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게 좋은 거'라는 혈육의 말 속에서.
http://www.vop.co.kr/A00001322561.html
이 글을 보며 심금을 울린 문장이 있었다. 아니, 누군가의 머릿속에 꼭 넣어주고 싶은 문장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내가 며칠 전 당한 상황 때문이다. 남자도 아닌, 바로 내 친언니 이야기다.
점잖은 사람들은 혐오와 싸움은 좋지 않다며 일방적으로 얻어맞은 사람들에게 용서와 화해를 강요하고 있다.
쓰면서도 분노가 차오르는 이 문장을 언니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자신이 나에게 강요하는 행동이라곤 더더욱 생각지 못할 것이다. 누가 봐도 착한 언니는 문장의 뜻은 이해할지 모르겠으나 우리 상황에 대입할 줄은 모를 것이다. "그건 모르는 것과 같다."
대한민국에서 자본주의를 뼛속까지 교육받은 나약한 한 개인이, 어떤 계기가 있지 않고서야 자신이 사회적 약자이며 (아닌 사람 제외) 자본주의에 어떤 영향을 받고 사는지 잘 모를 것이며, 사유라는 것에 대해선 느낌조차 없을 것이다. 언니 역시 그러한 아주 평범한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가부장제에 물들다 못해 몸소 실천까지 하시는, 그것을 벗어나고자 하는 나를 유별나게 보는 사람.
사건의 발단에 대해 아주 단순하게 말하자면, 아빠는 아주 가부장적인 사람이고 여러 글에서 밝혔듯 나는 가부장이 폭력을 바탕으로 자라나는 아주 나쁜 문화라고 생각한다. 가부장의 본래 취지나 뜻도 맘에 들지 않을뿐더러 내가 경험한 대부분의 가부장이 그러했다. 아빠는 젊은 시절 성실한 직장인이었으나 엄마와 늘 불화했고 부부싸움엔 폭력이 동반되었으며 가족들을 때리는 사람이었다. 나는 공포에 떠는 아이였다.
그 후폭풍은 내가 어른이 되고 나서, 갑작스럽게 내 머릿속을 흔들어 댔는데 예를 들면 이런 식이 었다. 머리로는 효도하고 좋은 자식이 되어야 한다는 주입식 교육 속에서 그것이 가끔 흔들릴 때가 오는 것이다. 네팔의 에베레스트 칸첸중가 산맥 한가운데서, 혹은 방콕의 짜오프라야 강변에서 맥주 한잔을 하며 아빠에게 엽서를 쓰다가 갑자기 쓴 물처럼 나쁜 감정이 기억으로 올라오고, 그 날 하루가 망가진다.
엄마가 떠난 후 남은 가족이나마, 그중 아빠와 진심으로 잘 지내고 싶었다. 그러나 이미 나는 알아버렸다. 사과 없이, 과거에 대한 해소 없이 그건 굉장히 어렵거나 불가능할 것이라는 걸. 그리하여 "진심 어린 사과"를 받고 싶었던 나는 아빠의 폭력이 내게 상처가 됐다는 엽서를 보낸 적이 있다. 그 엽서를 쓰는 손이 떨렸던 이유는 아빠가 이걸 보면 화가 날 것 같고, 나를 다시 때릴 것 만 같았던 공포 때문이었다. 의외로 계속 바깥으로 도는 자식이라 선선한 답장이 왔는데 자신의 폭력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아빠는 그 가부장적인 모습을 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새엄마에게 상처 주고 있었고, 그나마 멀리 사는 자식이 내가 보기에도 불편한 행동들을 지속했다. 그리고 작년 추석, 나는 아빠의 그런 모습에 대해 말했다.
문제는 두 가지였다.
아빠는 자신의 잘못에 대해 직면할 만큼 용기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
아빠는 주변의 모든 이들이 눈치를 보는 만드는 사람이라는 것.
내가 문제점을 말하기 시작하자 슬슬 화를 내기 시작한 아빠에게, 자신의 잘못은 전혀 모르며 나를 별종 취급하는 아빠에게 난 "언니도 말 좀 해봐! 언니도 어릴 때 맞았잖아"라는 극단적인 말을 했는데 언니는 그런 내게 화를 냈더랬다. 최소 편들어 주진 않아도 그래, 아빠 그랬었어..라고는 할 줄 알았는데.
가족 모두에게 공격당한 난 이 상황이 너무나 억울해 눈물만 났다.
