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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랩터스가 결국 해냈어

한 팀만 15년 응원한 팬의 이야기,《랩터스》(해준, 가익가)

114 대 110, 넉 점 차가 되었습니다. 커리, 멀리서 공을 던져봅니다. 캐나다! NBA 타이틀은 여러분 것입니다! 2019년 NBA 챔피언, 토론토 랩터스입니다!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현실이 되었습니다!


   캐스터 맷 데블린이 우승을 외치는 순간 나는 대학원 강의를 듣고 있었다. 강의실에 앉아만 있을 뿐, NBA 파이널 6차전이 벌어지는 오라클 아레나에 온통 신경이 쏠려있었다. 스마트폰으로 실시간으로 경기 상황을 확인하면서도 안절부절못했다. 그러다 갑자기 인터넷 창을 새로 고쳐도 점수가 바뀌지 않았다.


   4TH  9.6   TOR  111   GS  110


   9.6초 남은 4쿼터, 랩터스가 한 점 앞선 상태였다. 이기고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어느 팀이 마지막 공격권을 가질지 궁금했다. ‘워리어스 공격이면 어떡하지. 5차전 막판에 역전을 당했는데, 또다시 역전 슛을 맞고 7차전으로 간다면…’ 그동안 랩터스가 승리 직전에 당한 역전패가 떠올랐다. 랩터스를 응원하는 15년 동안 떠나지 않던 불안과 의심은 우승 트로피를 앞에 두고도 여전히 고개를 들고 있었다.

   몇 분이나 흘렀을까. 드디어 점수가 바뀌었다.


   4TH  0.0   TOR  114   GS  110


랩터스 우승을 대서특필한 '토론토 스타' 2019년 6월 14일 1면


   우승이다! 강의실을 박차고 나가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대학원 동료와 교수님이 내가 랩터스 팬인지, 지금이 그토록 기다려 온 순간인지 알 리 없었다.

   강의가 끝나자마자 나는 위층 빈 강의실로 뛰어 들어가 흐느꼈다. 그리고는 쌍둥이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 랩터스가 결국 해냈어. 드디어 해냈어… 축하해, 우승이야…”

   동생도 울먹이고 있었다. 랩터스 팬은 아니지만, 나를 대신해 응원해주었다.   

   “손에 땀을 쥐는 승부였어. 그래도 랩터스가 이길 거라고 믿었어. 수비가 끈질겼거든. 형 축하해 정말. 랩터스를 보고 많은 걸 느낀다. 우리도 노력하면 원하는 걸 이룰 수 있을 거야.”

   전화를 끊고 한참을 더 울고는 화장실에서 찬물로 부은 눈을 식혔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 강의실로 들어갔다. 이날이 학기 마지막 강의였기에 우리는 책거리로 교수님 몰래 시켜놓은 피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불쑥 말했다.

   “오늘 피자는 제가 살게요. 조금 전 제가 응원하는 농구팀 토론토 랩터스가 우승했거든요!”

   다들 어리둥절하다가 이내 기뻐했다. 랩터스가 우승해서가 아니라 내가 피자를 샀기 때문이다.


   토론토뿐 아니라 3천 7백만 캐나다 전역이 광란의 밤에 빠져든 시간, 정오를 막 지난 서울의 한 대학원 강의실에서 나는 피자를 먹으며 학기를 마무리했다. 랩터스가 어떤 팀이고 왜 응원하는지 물어보는 사람은 없었다. 나도 우승의 감격을 드러내지 않다가 학교에서 빠져나와서야 억누른 감정을 풀어냈다. 기쁘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고 무엇보다도 안도감이 컸다. 강의를 빠지고 경기를 본다면 그 일탈이 랩터스에 저주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일상을 지켰더니 좋은 결과가 나왔다.

   우승 기념 파티를 하러 동생이 자취하는 옥탑방으로 향했다. 지하철에서 경기 영상을 보면서 사람들이 쳐다보든 말든 꺼이꺼이 울었다. 매번 짜장면에 탕수육이던 우리는 양장피를 시켰다. 연신 소주를 들이켜도 취하지 않았다. 랩터스 이야기를 몇 시간 해도 지치지 않는 이 날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다.


랩터스 우승 기념 파티 때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가 뉴스를 보고 있었다. 몇 분 뒤 ‘73년 만에… 토론토, 캐나다 팀 NBA 우승 해냈다’라는 제목의 뉴스*가 나왔다. 하지만 어머니는 별 반응이 없었다.

   “내가 응원하는 팀 알지? 공룡 모양 모자 쓰고 다니잖아. 오늘 그 팀이 우승했어.”

   “아, 맞다. 캐나다 그 팀 맞지? 축하한다.”

   “응. 정말 어렵게 우승했어. 마지막까지 누가 이길…”

   “그런데 밥은 먹었니?”


   어머니에게 그리고 많은 이에게 랩터스의 우승은 그저 하나의 스포츠 뉴스에 불과했다. 나도 강의실에서 고요하게 우승을 만끽하지 않았는가. 술기운 때문인지 서울에서 유일하게 격한 하루를 보내서인지 밤이 깊어가도 잠이 오지 않았다. 일어나지 않을 일이 일어났고 상상하지 못한 순간이 실제로 다가오니 조롱과 비아냥, 창피함으로 얼룩진 랩터스의 지난 기억이 열등감과 질투, 자책으로 점철된 내 삶의 흔적과 함께 몰려왔다. 한사코 거부하던 과거의 나와 과거의 랩터스가 말을 걸어온 것이다. 랩터스 우승을 목격한 2019년 6월 14일, 서른일곱 살 나는 캐나다에서 랩터스를 처음 만난 2004년 스물두 살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 2019년 6월 14일 JTBC ‘뉴스룸’에서 위와 같은 제목으로 보도했다.




※ 위의 글은 저자 낭독 영상으로 제작하여 유튜브에 올렸습니다. (서울시캠퍼스타운 사업 지원) 해준 목소리로 생생하게 듣는 랩터스 우승의 순간! 아래 링크로 들어가 확인해보세요.


[낭독] 저자 해준 목소리로 듣는《랩터스》- '형! 랩터스가 결국 해냈어'

https://youtu.be/BjBx-gl2qZ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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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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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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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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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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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

*고스트북스 (대구 중구) | 온라인 오프라인

*책봄 (구미 원평동) | 온라인 오프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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