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삶 (부제; 강신주와 나비효과)

시험기간엔 공부 빼고 모든 것이 다 재미있는 법이다

by 떠돌이

내가 그렇다.

그렇게 봐야지 했으나 안 봐지던 재미없는 책들이 읽힐 지경으로 공부하기가 싫다.

도서관에서 졸아본 게 언젠가 싶으나 책만 펴면 잠이 온다. 몸은 주인이 하기 싫어하는걸 귀신같이 알아채고 잠으로의 도피라는 방어기제를 꺼내 든다. 몸과 마음의 반응은 이래서 놀랍도록 무섭고, 예민하다. 요즘은 몸이 원하는 대로 늘어지도록 자고 또 먹고 싶을 때 먹는다. 내 인생에 이런 평온한 날들이 언제쯤 다시 올까 싶기도 한 까닭이다.


언젠가 심리상담을 직업으로 하시는 선생님과 이런저런 사담을 나누다 제가 요즘 눈물이 많아졌어요.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자기 요즘 외로운 것 같아.


처음엔 내담자로 시작된 관계였으나 어쩌다 직업윤리를 위반하시게 되어 지금은 지인이 된 선생님께서, 여러 차례 상담을 통해 나를 어느 정도 잘 아시는 선생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뭔가 멍 했다. 아, 나 외롭구나. 그런데 숨기고 참고 살고 있었구나. 그런데 외로움은 인간의 숙명이 아니던가?? 타인으로 채우고자 하면 더 채워지지 않는 바로 그런 것 말이다.



인정한다. 외롭다.


얼마 전 다녀온 여행은 하나도 재밌지가 않았다. 아니 재미있긴 했는데 불편한 상황이 계속 연출됐다.

나는 혼자 다니는 것에 익숙한 여행자이고, 동행은 나와 아주 가까운 사람임에도 낯선 환경에서 자유여행이 주는 책임감과 부담감이 서로를 불편하고 멀어지게 했으며 나는 이렇게 또 한 사람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친구도 얼마 없는 나에래되고 편안한 사람이라 마음이 두렵고 초조하다. 그러나, 시간과 운명은 나를 가야 하는 곳으로 데려다 놓을 것이라 믿으며 그저 이 시간을 견디고 있다.



내가 입덕 한 강신주. 감히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었던 강신주 박사님. 이 사람의 뭘 사랑하느냐고? 생각 말투 행동 거칠어 보이는 피부 등등.. 그냥 모든 것이 다 사랑스러웠다. 그 사랑엔 존경과 공감도 큰 몫을 했을 것이다. 그의 강의를 쫓아다니고, 심지어 강의 끝나고 차도 한잔 마실 기회가 있었고, 어떤 때는 짧게라도 가벼운 이야기나마 나눌 기회가 운 좋게 있었고, 나는 절절한 마음을 담아 고백의 메일까지 보냈는데 그는 나를 전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리하여 나는 나의 웃픈 짝사랑을 접기로 했다..ㅠㅠ

늘 강연 끝나고 초상권없어요! 막 찍고 쓰셔도 됩니다 하셔서 올려봄.


이 날은 양산에서 낮 강의가 있었고 저녁에 울산 강의가 있었다.

낮 강의를 듣고 미친 듯이 차를 운전해 울산 강의까지 들었는데, 울산에서 박사님을 본 순간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제 그만 쫓아다녀도 되겠다.

최선을 다하지 않아 후회는 남는데 그냥, 이제 그만해도 되겠다 라는 생각. 낮 강의 사진을 찍으면서 귓속말로 "박사님 메일 주소 알려주세요" 하니까 자기 메일 주소는 극비라고 하셨는데.. 달 전 나한테 본인이 이메일 주소를 가르쳐준걸 전혀 기억 못 하는 것이었다. 상대에게 나의 존재감이 전혀 없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의 그 참담함. 내가 메일 주소를 물어본 이유는 하도 메일을 확인 안 하셔서 혹시 해당 메일 주소를 안 쓰시는 건가 해서 확인차 여쭤본 건데.