짐을 싸들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 후 더 이상의 연락도, 명절에 집에 가는 일도 모두 그만두었다. 아빠는 구슬리지 않으면 대화가 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언니는 "좋게 말하면 되잖아" 라는데 즉, 아빠가 화나지 않도록 둘둘 에둘러 핵심은 남겨둔 체 그저 그런 표면적인 이야기만 하다가 겨우겨우 사과를 받아내는 걸 하라는 건데 나는 그게 싫었다. 그냥 깔끔하게, 내가 이러했고 아빠의 말을 기다렸다가 듣고 서로의 오해를 풀고 아빠의 폭력은 사과받는 (이야기 중 내가 사과할 일이 나오더라도 서로 사과를 하면 되는 거고) 그런 그림을 나 혼자 그렸던 거다.
이 사건 이후, 나는 사태 해결을 위해 작년 말 아빠의 회사 메일로 나의 솔직한 심정들을 써서 보냈는데 아빠는 그 메일을 확인하지 않고 (부러 안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안 읽음' 상태로 남겨둔 체 퇴직하였고, 수신 여부를 몰랐던 나는 한 두 달 후였나 그 긴 글들을 장문의 메시지로 끊어 보냈다. 아마 길어서 몇십 통쯤 됐던 것 같다.
문제는 며칠 전이었다.
언니랑 당일치기 여행 전날 이야기를 하다가, 갑작스럽게 당일 해고 통보를 받은 내게 자꾸 면세점 시계 봐달라 뭐 봐달라기에 언짢음을 표현했는데 외려 언니가 이제까지 참아왔다며 나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전혀 말이 안 통한다는 것. 무슨 말만 하면
"넌 네가 논리적인 줄 알지?"부터 시작해, 그래 언니 이야기를 해보라고 하면
"넌 어차피 무시할 거잖아"부터 없던 말까지 지어내는, 말 그대로 대화가 안 되는 상황.
일단 다음날 여행은 출발하기 위해 계속 카톡을 했는데 "체스 룰을 모르는 사람과 체스를 두는" 기분이었다.
요지는 이랬다
- 넌 너와 다른 말을 하면 화를 낸다
- 넌 무조건 단정 짓고, 자기만 논리적인 줄 안다.
- 넌 네 생각이 보편적이라고 생각한다. 절대 아니다.
- 보통 생각이란 내가 말하는 이런 것이다. --> 그건 언니 생각 아니냐고 물어보니 화를 냈다
- 넌 니 맘대로 산다 --> 왜? 남 피해 안 주고 잘 살아왔는데!
- 아빠가 메일을 안 봤다고 문자로 보내? 그거 보고 아빠가 화가 미친 듯이 났다. 넌 진짜 지독하다. --> 메일 읽은 지 안 읽었는지 몰라서 문자로 보낸 건데 그걸 언니와 공유까지 했다니. 내가 더 환장할 노릇이었다.
무튼 이렇게 엄청난 오해를 쌓아두고 살았던 모양이었고 둘 이야기 외에도 왜인지 아빠 이야길 계속 해댔다.
오랫동안 카톡으로 싸우다가, 너무 답답하고 언니의 말은 말 그대로 너무 논리가 없는 말이기에 전화를 해달라고 애걸했다. 안 그럼 답답해 속이 터질 것 같았고 실제로 식도가 타는 듯한 스트레스가 느껴졌다. 내 모든 말을 비꼬아 듣고 있음을 숨기지 않는 언니를 어르고 달레야 하는데 내가 왜 그래야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겨우겨우 대화를 이어나갔다. 누구나 아는 상식, A가 A 임을 동의를 구해야 하는 상황이 모든 문장에 이어졌다.
나는 냉정하게 인지해야 했다. 언니와 나는 사는 세계도, 가진 상식도 너무너무 달랐던 것이다.
언니는 아래와 같이 말했다.
- 아빠에게 메일을 보내 왜 아빠를 언짢게 하는지, 그건 명백한 괴롭힘이다.
- 넌 아빠와 왜 화해할 생각이 없는 나쁜 종류의 인간이다.
- 넌 내게 그렇듯 아빠에게도 못되게 대한다.
- 과거의 일을 넘기지 못하고 들추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나는 차분히 아래와 같이 말했고 나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답변을 받았다.
나 : 메일은 내가 아빠에게 보낸 신호이며 받아들이든 무시하던 아빠의 선택이니 그냥 둘 것. 개입하지 말아줘
--> 네가 아빠를 화나게 하는 걸 참을 수 없다. 넌 정말 이상하다.
나 : 그런데, 내가 왜 아빠와 화해해야 하는데? 정말 궁금해서. 잘못한 건 아빠인데.
--> 넌 네 질문이 논리적인 것 같지? 이것 봐! 넌 화해할 맘이 없잖아!라는 호통을 들었다.
