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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주 Feb 19. 2020

손님에게 서비스를 주지 못한 이유


분식집에 오는 손님들의 일상은 대부분 비슷하다. 때가 되어 밥이 그리운 사람들은 문을 열고 들어와 빈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서는 무심하게 주문을 한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에는 낡은 티브이에 잠시 시선을 주거나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신문의 끝을 잡고 넘기며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마침내 음식이 나오면 누군가는 뚝배기에 보글보글 끓여진 된장찌개를 바로 한 숟가락 푹 뜨기도 하고, 다른 어떤 이는 뜨끈한 손칼국수에 후추와 빨간 양념장을 넣으며 자신만의 온전한 레시피를 완성한다. 그리곤 여유롭게 음식을 음미하며 그저 평범한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가끔 행운분식에는 그런 여유조차 허용되지 않는 사람들도 찾아온다. 그들에게는 마음에 드는 빈자리를 찾을 여유, 메뉴를 고를 여유, 티브이에서 나오는 이름 모를 드라마에 시선을 줄 여유, 주문한 요리의 맛을 음미할 여유 또한 없다. 우리는 그들을 소방관 혹은 경찰관이라 불렀다.






01.  소방관 이야기


비가 오는 날의 초저녁이었다. 대게 이런 날이면 사람들의 말소리보다 뉴스 앵커의 외로운 외침이 행운분식의 촉촉한 공기를 내내 데우곤 하는데, 그럴 때면 뒷짐을 쥔 엄마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우산에 숨어 바삐 걸음을 재촉하는 창 너머의 사람들을 그저 가만히 쳐다보는 것뿐이었다. 


그때, 행운분식의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는 근처 가게의 사장님의 배달전화인가, 하는 생각에 수화기를 들었다. 세월의 무게를 잔뜩 머금어 이미 노랗게 변한 플라스틱 전화기였다. 이제는 툭 치면 기계적으로 나오는 반사적인 전화 인사 ‘네, 행운분식입니다.’ 라는 말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상대방이 무어라고 짧게 말했다.  잠시 후, 엄마는 상대방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만 있다가 이렇게 물었다. 


얼마 뒤에 오실 건데요? 그때 맞춰서 음식을 내어드릴게요.


툭, 급하게 전화를 끊은 뒤 주방으로 향했다. 엄마는 빠른 손으로 냄비에 불을 붓고 가스불을 켰다. 메뉴는 행운분식에서 가장 빨리 조리되는 우동 세 그릇이었다. 비 오는 날, 평온했던 엄마의 입가가 긴장으로 굳었다. 보통 ‘선주문’과 ‘우동’의 컬래버레이션이 의미하는 바는 손님이 그만큼 여유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니 말이다. 


이를 증명하듯 분식집 앞에는 금방 소방차 한대가 섰다. 전화의 주인공인 소방관 세분이 문을 열고 도로로 내려 행운분식으로 뛰어들어왔고, 엄마는 그들을 보자마자 놀라기는커녕 익숙한 듯 우동이 가득 들은 그릇을 척 내주었다. 나이스 타이밍이었다. 


첫마디는 잘 먹겠습니다,였다. 이후에는 말소리 없이 후루룩 급히 먹는 게 그들의 일관된 특징이었다. 씹어 삼키는 게 아니라 넘긴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것도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주 급하게. 물론, 쫓기는 자들이 아니라 쫓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엄마의 시선에 그들은 늘 무심한 무전에 쫓기고 있는 아들뻘의 건장한 청년들일뿐이다. 


아이고, 그렇게 밥 먹을 시간도 없어서 어떡해요.


엄마의 말을 들은 한 소방관 청년은 면이 가득한 젓가락을 입가로 가져가다 말고 답했다.


출동 지시 나오면 바로 뛰어가야 되는데 어쩔 수 없죠, 뭐.


