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결혼

불행 속으로 걸어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할 수 있는 게 없다.

by 떠돌이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과 한다. 혹은 여러 조건이 맞아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 사람과 혹은 친구 같은 오랜 우정을 느낀 사람과 혹은 정말 좋은 동반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과. 여러 가지 정의가 있을 수 있겠다. 확실한 것은, 그다지 미칠 것 같은 애정도, 확신도 없는 결혼은 안 하는 게 맞다는 것이다.


그녀의 남자 친구는 정말 별로였다.

그녀의 친구들과 만난 자리에서 그녀의 외모로 농담을 하거나, 보통 없는 친절도 만들어 내는 자리임에도 그녀를 하대하는 것은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를 눈치 보게 만들었다. 그녀는 친구들과 남자, 양쪽의 눈치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남자는 분위기 파악을 전혀 할 줄 몰랐고, 자신이 그녀를 '만나준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해댔다. 그 자리를 파한 후, 그녀의 친구들은 저 사람 흠.. 좀.. 별로다..(그녀가 없는 자리에선 별 미친놈 같으니)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녀에겐 첫 연애였다. 진지하게 누굴 오래 만난 적이 처음이었고, 자신이 좋아하는 상대와 첫 연애를 하는 기쁨은 너무나 컸으리라. 그래서인지 그녀는 앞만 보는 경주마처럼 자꾸만 자신의 눈을 가렸다.


그녀의 한 지인은 그녀에게 조곤조곤 말했다.

너를 눈치 보게 하는 사람은 결코 좋은 사람이 아니고, 네 지인들 앞에서 너를 욕보이는 사람은 더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너를 가장 우선에 두고 잘 판단하길 바란다고.


지인의 말을 듣던 그녀는 글썽이며 말했다. 사실은 이런 일도 있었노라고.

같이 연극을 보러 갔는데, 연극 자체를 잘 이해를 못하고 맞춤법을 잘 몰라. 어린아이 같아.

자기가 정해준 통금시간에 집에 들어가 있지 않으면 전화로 화를 심하게 내서 모든 약속을 다 허락받아야 해.

조금이라도 속상하면 화를 내서 풀어주려고 하면 조건을 거는데 그게 좀.. "콘돔 안 쓰고 한번 하게 해줘" 같은 조건을 걸어서 들어줘야 해.


이까지 듣던 지인은 꼭지가 돌았다. 그리고 말했다.


"당장 헤어져!!!!!!!!! 뭐 그런 썅놈의 새끼가............ xxxxxxxxxxx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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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하고, 그것이 왜 나쁜 것인지 조곤조곤 힘겹게 설명하던 지인은 그런 설명을 해야 한다는 것조차 우습고 피곤했다. 이런 걸 모를 정도로 얘가 모자라진 않은데, 그 돼먹지 못한 남자가 정말 좋긴 좋은가 보구나..


"친구도 함께 살면 싸우기 마련인데, 너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그저 참으며 만나기엔 한계가 있어.

너를 구속하고자 한다는 것은 평등한 관계로 생각지 않는다는 건데, 네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거야. 기본적인 공감대는 물론 대화가 통하지 않으니 갈수록 답답하겠지. 너의 연애를 말리진 않을게. 마음은 말리고 싶지만 그건 네 판단이 섰을 때 가능하지. 그러나 좋은 관계가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하게 알아두었으면 좋겠다."


그녀는 지인에게 감사를 표하고, 종종 자신의 잘못된 행동이나 관계에 대해 말해달라고 했다. 이건 아니다 싶을 때마다 이야기해 달라고. (늘 아니다 싶었고 헤어지는 게 답이다! 싶었지만) 다행히 그 정도의 분별력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과의 만남을 불허한 남자 친구에게 그녀는 지인과 만났다는 이유로 심한 질책을 들었고 그 길로 택시를 타고 혼자 사는 집으로 귀가 후 컨펌을 받아야 했다. 적당한 화남+큰 실망을 한 지인과 멀어졌고 한동안 연락을 끊었다. 지인과 다시 연락하여 지인의 맘을 풀어주는 것보다 남자 친구를 화나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우선이었다. 일단 그가 좋았으니까.