나 : 내가 못되게 한다면 언니는 언니의 불만을 이야기하면 되잖아. 우리 이야기만 하자
--> 아빠와 나에게 하는 행동거지가 똑같은데 어떻게 따로 이야길 해! (이후 나는 우리가 수평관계라면 부모 자식 간은 수직 관계이므로 그 폭력은 아이에게 생존의 위협처럼 큰 것이다, 힘의 균형이 다르다 라고 대답했다가 가족끼리 무슨 힘 이야기냐며 네 논리가 맞는 줄 아냐는 호통을 들었다. 내 논리 아니고 심리학의 기본인데)
나 : 언니는 자꾸 오래전 일을 왜 들추냐는데, 오래된걸 무조건 덮는 게 맞는 거고 안 그런 게 이상한 거면 그럼 위안부 문제도 오래됐으니 덮고 넘어가야 하는 건가?
언니 : 그거랑 그거랑 같니? 진짜 웃기네.
나 : 그래, 그거랑 다르다 치자. 그럼 내가 법정스님 상담하던 거에서 본거 이야기해 볼게. (나와 비슷한 상황 설명) 이런 여자애한테 아빠를 사랑하라고 할 수 있어?
과거의 상처를 진지하게 말하는 현재의 나.
그런 내게 서른이 훨씬 넘은, 어른이 된 언니가 말한다.
언니 : 하! 누가 들으면 어제까지 맞은 줄 알겠네! 너 그거 언제까지 그거 들출래?
왜 들춰서 아빠를 괴롭히는데?? 그리고 나도 맞았거든?
오, 그럼 맞은 자식은 오래전 일이니 그냥 침묵하고 살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효도이고 자기 하나 희생해 가족을 평화롭게 하는 것이다. 물론 가장이 계속적으로 그런 행동을 해도 참을 것. 그게 바로 가족의 행복! 이런 건가. 그렇다면 개뿔 난 가족의 행복에 전혀 관심 없다. 그냥 혼자 살련다.
단정 짓기 좋아하는 인간이라는 언니의 표현에 따라, 그래 상황에 대해 단정 해 보겠다.
착한 콤플렉스의 전형적인 피해자인 언니는 피해자임을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를 속이며 억누르고 있을 것이다. 아빠를 화나게 해서 상황을 불편하게 하는 그 어떤 것도 참지 못하는 것이다. 같은 자리에 있는 자신의 불안함도 나에 대한 분노로 치환됨으로 피해자인 나에게 악마의 프레임을 씌우고 있다. 그게 마음 편할 테니까. 착하다는 수식어 아래 언니는 너무나 많은걸 잃고, 정작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모른 체 30년을 넘게 살고 있다.
덧붙이자면 언니는 자타공인 착한 사람이고, 효녀다.
언니의 심연에 있는 논리 회로는 아래와 같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1) 내가 피해자란 사실을 인정한다면 자신도 피해자임을 인정해야 하고
2) 그렇게 된다면 아빠를 편히 볼 수 없고, 착한 딸 노릇에 지장이 생긴다. 불편한 것은 딱 질색!
3) 자신처럼 효도하며 모든 걸 포용하는 것이 정상이고, 동생이 비정상이다. 가족끼리 모였을 때 자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동생은 문제가 있다. 나도 아빠에게 어릴 때 맞았으니 말할 자격이 있고, 내 행동이 맞다.
4) 아무 문제가 없지만 동생의 문제로 집안의 불화가 생긴다. 아빠는 원래 그랬던 사람이므로 이해해야 하고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으니 얼마나 좋은 건가. 아빠 브라보! 싸가지 없는 동생!
나를 상식적이지 않다고 말하는 언니이기에, 나는 길가는 사람에게 묻고 싶어 지는 것이다.
자신과 다르면 상식적이지 않다는 발상 역시 상식적이라 할 수 있는가?
어릴 때 당한 폭력에 눈감고 부모를 사랑할 수 있는가? 나이 들어 부모와 이야기라도 한 번 해보고 싶지 않은가 말이다.
혹 그렇지 않다면, 모든 것을 포용하고 누를 수 있을 만큼 효도가 중요한 사람인가? 아니면 사실, 불편함을 피하고 싶은 것인가?
설사, 언니의 말이 모두 맞다 해도, 왜 타인의 생각과 행동에 이렇게 끼어드는 것인가??
점잖은 사람들은 혐오와 싸움은 좋지 않다며 일방적으로 얻어맞은 사람들에게 용서와 화해를 강요하고 있다.
언니는 아빠의 폭력에 시달렸던 내게, 용서와 화해를 강요한다. 과거의 일을 들추는 내가 나쁜 사람이니까.
혈육이 이러니 어쩌냐 싶지만, 나는 그냥 나를 해롭게 하는 모든 것들을 끊으며 살기로 했다.
외롭더라도 그냥 마음 편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