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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싸롱 거울이 개부장을 비추네

한 팀만 15년 응원한 팬의 이야기,《랩터스》(해준, 가익가)

2012-13시즌을 앞두고 랩터스는 리그 최고 포인트가드 스티브 내쉬 영입을 시도했다. 아무도 랩터스에 관심이 없더라도 내쉬는 캐나다 출신이기에 토론토로 오지 않을까 기대했다. 2년 연속 정규시즌 MVP를 수상에 빛나는 캐나다 최고 농구 선수가 내쉬 아닌가. 그가 랩터스에서 뛴다면 팬들이 다시 결집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내쉬는 토론토 대신 코비 브라이언트가 있는 LA 레이커스로 향했다. 나는 그럴 줄 알았다며 시큰둥했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슈퍼스타를 얻을 기회를 놓쳤다는 생각에 좌절했다. 랩터스는 내쉬 대신 휴스턴 로키츠에서 카일 라우리를 데려왔다. 라우리가 고집이 세다는 이유로 감독과의 마찰을 우려하는 여론도 있었지만, ‘불독’이라는 별명처럼 그가 승부 근성과 투지를 지녔기에 나는 그의 영입을 반겼다. 그리고 리투아니아 출신 센터 요나스 발렌슈나스와 운동능력을 기반으로 점프 슛이 장점인 테렌스 로스, 이렇게 촉망받는 신인 두 명이 랩터스에 합류하면서 선수층이 두꺼워졌다.

   랩터스는 시범경기를 6승 1패로 마치며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개막 첫 20경기에서 단 4승만 거두며 일찍 시즌을 망치는 바람에 일곱 시즌 동안 활약한 칼데론을 시즌 중에 트레이드해야만 했다. 좋아하는 선수가 떠나 아쉬웠지만 멤피스로부터 다재다능한 포워드 루디 게이를 영입했고 주전으로 올라간 라우리가 더마 드로잔과 호흡을 본격적으로 맞추었기에 만족했다. 초반 부진을 만회하지 못하고 랩터스는 34승을 거두는데 그쳤다. 그럼에도 아쉽지 않았다. 드로잔-라우리-게이 삼각편대를 중심으로 시즌 막판 플레이오프까지 노릴 만큼 경기력을 끌어올렸기에 다음 시즌을 기대했다.


2012-13시즌 중반 트레이드로 새크라멘토 킹스에서 영입한 게이(오른쪽)와 라우리(왼쪽). 멤피스 시절 함께 농구했던 두 사람은 토론토에서 재회했지만 그 기간은 그리길지 않았다.


   랩터스가 어둠의 터널에서 벗어나려 할 때 나는 또다시 집에 처박혀 있었다. 퇴사 전 세워놓은 계획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아침부터 카페에라도 갈 때면 바삐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직장인을 마주칠까 두려웠고, 컵라면으로 점심을 때우려고 편의점으로 가는 길에 어머니 나이와 비슷한 어르신들이 바쁘게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면 죄인이 된 느낌이었다. 내 방은 몇 년 전 쥬라기 고시원과 비슷하게 쓰레기 더미가 쌓여갔다.

   나는 뚜렷한 목적 없이 퇴사한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그렇게 원한다던 스포츠 마케팅 직무에서는 내 나이대 신입을 뽑지 않았다. 일을 시작한다고 해도 이전과 비교해 열악한 근무환경에 연봉은 턱없이 부족했고 많은 사람을 상대해야 했다. 무엇보다 시즌에 들어가면 주말은 고사하고 퇴근 후의 삶도 없음을 미처 알지 못했다. 퇴사 전에 알아봤다면 어땠을까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었다. 스포츠 기자로 방향을 바꿔 신문을 읽고 글을 쓰다가 이내 포기했다. ‘언론고시’라 부르는 1년 이상이 필요한 시험을 준비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취업 준비생도 아니고 실직자도 아닌, 서른 살 얼치기가 되어있었다.


   6개월 방황 끝에 이전 업무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다짐을 저버리고 무역회사에 취직했다. 네트워크 시스템으로 결재서류를 처리하고 다른 부서로 가려면 층을 오르내리던 2천 명 직원 규모의 회사에서, 결재서류를 일일이 작성해 직접 도장을 받아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날 때마다 “지나가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하는 오피스텔의 8명 규모 회사로 나는 이직했다. 나는 국산 가전제품용 강판을 중남미에 판매하는 해외 영업을 맡았는데, 스포츠 분야로 이직하지 못한 아쉬움에 수습 기간부터 집중하지 못했다. 고요한 사무실 분위기에 적응하기 어려웠고 점심 식사 시간에 스마트폰을 보며 말없이 음식만 입에 밀어 넣는 과장님 모습에 우울해졌다. 어느 날 아침 출근하니 건너편에 앉은 대리님이 웃으며 말했다.


