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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통 Jun 16. 2018

영정 사진 속 입사 동기는 웃고 있었다

내 잘못인 것 같았다

적고 있습니다.

누구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덤덤히.

내가 느낀 직장과 청춘에 대해서.

그것이 때론 불편한 이야기 일지라도






바야흐로 대학 축제 시즌이 돌아왔다. 



전국 곳곳 대학 가는 주체 못 하겠다는 듯 젊음을 뽐내기 바쁘고, 졸업한 지 10년 가까이 되는 아재 입장에선 참으로 그 ‘돌아갈 수 없는 강 건너 풍경’이 부러울 뿐이다. 

  


나는 매년 이 맘 때면 생각나는 친구가 있다.  


졸업 후 몇 년 간은 ‘돈 버는 선배’라는 신분으로 모교 축제를 찾았고, 재학 중인 과 후배들은 정장 입고 학교에 금의환향한 선배들의 생소한 모습이 선망의 대상이자 곧 ‘탈취’의 대상으로 인식되었다. 취직에 성공한 소위 ‘돈 버는 선배’들은 너도 나도 회사 명함과 함께 직장인 티를 내기 바빴고, 후배들에게 보란 듯이 카드를 긁어댔다. 과 동기들과 내기를 하는 거지. 후배들 치킨 10마리 쏘기, 피자 10판 쏘기, 주점 매상 10만 원 올려주기 등등. 

  

그렇게 한창 과 동기들과 이른바 ‘동기 사랑’을 시전하고 있을 때,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또 다른 부류의 ‘동기’의 부고 소식이었는데, 



그는 입사 동기였고 회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신입 사원 시절 단 둘이 같은 팀에 배정되었던 탓에, 모든 것이 생소하고 어설펐던 사회 초년생 입장에서 서로 많은 의지가 되었다. 허나, 조직 개편으로 인해 다른 팀으로 떨어지게 되었고 그로부터 1년 만에 소식이었다. 

  


무엇이 되었던 그 첫 경험의 강렬했던 순간을 잊을 수 있을 까. 


팀 대항 신입 사원 장기자랑을 위해 몇 날 며칠을 연습하기도 했고, 신입 사원 환영 회식 때는 술에 취해 팀장님 신발을 신고 집에 가기도 했다. 퇴근 후 동기들끼리 찾았던 치킨집에서 행여나 회사 선배들이 들을까 목소리를 줄였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시간에 흐름으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었고, 조직의 거리만큼이나 많이 뜸해졌더랬다. 가끔 지나다 마주치는 회사 복도나 퇴근 후 동기 모임자리에서 소주잔을 부딪히며 서로의 생사를 확인했지만, 예전엔 하루가 멀다 하고 울려대던 메신저는 갈수록 조용해졌다. 요즘 많이 어두워졌다는 소식과 함께, 언제였던가 그에게서 받은 잘 지내냐는 메신저가 마지막이었다. 


그 조차도 바쁘다는 핑계로 대답을 못 했지만. 

  


다음 날 찾은 장례식장 영정 사진 속
그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죽은 이는 말이 없다고 했던가, 무엇이 그를 그렇게 힘들게 했을까. 첫 번째로는 내 잘못인 것 같아서, 두 번째는 회사가 그렇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내가 그의 마지막 메신저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 탓일까. 

잠깐이라도 시간을 내어 들어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뒤늦은 후회 같은 거 말이다.  

  


회사에서도 다양한 방면에서의 지원을 하였고, 많은 동료들은 물론 나 자신도 스스로를 향한 손가락질에 꽤나 오랜 기간 트라우마로 남았다그로부터 1년 후 기일을 맞이하여 경남 어디 이름 모를 절에 모셔져 있다는 그 친구를 찾아갔지만, 이틀 동안의 수소문 끝에 결국 찾지 못하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던 기억이 난다.  

  



요즘 뉴스를 돌리다 보면 특히 그렇지만, 



사회는 물론 회사 안에서도 볕이 들지 않은 음지의 부분이 참 많은 것 같다. 과 주점에서 동기 사랑을 전파하던 동기들과 그 친구는 무슨 차이가 있었을까. 올해도 변치 않고 찾아오는 대학 축제 시즌과 함께 그 친구가 떠올라 적어 본다.  

  


더불어 여전히 시간에 흐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나에 대한 반성과 함께, 


매번 똑같은 후회를 반복하는 내 모습에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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