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피곤한 날이었다. 왜 살다보면 그런 순간들이 있지 않나, 침대에서 눈을 떴는데 온몸이 물을 먹은 솜베개처럼 무겁게 느껴져 겨우 있는 힘, 없는 힘 다 끌어모아야지만 일어날 수 있다거나 걸어가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천근 같은 납덩이처럼 느껴져 타야 할 버스를 지척에 두고 그냥 눈으로 좇기만 하는 그런 날. 엄마에게는 그때가 딱 그런 날이었다.
그래도 뭐 별 수 있나, 살아가야 하니 엄마는 늘 그랬듯 출근을 했고, 주방에 서서 김밥에 들어갈 계란지단을 부치고, 나물을 데쳤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창 너머 길가의 오가는 사람들과 도로 위 차들이 자취를 감추고, 손님이 뜸해지는 늦은 밤이 찾아오곤 했다.
에휴, 몸도 안 좋고 손님도 없는데 잠시 쉴까, 라는 생각이 들어 엄마가 잠시 의자에 앉아 눈이라도 붙이려 했던 그때였다. 하필이면 손님의 방문을 알리는 종소리가 유난스럽고도 길게 울려 퍼졌다. 출입문으로 찬기가 훅하고 밀려들어왔다. 대충 열명 정도가 되는 남녀 고등학생 아이들이 몰려온 것이다. 이 늦은 밤,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가게를 찾아왔다는 게 의아했지만 간혹 야간 자율학습을 끝내고 오는 경우도 있으니 엄마는 그러려니 했다.
행운분식은 말 그대로 1분도 안 되어 점령당했다. 그것도 형형색색의 노스페이스 군단들에게 말이다. 아이들의 행동은 세 가지 중에서 벗어나는 것이 없었다. 그 나이의 아이들이 으레 그러하듯 서로에게 거친 욕설을 내뱉으며 장난을 치거나, 옆에 있는 친구와 셀카를 찍는다거나, 주머니에서 나온 틴트를 정성스럽게 바른다거나. 엄마는 정신이 번쩍 들어 주방으로 이동하고는 메모지를 챙겨 주문을 받았다. 아이들은 순식간에 이것저것 메뉴를 외쳐댔다.
야, 나는 칼국수. 나는 잔치국수!, 야, 우리 김밥도 먹으면 안 되냐, 아, 배고파. 나는 짜장 곱빼기, 등등. 주문을 받고 보니 꽤나 난감했다. 보통 어른 손님들이 단체로 오면 메뉴를 통일하거나 많아도 두세 가지로 정리되는데 아이들은 달랐다. 통일해달라고 할까…. 엄마는 아이들을 설핏 바라보았으나 왠지 타협이 될 것 같지 않아 그 마음을 접었다. 저 나이에는 먹고 싶은 건 그냥 먹게 놔두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엄마는 그냥 여러 냄비를 가스불 위로 올렸다. 마음속으로 다른 손님들은 더 오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냥 돈이고 뭐고 그 날은 힘이 들어서였다.
노스페이스 군단 친구들은 가게에 꽤 오래 머물렀다. 시계의 바늘은 어느새 12라는 숫자를 가리키고 있었으나, 서로에게 할 말이 많은지 아이들은 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렇게 밤이 늦었는데 부모님과 통화하는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엄마가 찝찝한 기분을 안고 창고에서 무언가를 꺼내 돌아왔을 때, 괜스레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건 괜시리가 아니었다. 아까는 분명 열명이었는데 이제 노스페이스 군단의 수가 세명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다. 엄마는 문 쪽으로 가서 바깥을 빼꼼 살펴보았다. 길가를 좌우로 살펴보아도 일곱 명의 아이들은 어디로 갔는지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주방으로 돌아섰을 때 또 한 명이 일어섰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키가 큰 남자아이였다. 아, 나 전화하고 와야겠다, 하며 조급하게 걸어 나가는데 그때서야 엄마의 머릿속에 비상등이 깜박깜박거리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아이들이 슬슬 도망가고 있다는 것을.