   “어제 외근 다녀오다가 건널목 반대편에 있는 거 봤어. 기분 좋아 보이던데, 혹시 소개팅했어? 사무실에서 그렇게 환한 표정은 본 적이 없어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얼굴이 밝았던 이유는 좋은 일이 생겼거나 약속이 있어서도 아니었다. 퇴근하는 사실이 그저 기뻐서였다. 출근 후 가볍게 건넨 한 마디였지만, 그동안 얼굴을 구기며 사무실에 앉아있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회사 분위기를 흐리고 민폐를 끼치는 사람은 바로 내가 아닐까 싶었다.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주변 사람을 괴롭히는지도 몰랐다. 퇴근하면 회사 근처 술집으로 동생을 불러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느라 괴롭다며 하소연했고 친구를 만나서는 힘들다고 징징거렸다. 그런 나를 친구는 ‘개부장’이라고 불렀다. 술에 절어 살다 보니 불룩해진 배에 부스스한 머리, 휑한 눈, 결정적으로 주워 입고 온 듯한 구겨진 반팔 셔츠가 나이를 거스르는 부장급 외모를 완성했다. 개부장은 술이 모자랐는지 편의점에서 캔맥주에 과자를 사서 집으로 향했다. 그가 든 검은 봉지에는 밤늦게 자식을 기다리는 어머니에게 드릴 음료수 하나 없었다. 그는 개부장이 아니었다.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이고 불효막심한 괴물이었다.


술을 아무리 마셔도 억눌린 감정은 해소되지 않았다. 뭐라도 적어보자는 마음으로 블로그를 열기로 했고, 그전에 글쓰기 초보 대상 강의를 듣고 공부하기로 했다. 강의 첫날, 강사는 글쓰기 어려움에 공감하면서도 수강생의 마음을 건드려 글을 쓰도록 이끌었다. 하늘로 떠난 아버지에게 용서를 비는 영상을 보고 소감을 적는 시간에 나도 모르게 글이 흘러나왔다. 강의 2시간 내내 몰입하면서 회사생활에서는 한 번도 발산하지 못한 에너지가 솟아났다. 힙합 동아리 공연에서 무대에서 쓰러지기 전까지 랩을 뱉어낸 열정과 양 무릎에 염증을 앓고도 천천히 걸으며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마주한 행복이 떠올랐다. 인터뷰, 요약, 독서 토론, 서평으로 보낸 6주 과정에서 나는 오랜만에 살아있음을 느꼈다.


   강의 마지막 날, 벌써 끝이라니 서운했지만 스스로 돌아볼 기회만으로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하면서 강의실 밖으로 나서려는데

   “잠깐 저랑 이야기하실래요?”

   강사 선생님이 나를 부르는 목소리였다.

   “강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셔서 감사했어요. 과제도 빠짐없이 다 냈고 글 내용도 좋았어요. 최진석 《인간이 그리는 무늬》(소나무, 2013) 독서 토론에서 “공자의 삶에서 노자의 삶으로 살겠다”라고 말한 것 기억나죠? 욕망을 따라 육감적으로 ‘이거다’라고 느낄 때 앞으로는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발언이 감동적이었어요.”

   태어나 처음으로 칭찬을 받은 기분이었다. 회사나 학교 출신과는 상관없이 나라는 한 사람을 온전히 인정하는 말이었다. ‘그 말을 하려고 부른 건가’ 생각한 그때

   “혹시 독서 관련해서 강사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나요? 그동안 지켜봤는데 강사 자질이 보여서요. 회사 다니시는 분에게 조심스럽고, 또 아무에게나 이런 제안은 하지 않는데… 용기 내어 말씀드립니다.”


   칭찬도 과분한데 강사라니. 선생님의 제안에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펑펑 울었다. 며칠 동안 고민을 거듭한 끝에 강사가 되기로 했다. 선생님은 결정을 환영한다며 강사가 되기 위해 읽어야 할 100권의 도서목록을 보내주었다. 업무 관련 메시지로 가득한 이메일 수신함에 처음으로 평생 간직하고픈 편지를 받은 느낌이었다.

   얼마 후 그만두겠다는 내 말에 회사는 발칵 뒤집혔다. 중남미 시장 개척을 목적으로 경력직으로 뽑아 천천히 적응하도록 배려했고 운전 연수까지 시켜주었는데 수습이 끝난 지 두 달이 지나기도 전에 퇴직한다니. 내가 사장이라도 기가 막혔을 것이다. 나는 얼른 책을 많이 읽어서 강사가 되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기에 회사에서 빨리 퇴사 처리를 해주기만을 바랐다. 