한참 쓰고 있는 책 마무리하느라 예민하실 터, 사실 나는 내 주변의 모든 정보망을 가동하여 작업실을 알아내 근처에서 기다린 후 정말 박사님의 팬인데, 차라도 한 잔 마셔요 해볼까 했으나 피곤한 사람을 더 피곤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혼자 온갖 상상과 가능성을 점쳐보다 혼자 마음앓이를 하고 있다. 아, 어떻게든 뭔가 마무리를 하고 싶다. 최선을 다하면 상대에게 폐가 될 것 같은 아이러니.




주변에 연애를 하지 않는 시간은 인생 낭비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의 말에도 동감하지만, 나는 준비되지 않은 불완전한 인간들의 연애가 얼마나 상대그리고 자신을 상처 내는지 안다. 그래서 오랫동안 혼자였었다. 그러나 너무 괜찮은 사람을 만났을 때는 앞뒤 안 가려지는 법. 나는 취미 모임에서 몇 번 본 연하남에게 직진했고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키가 크고 내가 좋아하는 선한 눈을 가진 사람이었다. 문제는 우리의 생각이 너무너무 다르다는 것. 우리의 의사소통 방식은 너무도 달랐고, 서로 원하는 것이 달랐고, 생각하는 것도 달랐다. 나의 섭섭하다는 말과 싸늘한 행동을 지켜보던 그는 아.. 아닌 것 같아 안될 것 같아를 스무 번쯤 혼자 중얼거리다 미안, 갈게 하더니 그냥 가버렸다. 믿기지 않지만 그게 마지막이었고, 그렇게 나는 뻥 차였다. 엄마...ㅜㅜ

예상치 못한 일이라 정신적 데미지는 컸으나 그래도 배운 것이 있다면 역시 생각과 가치관이 잘 맞는 사람과 연애하는 것이 좋다는 것과 상대에게 난데없는 이별 선언은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는 것이었다.





얼마 전 섬 여행을 하는 동안 이상하게 굉장히 요란한 꿈을 꾸었다. 박보검이 나왔고, 내가 유일하게 활동하는 모임의 모임장이 나왔고 색감이 다양해서 미묘한 꿈이었는데 그 뒤로 괜히 모임장 얼굴 보기가 껄끄러웠다.(순전히 나 혼자!!) 감정의 실체를 확인해보고자 모임에 몇 번 나갔더랬다. 꿈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꺼냈고 다음 모임에선 뒤풀이 겸 술도 진탕 마셨다. 그리고 말했다. 그 꿈 이후로 너무나 신경 쓰인다고. 연애 지상주의자인 그는 다가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나에게 만나보자는 제안을 했고, 당황한 나는 생각을 좀 해보자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이틀 후쯤 만날 약속을 잡는데 핀트가 좀 안 맞는 거다. 카톡을 분명 읽었는데 답은 삼십 분이 지나서 온다거나.. 그의 행동에서 배려를 가장한 회피의 기운이 스멀스멀 든다거나. 왠지, 그가 고백했던 행동을 후회한다는 느낌이 퐉 왔다. 짜증과 외로움이 뒤섞여 혼자인 시간이 견디기 어려웠다. 몸과 마음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나는 얼마 전 발견한 집 근처의 국숫집으로 향했다.

생각해보니 여긴 술도 팔았던 기억이 났던 것이다.



국수가 나오기도 전에 소주를 까는 나를 보더니 사장님은 황급히 깍두기와 단무지를 내오셨다. 오랜 시간 알바로 연명해온 탓에 영업장의 마감시간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는 소주 한잔 국수 한 젓가락을 하며 마감시간을 묻다가 사장님과 말을 트고 동석하게 되었고 나중엔 술잔도 같이 기울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됐다. 사장님은 나를 처음 보고 돈 많은 백수인 줄 알았다고 하셨다. 나는 백수는 맞고 돈은 별로 없다고 정정해드렸다.


암튼 국수를 먹고 술은 꽤나 마셨던 것 같다. (가게를 나온 과정이 잘 기억나지 않는데 계산 한걸 보면 진상은 안 부리고 나왔겠지.. 부끄럽지만 다음에 국수 먹으러 가서 사장님께 여쭤봐야겠다) 그리고 추적추적 집으로 걸어왔다. 춥고 외로워서 괜히 서러웠는데 술이 한잔 들어가서 그런지 기분은 나름 센티한 듯 괜찮았다.