엄마는 다시 출입문 쪽으로 향했다. 최종으로 남은 두 명의 아이들을 내내 지켜보았다. 두 개를 붙인 테이블 위로 아이들이 먹어치운 다양한 음식의 빈그릇들이 전쟁의 최후처럼 널려있었다. 나머지 두 명의 아이들은 아까처럼 시끄럽게 떠들지도, 일어서지도 않았다, 그리고는 패잔병처럼 괜히 엄마가 있는 쪽으로 눈치만 슬슬 보며 문자만 주궁장창 계속 주고받는 것 같았다.
이때 엄마는 확신했다. 이미 도망간 친구들과 연락을 주고받고 있구나. 이 놈 자식들…. 엄마는 경험적으로 꽤 많은 십 대 친구들의 무전취식을 겪어왔었다. 그 패턴은 너무나 비슷해서 이제 그 테이블의 분위기만 봐도 어느 정도는 때려 맞출 수 있을 것 같은 형사나 다름없는 감이 있었다. 지금은 잠복을 끝내고 활동을 시작해야 할 때였다. 괜히 출입문 앞을 서성거리며 팔운동을 하는 척하며 말을 걸었다.
맛있게 먹었니?
별 말도 안 했는데 두 명의 아이들의 흠칫 놀라는 게 노스페이스 패딩을 뚫고 나올 정도로 티가 났다. 엄마는 한 마디를 더 얹었다.
근데, 얘들아. 우리 가게가 원래 선불이거든. 아줌마가 깜박 잊고 돈을 안 받았네.
핸드폰만 진득하게 바라보던 아이들은 불안한 시선을 들어 엄마를 바라보았다. 올게 왔다는 표정이었다. 엄마는 친절한 금자씨 같은 웃음을 띄운 채 벽으로 손가락질했다. 아버지가 언젠가 붙여놓은 코팅지가 벽에 붙어있었다. 거기엔 “선. 불.”이라는 두 글자가 빨간 글씨로 크게 쓰여있었다. 하필이면 진지하고도 무서운 궁서체였다.
출입문에서는 사장이 조금은 격렬한 팔운동을 하고 있고, 벽에는 빨간 글씨가 써져있고, 때맞춰 전등은 무섭게 깜박깜박거렸으며 밖은 컴컴한 상황. 아마 배경음악이 깔렸다면 컨저링과 엑소시스트 그 사이였을 것이다. 그제야 아이들은 이실직고를 했다. 사실은 돈이 없다고, 너무나 배가 고파서 왔다고, 한 번만 봐주시면 꼭 다음 날 돈을 가져오겠다고 했다. 엄마 앞에 서서 누구보다 간절하고, 곧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는 그때부터 굳은 표정으로 그저 아이들을 바라보기만 했다.
차라리 배가 고프다고 말을 했으면 그냥 끓여줬을 것이다. 엄마는 진짜로 그런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 아이들은 처음부터 계획적이었고, 그것이 실패하자 상황을 모면하기에 급급했다. 어떠한 반성의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을 이대로 보내면 아마도 다른 가게에서 또 그런 짓을 반복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이 아이를 어떻게 하지, 엄마는 고심스러웠다. 성인이라면 신분증이라도 맡기라고 했을 텐데 말이다. 이 어린것들을 경찰에 신고할 수도 없는 노릇…. 한편으로는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나머지 여덟 명의 죄까지 모두 뒤집어쓰고 있는 아이들의 처지가 불쌍하기도 했다. 아마 도망에 성공한 학생들은 이 상황을 알고 어딘가에서 지켜보면서도 코빼기도 안 비추는 것일 수도 있었다. 엄마는 일단 단호하게 질렀다.
너네. 일일이에 신고할까?
네?! 아아, 아줌마! 안돼요! 한 번만 봐주세요! 네? 저희가 내일까지 꼭 돈 가지고 올게요!