실제로 그 날, 그들은 분식집을 방문한 지 얼마가 채 안되어 밖으로 나갔다. 그가 말한 출동 지시가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주황색 무리가 나가고, 엄마는 그릇을 치우기 위해 빈 테이블로 다가갔다. 누구는 반 정도밖에 먹지 못했고 그 와중에 누구는 국물만 남긴 채 면만 다 먹어치웠다. 이 뜨거운 것을 이렇게 빨리 먹을 줄 알기까지 그들은 또 얼마나 치열하게 싸워온 걸까.


엄마는 문득 그들을 궁금해하다 그들에게 고마워지다 마침내는 가는 길에 김밥 한 줄이라도 그냥 포장해드릴 걸이라는 생각에 닿고 말았다. 하지만 순식간에 계산을 하고 나간 몇 분 전의 상황을 떠올리면서 엄마는 아마 선의로 만 김밥을 전해줄 시간도 없었을 거라고 단정할 수밖에 없었다.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는 이들을 찾아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도로 가에 세워졌던 소방차는 한참 전에 떠났다. 원래부터 그 자리에 없었던 것처럼.






02.  경찰관 이야기


열 평 남짓한 조그만 분식집에도 사건과 사고는 늘 일어난다. 이곳 또한 다양한 사람들이 잠시 머무르다 가는 곳이기에 예상치 못한 일들이 연속으로 펼쳐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밥값을 안 내고 도망가는 이, 술을 먹고 들어와 시비를 거는 이, 돈을 내지 않았으면서 냈다고 우기는 이, 그것도 아니면 오천 원을 내고서 오만 원을 냈다며 거스름돈을 달라는 당당한 이들까지…. 이름과는 달리 행운 분식에는 종종 불운이라는 놈이 불쑥 얼굴을 내밀고는 했다. 


30대 후반에 앞치마를 묶고 장사를 처음 시작할 적에는 남자 손님이 술에 취해 비틀비틀 걸어와 홀 한가운데 턱 하니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미친 것처럼 날뛰는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24년이 흐른 지금, 엄마는 손님이라 쓰고 영업방해라고 읽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외치곤 한다. 


아저씨! CCTV 보고도 그래요? 일일이(112) 불러서 조사해볼까요?! 네?!


우리 엄마가 이십 년을 넘게 장사하면서 깨달은 게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이런 상황에는 남편이 아니라 ‘국번 없이 112’를 눌러야 한다는 거였다. 십 년 전인가, 갑자기 폭력적인 성향으로 돌변한 손님이 남편의 얼굴을 향해 의자를 던져버린 이후로는 더 그랬고, 홀로 분식집을 지키는 여사장을 무시하던 손님들은 남편이라는 단어보다 일일이를 부른다는 말에 조금 더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기 시작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만병통치약 같은 일일이(112)는 언제나 엄마의 가장 믿을만한 구석이었다.


실제로 경찰관분들은 많은 도움을 주신다. 가게로 출동하시면 가장 먼저 여자인 엄마를 다른 이로부터 멀찍이 떨어뜨려 보호해주시고, 일사천리로 상황을 해결해주시기도 하니 말이다. 그래서 엄마는 평소에도 경찰분들이 지나가시다 끼니를 때우러 오면 언제나 반갑고도 고마운 마음이 먼저 들었고, 무엇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어 졌다.


하지만 그분들도 역시 소방관만큼이나 여유가 없으신 분들이다. 그놈의 무전이 뭔지, 언제든 무전으로 출동 지시가 내려오면 그 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지갑을 여셔야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조리시간 십 분이 넘어가는 잔치국수는 절대 못 먹고, 역시나 가장 빨리 조리되는 김밥이나 우동, 짜장 같은 것만 찾는다. 


엄마는 평범한 손님들과는 이런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사장님, 오늘은 뭐가 맛있어요?

쫄면 맛있는데 쫄면 먹죠?

그래요? 그거 주세요.

그런데 시간 좀 걸리니까, 뉴스 보고 계셔. 


