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 사는, 아니 지금만 사는 그대는 고양 고양 고양 고양 고양이
고양이야 네가 부럽다.
긴 휴가 끝에 사무실로 돌아온 오늘, 많은 일 때문이 아니라 적의가 가득한 업체 사람의 이메일이 나를 아프게 한다. 타국의 언어로도 이렇게 무례함을 잘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 그 배짱이 부럽다.
길에서 고단할 너의 삶이지만, 이렇게 누워있는 순간의 너는 그저 평온해 보인다.
너의 휴식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조심한다고 찍었는데, 불편함을 느끼고 등 돌려 가는 너에게 미안하다.
미안 미안 미안.
너는 오롯이 앞만 보고 살겠지.
그게 전투 같은 매일이라도 너는 그 순간에 집중해서 살겠지.
바보 같은 소리인데 그래서 네가 참 부럽다.
나는 오늘도 무기력에 빠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친다.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도망가려고 책을 집어 든다.
고양이 너는 참 이뻐.. 사진만 봐도 좋구나..
강신주의 비상 경보기 중 "개보다 못한 개들의 세상"이라는 글이 와 닿아 다시 읽는다.
이 책의 1부 위풍당당한 파시즘 행진곡은 명문으로 가득 차 있다.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의 폭력을 "이거 너 정말 모르고 있었어? 이거 폭력이야! 이 자식아!라는 호통과, 이거 여혐인 줄 몰랐어? 이거 여혐이야 이 자식아!" 라며 까발린다. 속이 다 시원하네..
유범상 교수 외 여러 교수님이 함께 쓰신 책 고독한 나에서 함께하는 우리로 중 "나는 생각하는가"와 맥락이 통하는 글들이 많다. 이 글도 좋아 여러 번 읽는다. 매우 보편타당한 가치는 그것을 긍정하는 사람들에 의해 다양하게 설명되지만 바탕이 되는 가치와 그 논리는 같다.
가치도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 아니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맞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바뀌지 않아야 하는 보편타당한 가치도 존재한다는 것. 예를 들면 인권 같은. 며칠 전 일이 생각난다. 내 부친의 배타적인 성격과 가부장적인 성격을 비판하는 내게 친구가 말한다.
"그건 네 생각일 뿐이야. 넌 그런 생각이 너무 강해"라고.
나는 대답한다. "모든 것이 관용된다는 프랑스 사회에서 오직 딱 하나 불관용 되는 것, 그건 불관용이라고. 자신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인종, 지역, 출생 등에 관한 것에 대한 차별이 없어야 하는 것. 이런 것은 시간이 지나더라도, 시대의 흐름이 바뀌더라도 보편타당한 가치로 남아 있어야 한다." 고. 나는 이럴 때 답답증을 느낀다. 이런 것에 저항하고 큰소리 내는 프로불편러가 되지 않으면 대체 얼마큼 자발적 노예로 빌빌 거리며 기어야 할 것인가... 할많하않.. 나의 부친, 그러니까 젊은 날의 아빠는 전라도 사람과 기독교인과는 절대 결혼하면 안 된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내뱉는 촌스럽기 그지없는 쌍팔년도 가치관을 간직한 사람이었다. 다행히 이젠 내가 "아빠 옛날에 전라도 사람이랑 결혼하지 말랬지?"라는 물음에 부끄러워하는 정도는 되셨다.
휴가 내내 술병과 식중독을 앓았더니 제정신이 아니다.
몸이 약해진 건지 마음이 카스텔라가 되어 찌르는대로 푹푹 찔린다. 아니, 원래 카스텔라였나? 찹쌀떡 정도는 됐을까? 에라 모르겠다 오늘도 술이나 마시러 가야지 날씨야 더워봐라 내가 에어컨 켜나 술 사먹지.
갑질도 안 했는데 을한테 맨날 당하는 것 같은 오늘도 즐거워라 내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