경험적으로 결론은 이미 나와있었다. 못받을 것이 뻔했다. 이런 약속은 그냥 해보는 무의미한 외침일 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4만원도 안 되는 돈은 [떼인 돈 받아드립니다.] 같은 곳에서도 안 받아주는 소액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아이들을 보내지 않고 붙잡고 있는 이유는 돈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아이들의 버릇을 고쳐주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걸 내가 어떻게 믿니?
….
아이들은 말이 없었다. 그러게. 어떻게 믿나.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까. 엄마는 아이들을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쭈욱 스캔했다. 때 묻은 운동화, 줄인 교복, 비어 보이는 가방…, 뭐 하나 적당한 게 없었다. 그때, 엄마의 눈에 띈 건 노스페이스 패딩. 때는 2008년 무렵이었고, 대한민국의 십 대들에게는 노스페이스가 대유행이었다. 안 입는 아이들이 없을 정도였고, 손님들 사이에서도 요즘 자녀들이 값 좀 나간다는 노스페이스 패딩을 사달라는 통에 꽤나 고민을 하고 있는 학부모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만큼 아이들에게는 소중하다는 뜻이었다. 엄마는 아이들에게 패딩을 자기한테 맡기고 내일 올 때 찾아가라고 말했다. 그러니 아이들이 길길이 날뛰었다.
네?! 아줌마! 안돼요! 이거 얼마나 비싼 건데요! 음식값보다 훨씬 비싼 거예요!
그러니까 맡기고 내일 찾아가면 되잖아.
엄마의 냉정한 목소리에 아이들의 한숨소리가 연이어 흘러나왔다. 아마 그 세계에서는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였을 거다. 엄마는 다시 엄포를 놓았다.
아니면, 일일이(112)에 전화할까?!
아…, 아니요! 내일…, 내일 돈 가지고 올게요.
열명 다 오라그래. 안 그러면 아줌마 정말 신고할 거다?
열명…, 다요? 아아…. 정말….
신고해?! 학교에도 다 알려?
아니요! 불러올게요!
아이들은 곧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미적대며 엄마에게 패딩 두 개를 건네주었다. 도망갈 때는 그렇게 쥐도 새도 모르게 가더니 아이들은 그 패딩을 목전에 두고 쉽사리 떠나지를 못했다. 아니, 저 패딩이 뭐길래 저렇게 침통한 표정을 짓는단 말인가. 엄마는 아이들에게 가라고 한 뒤, 패딩을 가겟방 옷걸이에 소중하게 걸어두었다. 하나는 빨갛고, 하나는 파란 것이었다. 그때, 패딩 주머니 바깥으로 무언가가 또 비죽 튀어나왔다. 자세히 보니 그건 담배였다. 에휴, 녀석들. 엄마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다음 날, 열 명의 아이들이 줄줄이 소시지처럼 돈을 가지고 왔다. 오란다고 오다니. 참 슈퍼주니어도 울고 갈 순수하고 대단한 우정이려니 했다. 갖고 온 돈은 더 순수했다. 꼬깃꼬깃한 오천 원짜리, 천 원짜리, 그리고 동전들의 집합체였다. 다 합쳐보니 만원 정도나 되었나. 돈을 센 엄마는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대체 담배는 무슨 돈으로 피우는 걸까? 별 말도 하지 않았는데 아이들은 엄마 앞에서 눈도 못 마주쳤다. 어제의 당당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니, 저 배짱으로 어떻게 분식집에서 10인분을 먹고 튈 생각을 한 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들 중 하나가 말했다.
아줌마. 저희가요…. 열심히 모아봤는데….
엄마는 듣지도 않고 말 허리를 잘랐다.
음식값 다 줄 때까지 패딩은 못준다.
아…, 아줌마! 저희 너무 추워요!
그럼 아줌마 거 입을래? ‘크로커다일’이라고 아주 좋은 브랜드야 아줌마것도. 우리 50대들 사이에서는 이게 구찌고 샤넬이야~.
….
