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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떠돌이 Aug 27. 2019

그리움을 참는 법

아니다, 이건 욕심을 참는 법

그가 온다.

그 시간, 그 장소에.


오늘을 마지막으로 어쩌면 다시 오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에 내면은 속절없이 흔들린다.

가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기 위해 당신이 온다는 기억을 애써 피해왔음에도 나는 오늘이 그 날이라는 것을 안다. 한번 본 시간이 잊히지 않는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바라보는 것, 아니 나의 존재조차 희미한 이를 사모한다는 것은 바람과 욕심의 연속이다.


나를 알아줬으면 좋겠다.


내게 눈을 맞춰 인사하는 시간이 오늘 한 번이 아니면 좋겠다.

내게 건넨 따듯한 말이 오늘이 마지막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친근한 말투와 행동이 오늘이 마지막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나를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당신이었으므로 우리의 만남은 늘 처음 같아 당신을 만난 찰나의 행복 뒤 돌아오는 길은 서운하단 말로는 버겁게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당신에게 쏟겨버린 내 마음은 되주워 담기 어려워 나는 당신을 알게 되고 다가갔던 시간들을 몹시도 후회했기에 후회조차 후회스러웠다.

나를 묻는 다정함에 기뻐했던 시간들은, 나를 기억하지 못한 당신이 매번 똑같은 친절한 얼굴로 매번 똑같은 다정함을 묻는 일이 반복될수록 괴로움으로 바뀌었다.

언젠간 가까워질 것이란 희미한 소망에 기댔던 날들은 행복의 기간보다 울렁거리는 서러움이 긴 시간이 되었다. 내 존재를 기억하지 않는 당신을 잊기 위해 노력한다.

마음은 의지와 상관없이 몹시도 당신에게 기울어져버렸으므로 나는 첫사랑을 앓듯 당신을 생각하곤 했다. 그리고 기운을 좀 차리고 나면 또다시 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당신이 올 지금 이 시간 나는 그 장소로 달려가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나 자신을 누르며, 애를 쓰며 이 글을 쓰고 있다. 후회와 노력을 반복하게 될 것이란 걸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오늘은 잠깐의 달콤함과 긴 우울의 시간을 맞바꾸지 않으리.

당신에게 가지 않으려 참는 이 시간 동안, 나는 어떤 것에든 집중하여 시간을 보내려 한다. 이것저것 다 넣어 비벼낸 양푼보다 큰 그릇 속의 밥을 우걱우걱 입에 쑤셔 넣는다. 티비를 본다. 몸을 움직여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한다. 오랫동안 정성 들여 몸을 씻는다. 얼마나 나를 움직여댄 걸까, 나는 씻으면서도 땀이 흐르는 이마를 알아차린다. 얼마 전 읽은 한강 작가의 '흰'에 나온 구절이 생각 나 한참을 욕조에 서 있다 차가운 기운에 얼른 몸을 닦고 나온다. 그래도 시간은 생각만큼 흘러주지 않는다.


시간의 감각이 날카로울 때가 있다....
해오던 일을 모두 멈추고 통증을 견디는 동안, 한 방울씩 떨어져 내리는 시간은 면도날을 뭉쳐 만든 구슬들 같다. 손끝이 스치면 피가 흐를 것 같다. 숨을 들이쉬며 한순간씩 더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이 또렷하게 느껴진다. 일상으로 돌아온 뒤까지도 그 감각은 여전히 그 자리에 숨죽여 서서 나를 기다린다. (흰, 11p)



작가의 말은 내 가슴으로 들어와 나의 언어가 되었다.

나는 이 시간이 어떻게든 지나가길 숨죽여 기다린다.




자신에게 몹쓸 추행을 하고, 어떻게 한번 해보려 하다 통하지 않자 가볍게 자신의 존재를 잊은 남자를 사랑하게 되어 삶을 휘둘렸던 한 여자의 깊은 열병과 우울을 기억한다. 신경숙 작가의 '바이올렛'에 나오는 산이였다. 남자에겐 지나가는 행인 1 정도로 기억되다 잊혔을, 나처럼 자신을 기억조차 못하는 사람을 사랑했던 산이, 산이처럼 포크레인에 깔려 죽고 싶지 않다. 애끓는 마음에 삶을 태우고 싶지 않다. 그리하여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 연락하는 일 따윈 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 나는 나를 조금 아니 많이 아껴주며 시간을 보내야겠다.


에어컨을 시원하게 튼 방에서, 좋아하는 책을 곁에 두고 잠이 올 때까지 읽어봐야지. 책이 읽히지 않으면 웹툰도 봐야지.

위로와 응원의 말이 나오는 책들이 유치하더라도 잔뜩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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