내가 사는 지역은 주택 밀집지역인데 어두운 곳이 많은 것이 흠이라, 민원을 넣어야 하나 생각하는데 갑자기 몸이 휘청했다. 내가 뭘 밟았나? 할 틈도 없이 나는 누가 나를 뒤에서 밀었다는 걸 깨달았다. 놀람에 취기도 더해 몸이 덜덜 떨렸고 일어나려 해도 땅이 빙글빙글 돌았다. 누군가에게 공격받았다는 것을 인지한 순간 숨는다고 숨은 것이 넘어진 곳 옆자리 구석이었다. (술 마시면 머리가 안 돌아가나 보다) 온갖 생각이 스쳤다. 집으로 가면 내가 사는 곳을 들킨다. 어디로 도망가야 하나? 이놈은 어딨지? 주변에 CCTV는? 아무렇지 않은 척 벌떡 일어나 조금 더 걸었다. 아까처럼 다시 누군가가 날 밀었고 나는 넘어졌으며 일어나다가 왼쪽 얼굴을 바닥에 조금 갈았다.



하필이면 친구도 없고 애인도 없는, 암튼 가까운 관계라곤 없는 인간이라 위급한 상황에 생각난 게 그 연애지상주의자였다. 보이스톡을 엄청나게 날리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이 사람이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없을뿐더러 경찰에 도움을 청하는 게 맞았다. 112에 신고를 하고 겨우겨우 길 이름을 말했고 경찰이 출동했고 신고를 받았으니 나도 무조건 동행해야 한다고 해서 경찰차 뒷자리에 탔는데 이상하게 공권력의 위압감 속에서도 안심이 되었다. 지구대인지 파출소인지 집 근처에 그런 곳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건물에 들어서고 나서야 미친 듯이 울음이 터져 나왔다. 마스카라가 온 얼굴에 번지도록 끅끅대며 눈물을 흘렸고 경찰 아저씨 2명은 무성의하게 늘 보는 부랑자나 취객을 상대하듯 조서를 썼다. 이거 맞죠? 아가씨? 라며 확인을 재차 강요하며. 나는 사실하나와 맞춤법을 정정했고 수정된 조서를 다시 읽었다. (오늘 경찰청 고객만족모니터센터에서 카톡이 왔는데 이거 뭐 10점 만점에 10 점 주면 되나?)


무튼 절차들이 끝나고 나이 많은 경위님이 집까지 데려다 드릴까요? 하는데 번뜩 든 생각이, 데려다준다는 것도 무서운 거다. 이 사람들도 그럼 내 집을 알게 되잖아. 아니요 괜찮아요 했다가 걸어가면 그놈을 또 만날 수도 있는데 라는 생각을 했다가 머릿속이 엉망이었다. 나는 다시 자존심이고 뭐고 다 버리고 얼굴은 엉망인 채로 아.. 저.. 집에 데려다주세요 했는데 여자 경찰분이 동행하여 안심도가 올라갔고 그 배려가 고마웠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자유인이 되어 옷을 여기저기 다 널부러 놓고, 누에고치처럼 포근한 이불속에 들어가 머리까지 이불을 덮어쓴 채 아주아주 깊은 잠 속으로 빠졌다.



아침에 연애지상주남에게 왜 이렇게 새벽에 전화를 많이 했냐는 카톡이 와있었다. 자세한 건 생략하고 일이 좀 있었고, 경찰을 불러 해결했다고 말해주었다. 무려 경찰이 등장하는데, 걱정보다 성의 없음이 강력하게 느껴지는 답변을 보며 이 관계도 망했다는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




불행하다, 불행하지 않다

불행하다, 불행하지 않다


내가 원하여 나의 의지로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나는 삶을 받았고,

이렇게 타의로 받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정말 1도 모르겠다.


이렇게 우습고 별 볼일 없고, 두 땅에 발 붙이지 않고 둥둥 떠다니듯 하는 것 같은 하루하루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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