아이들끼리 속상한 시선을 부딪쳤다. 딱 보니 50대 여자의 크로커다일을 입을 바에야 한겨울에 얼어 죽겠다는 10대의 절개가 느껴졌다. 하기사 저때는 얼어 죽어도 외모에 신경 쓸 나이가 아닌가. 그래도 그건 그저 10대의 사정일 뿐, 50대 분식집 사장의 사정은 아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엄마는 열 명의 아이들을 냉정하게 돌려보냈다.
며칠 후, 엄마는 일수꾼의 삶을 살고 있었다. 아이들은 매일 분식집을 찾아와 돈을 건넸다. 정말 들고 오는 것마다 소액에 소액에 소액이었는데 엄마는 어쩌면 귀찮은 일의 연속임에도 불구하고 오지 말라는 소리도 하지 않고 굳이 그걸 다 받았다. 돈을 다 수금한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엄마는 아이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패딩을 건네주었다.
아이들의 표정은 참 복합적이었다. 다행스러움과 왠지 모를 성취감과 이제 그만 와도 된다는 안도감이었으리라. 엄마는 급하게 패딩을 입고 있는 아이들을 보다 말고 주방에서 무언가를 집어 아이들 앞에 쑥 내밀었다. 엄마의 손을 본 아이들이 의아하게 엄마를 올려다보았다. 엄마가 들고 있는 건 다름 아닌 김밥 한 줄이었다.
저희…, 이거 안 시켰는데요?
알아.
엄마는 손으로 김밥 한알씩을 집어 열 명의 아이들에게 줄줄이 물려주었다.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받아먹은 김밥을 씹어먹으며 엄마의 말을 들었다.
맛있니?
에…, 마이어여. (네, 맛있어요)
너네, 앞으로 그러지 말라고 이 아줌마가 주는 거야. 세상은 말이야 공짜가 없단다.
이어 오아아이에요?! 온 에야에여? (이거, 공짜 아니에요?! 돈 내야 돼요?)
아니, 이건 공짜야. 아줌마가 주는 선물이지. 그동안 돈 갚느라 수고했다고.
휴….
그러니까 힘들어도 열심히 살아. 열심히 일해서 열심히 돈 벌고, 당당하게 살아. 너희 자신을 속이면 안 된다는 뜻이야.
에…. 안아압이다.(네, 감사합니다.)
아이들은 얌전하게 엄마의 말을 들었다. 하지만 금세 그 나이의 또래들처럼 서로를 밀치며 장난을 치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행운분식을 빠져나갔다. 엄마는 그 뒷모습을 끝까지 쫓다가 또다시 일상으로 복귀했다. 이제 일수꾼의 삶은 끝이다. 다시 김밥에 들어갈 계란지단을 부치고, 나물을 데치면 된다. 그런 엄마의 얼굴에는 어느새 미소가 걸려있었다.
정말 재밌는 사실은, 그 열 명의 친구들이 그 후로도 우리 분식집을 계속 찾아왔다는 거다. 자신의 친구들을 끌고 오며 여기 존맛, 이라고 하기도 하고. 그러고선 앉자마자 이 가게는 선불이야, 맞죠, 아줌마? 라며 당당히 돈을 내고 음식을 먹기도 하고. 이제는 어른이 되어서 자식을 데려오기도 하고. 뭐, 그렇게 아직도 현재 진행형으로 말이다.
엄마는 그들을 볼 때마다 마음도 몸도 한 뼘씩 성장해나가는 것 같아서 놀랍기도, 대견하기도 하다고 했다. 물론 아직도 노스 패딩 속 담배는 끊지 못한 것 같지만 말이다. 하긴, 담배를 피우나 마나 그게 무슨 상관인가. 온몸이 물을 먹은 솜베개처럼 무겁게 느껴져도, 걸어가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천근만근 납덩이처럼 느껴져도 그저 열심히 일해서 열심히 돈 벌고, 스스로에게 당당하게 살면 그만인 것을. 엄마가 보기에 그들은 충분히 그렇게 살고 있었다.
<작가의 말>
분식집 안에서 참 사건사고 많이 일어나네요. 너무 과몰입하지 마시고 귀여운 해프닝으로 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