룸싸롱 화장실 벽면 전체를 채운 금색 프레임 유럽풍 네모 거울을 나는 바라보았다. 술을 마셨음에도 거울 속 눈동자는 살아있었고 나는 거울 속 나와 눈을 한참 맞추었다.


   다음 날 갑자기 차장님이 회식하자고 했다. 평소처럼 순댓국집이나 고깃집이 아닌 룸싸롱으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그때 알았다. 이날 회식이 사장 지시로 나를 회유하려는 자리였음을. 무뚝뚝하게 일에만 집중하던 차장님은 그날따라 부드러운 말로 나를 대했다. 차장님은 나에게 계속 술을 따라주면서 그동안 챙겨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남아달라고 했다. 그 회유에 내가 흔들리지도 술에 취하지도 않자 차장님은 점점 거친 말을 쏟아냈다. 왜 그만두는지 자초지종을 물어보기는커녕 이대로 퇴사하면 부하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한 자신의 체면이 뭐가 되겠냐며 나를 꾸짖었다. 나는 화장실에 간다며 자리를 비웠다.

   룸싸롱 화장실에는 금색 프레임으로 둘러싸인 유럽풍 네모 거울이 벽면 전체를 채우고 있었다. 나는 그 거울을 응시했다. 그렇게 술을 마셨음에도 거울 속 눈동자는 살아있었다. 거울 속 나와 눈을 한참 맞추다가 말했다.

   “스스로 내린 결정이니 책임을 지자. 앞으로 힘든 순간이 많을 것이다. 그때마다 지금 거울에 비친 눈빛을 잊지 말자.”


   거울에 비친 나와 그처럼 오랫동안 눈을 맞추어 본 적은 없었다. 그때 상담 선생님과 처음 눈을 맞추던 순간이 떠올랐다. 평생 지독하게 미워하던 나 자신을 이제는 이해하고 싶었다.

   룸싸롱에서 나온 후 차장님은 한잔 더 하자고 제안했지만 무의미하다는 생각에 먼저 집에 가겠다고 했다.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차장님은 내 멱살을 잡고 벽으로 밀어붙이고는 때리려고까지 했다. 예전 같으면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을 테지만, 거울에 눈을 맞춘 직후였는지 거칠게 반항했다. 주변 사람들이 말린 끝에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갔다.

   새벽 3시가 넘도록 어머니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술에 취했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어머니를 똑바로 바라보고 말했다.

   “강사가 되겠습니다. 허락해주세요.”

   “그렇게 해라. 그 대신 다시는 그만두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어머니는 입을 간신히 떨어뜨리며 말했다. 그렇게 나는 두 번째 퇴사를 결정했다. 그날따라 10월 가을 하늘 보름달이 세상을 훤히 비추고 있었다. 룸싸롱에서 개부장을 비춘 것이 거울이 아니라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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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터스》 입고처


<서울·경기>

책방비엥 (은평구) | 온라인 오프라인

다시서점 (강서구) | 온라인 오프라인

올오어낫싱 (금천구) | 온라인 오프라인

프루스트의 서재 (성동구) | 온라인 오프라인

무엇보다, 책방 (송파구) | 온라인 오프라인

커넥티드 북스토어 (종로구) | 온라인 오프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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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덱스 (광진구) | 오프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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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일공칠 (동대문구) | 오프라인

서로의공간 (경기 구리시) | 오프라인


<부산>

*나락서점 (부산 남구) | 온라인 오프라인

*주책공사 (부산 중구) | 오프라인

  

<전북>

에이커북스토어 (전주 완산구) | 온라인 오프라인

조용한흥분색 (군산 미원동) | 오프라인

   

<전남>

책방심다 (순천 조곡동)  | 오프라인


<대구·경북>

*고스트북스 (대구 중구) | 온라인 오프라인

*책봄 (구미 원평동) | 온라인 오프라인


<대전>

*해윰책방 (대전 서구) | 오프라인


<강원>

*깨북 (강릉 교동) | 오프라인

*느림의 미학 (원주 단구동) | 오프라인 (12월 15일부터 구매가능)


<제주>

*어떤바람 (서귀포 안덕 사계리) | 오프라인


<이동서점>

*북다마스 | 온라인 오프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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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랩터스> 중 '형! 랩터스가 결국 해냈어' 부분을 저자 낭독 영상으로 제작하여 유튜브에 올렸습니다. 해준 목소리로 생생하게 듣는 랩터스 우승의 순간! 아래 링크로 들어가 확인해보세요.


[낭독] 저자 해준 목소리로 듣는 《랩터스》- '형! 랩터스가 결국 해냈어'

https://youtu.be/BjBx-gl2qZQ


《랩터스》로고 (왼쪽) 및 영어이름모음 (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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