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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통 May 13. 2018

그렇게 나는 반인반수의 켄타우로스가 되었다

출근 복장의 자유와 통제 그 경계에 대하여 

적고 있습니다. 

누구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덤덤히.

내가 느낀 직장과 청춘에 대해서.

그것이 때론 불편한 이야기 일지라도





나의 출신부터 거슬러 올라가 보자면


나는 공대를 졸업 후 전공을 살려 IT 개발자로 회사에 입사하였고, 

4년 정도의 프로그래머 생활을 거쳐 인사과로 조직 이동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인사부서에서 또 한 3년 반. 

  

이과와 문과의 대화합이자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화개장터 같은 느낌이랄까. 

그렇게 나의 잡 커리어는 극적인 남북통일을 이루게 되었고, 


덕분에 나는 반인반수의 켄타우로스 같은 기괴한 형태를 띠게 되었다. 

  


어느 쪽이 사람이고 어느 쪽이 말인지 같은 이분법적인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고,  

그저 내가 경험하였던 그 극심했던 온도 차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정치판 마냥 양 쪽 편 갈라서 싸우는 형국은 정말 지긋지긋하니까) 

 



가장 큰 차이는 출근 복장의 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는 표면적으로 가장 한 번에 구분될 수 있는 다름 이거니와,  

두 집단의 깊은 곳에 매우 근본적인 차이 또한 야기한다. 

 

우선 개발자들은 청바지에 티셔츠 등 자유로운 복장이 허용되었으며, 후드티에 슬리퍼를 끌고 다니는 선배들도 많았다. 

내가 처음 회사에 들어와서 개발팀에 배치되었을 때 굉장히 대학원 lab실 같다는 느낌을 받았고, 팀장 이상 급 조직책임자쯤은 되어야 셔츠 한 장 정도 걸쳐 입을까, 누군가 말끔히 정장을 차려 입고 오기라도 하면 

  

오늘 어디가? 소개팅 있어?”  


또는 어디 장례식 가느냐는 질문을 듣기 일쑤였다. 


나는 공대생 치고(?) 패션에도 어느 정도 관심이 많았기에, 가죽 라이더 쟈켓 및 모자를 쓰는 등 비교적 화려한 옷을 즐겼고, 덕분에 어디 클럽 갔다 왔느냐는 핀잔을 듣기도 하였다. 

  



그런데 회사를 좀 다녀보니 



그도 그럴 만한 것이, IT 개발자의 숙명이랄까?  


허구한 날 야근에 프로젝트 막바지라도 되면 개발 일정에 쫓기는 채무자의 심정으로 연일 밤샘 작업이 계속되었고, 이왕 밤샐 거 편한 옷이라도 입고 밤새라는 회사의 드넓은 배려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면 자유로운 육체에 자유로운 정신이 깃들고, 곧 창의적 활동으로 연결된다는 연역적 추리였을까?


반대로 ‘내일은 또 뭘 입지?’라는 1차원적인 스트레스 역시 나를 꽤나 괴롭히는 부분 중 하나였다. 

 


그렇게 4년 후 



인사부서로 조직 이동과 함께 나는 옷장 걱정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는데, 

그곳은 말 그대로 ‘FM 회사원 정장’을 강요받았다. 전형적인 셔츠와 정장 바지에 구두. 입사 면접 때 입었던 먼지 쌓인 정장이 다였기에, 옷 사느라 월급 꽤나 깨졌던 기억이 난다.  

  


그곳에서  나를 다시 조형하는 작업이 시작되는데.


한 예로 무더운 여름날 셔츠 단추를 2개까지 푸르고 다니다가 나이트 삐끼(?)냐며 혼나기도 했으며, 투블럭 헤어스타일을 했다가 머리가 공작새 같다는 지적을 받기도 하였다. 

  


소위 ‘우리는 이렇게 입고 다니는 부서잖아?!’라는 그들의 충성심은, 

언제나 번뜩이는 구두와 칼 잡힌 정장 바지, 빳빳한 셔츠처럼 광이 났지만  


나의 얼굴은 점점 생기를 잃고 무채색으로 변해갔다. 

  



그런데 또 회사를 조금 더 다녀보니 



옷장으로부터의 해방은 내게 상당한 자유를 주었다. 내일 출근할 때도 내 목을 조여 오는 이 놈에 셔츠 한 장만 갈아입으면 되니까. 


통제와 규율이 강한 조직에서 느낀 자유라니, 이 얼마나 역설적인가. 


그렇게 내일 뭘 입을지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을 때쯤, 가장 아름다운 비율의 반인반수 켄타우로스가 될 수 있었다.  

  



이제와 곱씹어보면 



가장 자율적인 집단과 가장 보수적인 집단을 횡으로 가로지른 나는 그 경계를 넘었을 때 꽤나 괴로웠지만, 진짜 통제와 자유의 경계는 어디쯤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촉박한 개발 일정이 주었던 편한 복장의 배려와 강한 규율이 주었던 옷장으로부터의 해방 중, 과연 어느 것이 통제고 어느 것이 자유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국경과 다르게 명확한 구분 없이, 


선 긋기에 따라 통제인 동시에 자유가 될 수도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요즘 ‘캐주얼 데이’이다 뭐다 해서 복장으로 기존의 경직된 조직문화 등을 타파해보자는 회사들이 많은데, 

그 의도를 충분히 통감하며 매우 훌륭한 시도라는 생각이 듬과 동시에


과연 이는 일종의 만병통치약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끄적여본다. 

  


쓰다 보니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그냥 말도 인간도 회사의 부품이었고, 


반인반수의 켄타우로스 역시 

또 다른 형태의 부속 부품이었던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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