일 년 정도 지난 어느 날, 술을 한잔 한 지인이 술의 힘을 빌어 연락을 해 왔다. 그녀는 지인에게 담담히 말했다.


나 곧 결혼 해.


술이 확 깬 지인이 자초지종을 물었고,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상대는 그 남자였고 그 길지도 않은 시간 동안, 두 번의 임신과 인공유산을 거쳐, 세 번째 임신 후 날을 잡았는데 유산 해 버렸다고.

행복하냐 찬찬히 묻는 지인에게 그녀의 대답이 석연치 않았다. 그 사람은 여전히 좋은데 사실 그렇게 사랑하는지는 모르겠고 그 집에 문제가 있는 걸 알게 됐다고. 그런데 결혼은 내 결심이니 괜찮다고. 그 사람을 다루는 요령도 이제 조금 생겼다고.


그래.. 말을 더 잇지 못하고 지인은 전화를 끊고 엉엉 울었다.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다. 저딴 상황을 만든 남자의 머리통을 깨 부수고 싶을 정도로 남자한테 화가 나다가, 거기 휘둘린 바보 같은 그녀에게도 화가 나다가 분노가 미친 듯이 치솟았다가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가족보다 가까운 사이였다. 서로를 이유 없이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허물없는 사이였다. 서로에게 몇 안 되는 중요한 존재였다. 꼭 이런 상황일 땐 적어도 애정을 퍼부어 주는 그녀보다 애정과 지지를 받아온 지인의 가슴이 더 쓰렸다. 온갖 후회를 한들 뭘 할 수 있을까. 둘의 연락 없었던 1년 동안 그녀는 여러 번의 일을 겪고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것 같았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죽을 걸 알면서도 불로 뛰어드는 불나방 같았다.

마음 약한 그녀가 결혼이 자신의 선택이 아님에도 자신을 세뇌하고 있는 건 아닐까 걱정되었고 열렬히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과 저런 일을 겪으며 의지가 되었단 이유로(겪게 한 당사자와), 인생의 중대사인 결혼을 결심한 그녀가 가엾다 못해 분노가 일었다.

자신에게 둘의 관계에 대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말고, 잘못된 것이 보이면 자꾸 새기고 되뇌어 달라던 그녀였는데, 자신의 부재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가 싶어 죄책감도 들었다. 그녀의 미래가 눈에 보이는 듯했는데 자꾸 상투적인, 여러 사람이 겪는, 그래서 어쩌면 경우의 수가 높은 그런 경우만, 암울한 미래만 떠올랐다.


얼마 안가 이혼하겠지,

아냐 인내심으로 잘 참고 살 거야..

아냐 인내심이 많으니 참다가 화병에 걸릴까?

자살하는 건 아닐까?

바로 아이를 낳고 더 우울해지는 건 아닐까?


긍정적인 경우의 수는 전무한 가운데, 온갖 생각이 머리를 휘저어 미칠 것 같았다.


다음 날, 그래 너의 결정이니 무조건 지지해 주리라. 축하 해 주리라. 결심하고 다시 통화를 하는데 정작 그녀의 목소리가 낮고 떨렸다. 계속 자신의 결심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자신이 그 남자 옆에 있어주어야 할 것 같다고.


"미친 거 아냐!! 있어주긴 뭘 있어줘! 너 그 사람 보모 하려고 결혼해?"

결국 소리를 쳤고, 화가 나다가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공교롭게도 퇴사 마지막 날, 회사 복도에서 미친 듯이 눈물이 흘렀다. 화장실로 급히 걸음을 옮겨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누가 보면 회사 잘려서 우나 싶어 오해할까 싶어 억지로 참아봐도 참아지지 않았다. 할 수 있다면 미친 듯이 소리를 치고 싶었다.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어떨 땐 내 목숨보다 귀하다고 여겼던 그녀,

그렇게 내 후배는 곧 결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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