나이가 들어 노안이 와서 그들을 못 찾게 되면 누군가 배려해준 벽보 앞에서 돋보기안경을 쓴 채 하나하나 손으로 훑으며 천천히 찾아가면 될 일이겠지. 정말이지, 별 거 아니다. 


결론적으로, 나는 무섭게 변해가는 이 세상 속에서 낯선 것을 받아들이고 과감히 그 문턱을 넘어설 줄 아는 작은 용기만 가지고 살아가면 된다. 마치 그날의 한 끼를 때우기 위해 현관문을 열고 나와 맥도널드 키오스크 앞을 서성이는 어느 할머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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