하지만 이런 대화조차 그들에게는 쓸모없이 휘발되는 공기와 같은 것이라는 걸 엄마는 이미 체득하고 있었다. 그러니 달라면 달라는대로 주는 게 서로에게 좋은 거였다. 하루는 엄마가 여태까지 자신을 도와주신 분들이 너무나 고마워서 여기 있는 음식 아무거나 말씀하시라고, 음식값은 안 받는다고 한 적이 있었다. 경찰관분들은 그럴 때마다 엄마에게 바로 이렇게 말씀하신다. 법이 이래서 절대 이렇게 받지 못한다고, 그러니 마음만 받겠다고. 


김밥이라도 싸드릴게요,라고 엄마가 권하면 그때는 손까지 저으며 절대 하지 말라고 말씀하시기도 한다. 그럼 엄마는 말을 안 듣고 두 번을 권하다 결국 혼이 나고 만다. 그럴 때 경찰관분들은 자비 없이 정말 화를 내시고, 표정이 정말 무섭다고 한다. (그다음부터 엄마는 두 번 권하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들 때문에 엄마는 경찰관들에게도 소방관들에게도 한 번도 서비스 김밥을 내어 줄 수가 없었다. 



오시는 분 중에 이런 이야기를 하신 분이 있다. 화재현장에서는 컵라면이라도 들이킬 수 있는 것도 다행이라고, 그러니 이 우동은 감사한 거라고. 


그런 말을 들으면 나는 또 생각에 머문다. 어쩌면 우리가 평범한 분식집에 평범하게 들어와 아무 일 없이 음식을 시키고 기다리다 맛을 음미할 수 있기까지의 여유는 누군가 기꺼이 감내하는 희생과 노력의 결과가 아닐까 하는 그런 류의 생각 말이다. 


그런 이에게 우리는 수고한다, 고맙다는 뜻의 김밥 한 줄도 쉽게 내어줄 수가 없다. 시간이 안돼서, 법이 그래서 말이다.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성의는 그저 그들의 접시에 놓일 참치김밥에 참치를 더욱 듬뿍, 쟁반 위 우동그릇에 국물과 면만 몰래 조금 더 넣어드릴 수 있을 뿐이다. 


다만, 우리는 바랄 뿐. 그들도 편하게 들어와 편하게 음식을 시키고 여유롭게 기다리는 시간을 즐길 수 있기를. 60대 사장이 내어준 잔치국수에 양념장이니 후추니 그런 것들을 넣어서 자신만의 레시피를 만들고 천천히 음미할 수 있는 날이 꼭 오기를.


매 순간 시민들을 위해 고생하시기에, 

그저 감사하기에. 

그 순간순간을 우리 행운분식은 일상에서 온전히 느끼고 있기에.







<작가의 말>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 때 이야기에요. 점심 먹고나와서 하늘을 보면 그렇게 쨍할 수가 없더라구요.  갑자기 한강둔치로 도망가고 싶은 그런 날 있잖아요. 그런데 밥먹고 커피숍 가서 한 이십분 정도 떠들다 나오면 한시간이 후딱 가더라구요. 그럴 때 저는 점심시간이 너무 짧다고 생각했고, 월급에는 이런 인내값(?), 근로에 대한 댓가(?), 상사의 갑질값(?), 그리고 책임감(?) 뭐 이런게 들어있기때문에 마땅히 버텨야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오늘 글을 쓰는데 우리사회에서 이런 역할을 해주시는 분들은 정말 사명감이 있기에 이런 많은 순간들을  직면하고도 계속 업으로써 싸워나가시는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누구나 될 수는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직업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경찰관과 소방관분들을 이 사회를 구해주시고 지켜주시는 영웅으로 생각해야 마땅합니다. 


+) 사족을 붙입니다. 요즘 새로운 일을 준비하고 있어서 선택과 집중을 하느라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랜만에 글쓰니까 엄청 기분 좋네요. 구독자분들, 우연히 찾아와주신분들 부족한 글이지만 모두 시간을 내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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