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은주 Jan 06. 2020

영어를 알아듣는 강아지, 그 이름 '바이런'

우리 집에 잠시 머물다간 강아지에게

작은언니가 집으로 강아지 한 마리를 데려왔다. 갈색의 요크셔테리어였는데 방금 동물병원에서 분양받았다고 하기에는 그 크기가 좀 컸다. 조그만 새끼 강아지가 아닌 어느 정도 자라난 성견처럼 보였다. 너, 참 못생겼다,라고 말하며 그 털북숭이 강아지를 향해 살며시 손을 내밀었다. 그 아이는 손바닥 가까이로 조심스럽게 다가와 살 냄새를 킁킁 맡고는 잠시 후 내 손 구석구석을 마구 핥아대기 시작했다. 그 순간 이 친구와 내가 조금은 친해질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속으로 말했다. ‘나도 좀 못생겼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거든.’ 살짝 고개를 들어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 이 친구의 이름은 뭐야. 언니가 대답했다. 얘 이름은 바이런이야. B-Y-R-O-N. 호주 친구가 지어준 이름이지.



세상에나. 영어 이름을 가지고 있다니. 무려 케빈도 탐도 아닌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그 이름 바이런. 바이런은 언니의 친한 외국인 친구의 강아지였는데 키울 수 없는 사정이 생겼다며 어쩌다 우리 집으로 오게 된 강아지였다. 조금 뒤 엄마가 퇴근을 하고 돌아왔다. 엄마는 이 강아지의 존재를 미리 알았는지 그렇게 놀라는 눈치는 아니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엄마가 강아지의 이름을 물었다. 하지만 바이런의 이름을 듣자마자 엄마는 너무 어렵다며 그냥 깐돌이로 하는 게 좋다고 했다. 결국 바이런은 그 자리에서 바로 한글 패치가 되고야 말았다. 



하지만 단 한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한글 패치가 된 깐돌이가 정작 한국어를 잘 알아듣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우리 가족이 한국어를 말할 때마다 깐돌이는 고개를 옆으로 45도 정도 젖혔고, 이해할 수 없다는 애처로운 눈빛을 보내왔다. 이를 알아챈 작은언니가 곧바로 엄중한 목소리로 ‘씻따아운, 바이로운. 프울리즈으 (Sit down, byron. Please)’라고 혀를 꼬아말하면 깐돌이는 그제서야 바로 엉덩이를 딱 붙이고 앉아 언니의 손에 든 간식을 째려보기 시작했다.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나는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동물농장에 전화를 걸뻔했다. 하지만 나의 심각한 몰골이 티브이에 나올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한 뒤로 핸드폰을 가만히 내려놓았다. 



바이런, 아니 깐돌이는 매우 영특했다. 원래 깐돌이를 키우던 언니의 외국인 친구가 훈련을 잘 시켜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배변을 할 때마다 사람처럼 화장실에만 가서 누었다. (다만, 집안 곳곳에 영역표시하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아버지에게 많이 혼났었다.) 그뿐인가, 작은언니가 카리스마 넘치는 목소리로 영어 대신 한국어로 훈련을 시작하자 며칠이 안되어 싯다운과 앉아를 동시에 알아들었다. 깐돌이가 알아듣는 훈련어는 그 외에도 꽤 많았다. 먹어(Eat), 일어서(Stand up), 공 가져와(bring the ball!) 등이었다. 단언컨대, 그 아이는 나보다 똑똑했다. 그해 우리 집에는 2개 국어를 할 줄 아는 생명이 둘이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작은언니와 깐돌이였던 것이다. 



그 당시, 우리 집에는 재밌는 구경거리가 있었다. 바로 작은언니가 깐돌이와 공을 가지고 놀아주는 장면. 그건 참 장관이고, 절경이자 신이 주신 선물이었다. 언니는 그때만큼은 깐돌이를 깐돌이로 대하지 않고 바이런으로 상대하며 영어로 말했다. 그때 언니의 억양은 뭐랄까. 매우 미국스러웠다고나 할까. 애플을 애플이라 하지 않고 애뽀오올이라고, 피플을 피뽀오올, 밀크를 므일크라고 하는 식이었다. 나는 언니의 영어를 들을 때마다 미드에 나오는 전형적인 수다스러운 여성이 생각나곤 했다. 그리고 언니와 바이런이 거실에서 나누는 대화는....


