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말이지, '그런 악역'이고 싶다
적고 있습니다.
누구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덤덤히.
내가 느낀 직장과 청춘에 대해서.
그것이 때론 불편한 이야기 일지라도
무엇이 당신을 그렇게 힘들게 하는가?
직장인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 자체가 우매한 짓 일지도 모르겠다.
출퇴근, 월급, 보고, 회의, 야근 등 말해 뭐해, 말하면 입만 아프지 뭐.
이렇게 회사에서 적립할 수 있는 수많은 스트레스 중 가장 고차원적인 부분은,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부분에서 발생한다고 할 수 있겠다.
거기서도 으뜸은 나와 상사의 관계일 것 이고.
‘상사’라는 존재는
언제나 불편한 추억의 대상이자, 지구 평화에 해를 끼치는 악당으로 그려지며, 어벤저스 인피니티워의 ‘타노스’처럼 절대 권력을 이용하여 현실 속 히어로들을 괴롭히는 역할로 등장한다.
내가 겪었던 모든 회사는 ‘꼰대’의 온상이고, 홀로 적진에서 외롭게 자유의 깃발을 흔들었다는 무용담이 넘쳐나는 시대이지 않은가?
물론 이 놈에 회사라는 곳은 정말 상대하기 싫은 악당들이 널렸고, 그들의 시대착오적 발상과 통제는 소위
‘히어로 짓 못 해 먹겠네’
라며, 오늘도 퇴근 후 셔츠를 빨래 통에 집어던지게 하지만.
그런 측면에서
나는 굉장한 행운아라고 할 수 있는데
길지도 짧지도 않은 7년 반의 직장 생활 동안, 정말 운이 좋게도 ‘이 사람이다!’ 싶은 상사를 만나보았고,
그들의 존재는 나에게 커다란 방파제가 되었을뿐더러 자극제가 되었다.
그는 부하 직원과 쌍방향 의사소통을 즐겼으며, 본인이 직접 전선에 뛰며 팀의 전체적인 방향을 그려주었다. 또한 합리적인 업무 분배를 위한 노력은 물론, 내가 가진 업무의 고충에 대하여 두 발 벗고 같이 고민해주었다.
그 직급만큼이나 확실히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라는 것이 있긴 한 걸까.
부하직원들에게도 굉장히 친화적인 이미지로, 때로는 수년 이상의 나이 차이가 안 느껴질 정도로 편하게 다가와, 퇴근 후 팀 회식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으니.
상사와의 술자리가 치과 가는 것만큼이나 싫다고들 하지 않는가?
음.. 벌써부터 이 글을 읽는 당신의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 그려지는데.
어쨌든 이는 내가 일을 하는 또 다른 동기 부여가 되었고, 회사를 떠나서 그 팀의 일원이라는 소속감을 즐기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회사라는 곳은
또 다른 끝판 왕들이 많았고, 녹록지 않았나 보다.
매년 조직개편의 시기엔 무수한 소문들과 함께 흉흉한 분위기가 돌았고,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던 그 소문이 현실로 나타나는 등 크고 작은 변화들이 이루어졌다. 이곳저곳에 맞아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부품들이 갈아 끼워졌고,
일개 사원은 물론 그들 역시 자유로울 순 없었다.
미천한 내가 그 윗 분들의 숭고한 생각을 어찌 감히 헤아릴 수 있겠냐 만은, 위에서는 그들의 리더십 스타일이 별로 탐탁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니면 완벽하게만 보였던 그들도 정치에서만큼은 약점이 있었던 탓 일 까.
뭐 회사라는 피라미드가 위로 올라가지 못하면 내려가는 일만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겠지만.
동경의 대상들이 무너진 자리는 꽤나 초라했고, 그곳에 잠시 멈춰 서서
‘도대체 무엇이 맞고 누가 잘못된 것일까?’
라는 고민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나는
보기 드문 악당부터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타노스까지, 불편한 존재로 캐스팅된 악역들을 만나보았고, 동경부터 증오까지 다양한 감정들을 느낄 수 있었다.
단호히 말하지만 나는 구시대적 꼰대가 너무나 싫다.
하지만 동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꼰대를 만나본 입장에서, 나이의 차이에 따라 무조건적인 옳고 그름을 가르려 하거나, 새로운 것은 언제나 옳고 오래된 것은 틀리다 는 식의 오류는 조심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꼰대가 싫다는 ‘영꼰대’들도 상당수 보았으니.
그들이 부르짖는 ‘타도 꼰대’의 범주가 과연 어디까지일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나는 말이지.
자의든 타의든 적지 않은 나이를 먹어가는 입장에서,
나 역시 누군가의 꼰대 이진 않을까 하는 걱정과 함께,
그들에게 나는 ‘내가 보았던 그런 악역’이고 싶다는 소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