Byron! Where is the ball? (바이르언! 웨얼이즈으 드 버우우우울?)

Byron! Bring the ball! (바이르는! 브링 드 버우우우울!)

Byron! Give me the ball! (바이르언! 김미 드 버우우우울!)

Oh, my gosh! My byron ~ Sooooo lovely, Sooooo cute, umm-ma! 

(오, 마이가쉬! 바이 바이르언 ~써 러부울리, 써 큐우트, 음뫄!)



언니는 한국어를 말할 때는 참 정상적이고 똑 부러져 보이기까지 하는데 영어만 말하기 시작하면 조금은 이상해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구 바이런 신 깐돌이와 저렇게 이십 분 이상을 놀 때면 나는 이상하게 이 곳이 한국 같지가 않았으며 양쪽 귀가 너덜거리는 느낌마저 들었다. 마치 자막 없는 미드를 내내 쳐다보는 느낌이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광경을 말리지 못하고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조금의 우울감이 있어 가족들한테는 꽤나 무심했던 작은언니가 깐돌이한테는 유독 사근한 사랑과 미소를 베풀 줄 알았고, 깐돌이 또한 그런 언니를 깡총깡총 쫓아다닐 정도로 매우 좋아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나 역시도 그 모습이 그냥 좋아 쳐다보고만 있을 때가 많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언니와 깐돌이 사이에는 특별한 교감 같은 게 있었다. 언니는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가만히 보다가도 깐돌이가 오면 그 아이를 껴안고 귓속말을 했다. 나는 언니 쪽을 보지 않는 척하면서 둘이서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은근히 귀를 기울이고는 했는데 언니는 그때만큼은 깐돌이를 깐돌이라고 하지 않고 바이런이라고 부르며 무어라 영어로 길게 속삭이곤 했다. 물론 알아듣지 못했다. 어쨌든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깐돌이의 얼굴도 어느 때보다 편해 보였다는 것, 그게 중요한 거였다.



byron


몇 년 뒤에야 안 사실이지만 깐돌이는 원래 마트에 있는 동물병원에서 몇 개월이나 분양되지 못한, 그러니까 굳이 나쁜 말로 하자면 상품가치가 떨어질 때까지 떨어져 아무도 찾지 않는 강아지였다. 모질이 좋지 않고 못생겼던 그 강아지는 투명한 작은 공간에서 점점 자기 몸집이 커가는 줄도 몰랐고, 날이 갈수록 힘없이 축 늘어져있기만 했다. 그즈음, 우연히 그 생명을 발견한 사람은 언니와 외국인 친구였다. 언니는 그때, 깐돌이의 눈동자가 꽤 외로워 보였다고 했다. 그래서 이상하게 계속 눈길이 갔다고.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깐돌이는 작은언니를 제외한 가족들에게는 늘 조심스러웠다. 조심스럽게 다가와 조심스러운 듯 눈치를 보다 조심스럽게 사람의 품에 기대는. 나는 그런 순간순간이 보일 때마다 깐돌이의 모질이 좋지 않은 갈색 털에 손가락을 넣고 슬슬 쓰다듬으며 말했다. 깐돌아, 너는 너무 똑똑하지만 때로는 조금 어리광을 부릴 필요가 있어. 깐돌이는 대답 대신 고개를 45도로 기울이며 조금 외로워보이는 눈빛을 보내왔다. 영어로 말했어야 했나. 그랬다면 조금 더 전달이 잘 되었을까. 


몇 년 전, 깐돌이는 죽었다. 개의 수명이 보통 십오 년 정도라고 하는데, 그것의 반 정도밖에 살지 못했다. 사실 나는 깐돌이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물을 수가 없다. 물론 살아있다 하더라도 대답은 듣지 못하는 건 매한가지겠지만 그래도 허공에 한번 되뇌어본다.


깐돌아. 너는 작은언니와 처음 만났던 그 순간이 어땠니, 행복했니. 언니가 말도 안 되는 언어의 억양으로 놀아줄 때는 어땠니. 그때도 행복했니. 그럼, 깐돌아, 아니 바이런. 나도 그 순간이 좋단다. 함께 있어줘서 고마웠단다. I love you. Byron.











매거진의 이전글 이사가 이렇게 힘들었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